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소비자를 입체적으로 생각하라

 2004년 홈네트워크를 신축 아파트에 구축해 분양하는 것이 붐이었다. 특히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컨버전스 가전제품(네트워크와 가전기기가 결합된)에 웹패드라는 임베디드 PC를 사용한 무선제어가 적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5%도 사용하지 않는다. 아파트 입주자의 의향을 반영하지 않고 기술 일변도로 채택한 결과다. 이것이 결국 홈네트워크 산업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휴대폰에는 음성·데이터 통신·카메라·MP3P·GPS·PDA는 물론이고 고속 영상 무선전화 통신·DMB TV·RFID 등이 결합돼 컨버전스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기능은 음성 통화·문자 메시지·알람 등으로 다섯 개도 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계속 기능을 추가해 새로운 휴대폰을 내놓고 있다. 10만원대면 충분한데 컨버전스 신제품이라는 허울로 시장을 고가 위주의 소비 문화로 교란시키는 것이다. 오죽하면 디버전스라는 용어까지 나오겠는가.

 그러나 이런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지속되지 못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홈네트워크 산업의 침체·이동통신 산업의 포화·TV 미디어 산업 시장의 한계 등이 그 실례다. 한국은 이제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기다리고 있다. 서비스 산업은 공급자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는 개척할 수 없는 근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의 생활 패턴과 구매 패턴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다양화되고 롱테일한 신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IT 강국 한국에서 이제야 공급자와 사용자 간의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모토로라·애플·노키아 등의 선진 외국 기업에서는 이미 소비자 문화 생태의 변화, 소비자의 욕구와 수요의 방향 등을 세밀히 분석해 저가의 고품질 디자인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가고 있다. 이는 소비자를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 아이디어는 이제 IT 차원을 넘어 사회학·인간생태학·문화코드·심리분석·컬러 마케팅 전략 등과 맞물려 다양한 사고력과 협력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지식은 다양한 계층의 서로 다른 전문가의 토론과 지식의 개방적 공유로부터 출발한다. 이윤 추구에 젖은 단편적인 기업 전략은 발전의 서비스 모델 창출의 속도에 못 미쳐 빛도 보지 못하고 사장될 판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기술들을 연구해 서비스 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선진국 대열에 서 있다. 글로벌 시대에 서비스 산업은 IT 기반의 시스템 자동화·지능화 기술이 모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지능화 기술은 현재의 공학적 사고로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를 입체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회학과 경영학(e-BiZ)적 접근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정통부의 21세기프런티어 사업인 유비쿼터스컴퓨팅사업단에서는 소비자를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융합적 디지로그 디자이너 집단으로 연구진을 구성해 유비쿼터스 지능 공간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 소비자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여러 상황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지능적으로 분석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자율 서비스 지능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연구 목표다. 이러한 지능 공간이 u시티의 각 공간에 입체적으로 구현된다면 소비자 위주의 새로운 시각을 지닌 유비쿼터스 서비스 지능 공간이 돼 폭발적인 신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신기술 개발은 과거 3년 정도의 단기적인 기술 개발로는 불가능하며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R&D에 다학제적인 연구진이 참여할 때 가능하다. 신기술 개발에는 그만큼 많은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신시장 창출과 신기술 개발 진입은 장기간의 투자와 R&D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고 여기에 걸맞은 국가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보통신부의 최근 미래 기술 개발 국가 전략 등은 시의적절한 대책이며 이것이 30년, 50년 후의 장래를 내다보고 국가 전략을 수립하는 대국가 시책이 되길 바란다. 1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볼 줄 아는 새로운 안목의 R&D 전략이 절실한 때다.

◆조위덕 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 wduke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