부산 지역의 각종 기업지원 공기관을 통합해 대(對) 기업지원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부산시의 ‘부산경제진흥원 설립’이 끝내 관련 중앙부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일부 기관만 소통합하는 선으로 가닥이 잡혔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등은 부산만의 통합경제기구 설립이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정책 방향에 혼선을 줄 우려가 있고, 통합 대상인 각 기관의 설립 취지도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시기상조’의 뜻을 분명히 했다.
부산시는 중앙부처에 대한 설득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쳐 한 때는 중앙과 지방 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쳐지기도 했으나 결국 부산시가 한발 물러나 정부 방침에 수긍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지역의 실험적인 경제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눈길을 모았던 지자체 단독의 통합경제기구 설립은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 부산경제진흥원 설립 취지와 추진 과정=부산경제진흥원은 현 허남식 시장이 지난 5.31 지방선거 때 제시한 주요 산업관련 공약 중 하나다. 기술 지원을 위해서는 테크노파크를 찾아야 하고, 수출에 도움을 얻으려면 정보산업진흥원이나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기업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업종별로 상공인은 소상공인지원센터, IT·CT기업은 정보산업진흥원, 제조벤처는 테크노파크에 문의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따로국밥식 기업지원 창구’를 단일화해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지원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처리해 부산시의 기업지원 기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적이었다.
시는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설립 준비에 들어가 지난 9월 주요 관련부서 공무원으로 구성된 TFT를 조직하고 타당성과 제규정 검토에 나섰다. 이어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관련 중앙부처와의 여러차례 연락을 통해 별다른 이견이 없음을 확인하고 설립에 필요한 실무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4월 부산테크노파크, 부산정보산업진흥원, 부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등 통합 대상 기관과 부산발전연구원 등 5개 기관에서 파견된 8명으로 설립준비단이 구성됐고 준비단을 중심으로 최근까지 부산경제진흥원 설립에 필요한 규정 마련 등 세부 작업을 진행했다. 당초 설립준비단의 목표는 올 가을까지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연말까지 제반 준비를 마무리해 오는 2008년에는 부산경제진흥원을 가동한다는 것이었다.
◇ 중앙부처, 갑작스런 반대?=올해 초까지만 해도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 중앙부처는 ‘통합 대상 기관의 고유 기능이 유지되고 운영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통합 여부는 부산시의 의지에 달린 것 아니냐’는 동의의 뜻을 비쳤다는 것이 부산시 측의 주장이다. 부산시 측은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돌입하자 느닷없이 ‘동의하기 어렵다’는 통합 불가 방침을 내세우는 것은 정권 말기에 나타나는 중앙부처의 몸사리기 행태가 아니냐”며 한 때 불쾌한 속내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배광효 부산시 경제정책과장은 “지역 기업지원 기관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지역 경제산업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부처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어렵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중앙부처의 이기적인 논리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차식 정보통신부 SW진흥단장은 “(부산정보산업진흥원 통합은) IT기업에 대한 육성과 지원 기능이 다소 소홀해질 수 있고 부산 지역 IT기업들도 통합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돼 정책적 측면에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혜정 산업자원부 균형발전정책팀장은 “처음부터 찬성이나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없으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부정책에 맞춰 시기와 세부방안을 조율해 나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라 말했다.
◇ 부산시, 일부 기관 소통합으로 가닥 잡아=부산시는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신발산업진흥센터 3개 기관만을 소통합 형태로 묶어 일단 부산경제진흥원을 출범시키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통합의 핵이라 할 수 있는 테크노파크와 정보산업진흥원은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을 지켜보며 추가 통합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약 제시 당시 거론된 7개 기관이 추진 과정에 5개로 축소됐고 최종적으로 3개 기관만을 통합키로 한 결과에 대해 부산시는 추진능력과 사전검토 부실이라는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기업이 가장 많이 찾고 이용하는 주요 기관은 제외한 채 이미 유명무실하다는 비판 아래 통폐합 논란에 휩싸였던 기관을 포함해 단지 3개 기관만으로 통합 설립된 부산경제진흥원이 제구실을 할 수 있겠냐는 따가운 시선도 부산시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인터뷰-배영길 부산시 경제진흥실장
“부산경제진흥원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에서 통합 가능한 범위 내의 기관만으로 일단 진흥원을 띄우려 합니다. 향후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추가로 통합 기관을 확대해 나갈 방침입니다.”
배영길 부산시 경제진흥실장(부산경제진흥원 설립준비단 단장)은 1단계로 3개 기관을 소통합해 외형을 갖추고 다음 정부 때 2단계로 확대 통합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경제진흥원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는 점과 이것이 부산시와 중앙부처간의 갈등처럼 비쳐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 정부 정책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배 실장은 “사실 정부가 반대해도 부산시만의 임의기관 형태로 통합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명분만 있을 뿐 설립에 따른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며 “법인 설립에는 필요한 정관 승인 등 중앙부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앙부처가 처한 나름의 고민도 알고 있다”는 말로 부산시가 한발짝 물러서서 3개 기관만의 소통합으로 결론지은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3개 기관만의 통합은 기업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하겠다는 당초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경제동향 파악 등 새로운 연구기능과 기업통합애로해소센터 등 확대된 서비스 영역을 하나씩 짚어 설명하며 “통합 설립되는 부산경제진흥원은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지자체 경제산업에 대해 중앙정부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었던 점 등 그간의 설립 추진 과정 속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이 의외로 많다”며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공약은 여러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세세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성급하게 성패를 따지기보다는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성숙한 의식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부산경제진흥원 설립 추진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