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이헌재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가진 벤처기업과의 간담회에서 벤처를 살릴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불쏘시개로는 어렵고 석유를 뿌리는 등 특별조치를 취하겠다”며 ‘특단’에 강조를 했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벤처활성화 대책이 나왔다. 지난 2000년 전후만큼 벤처가 살아났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제2의 벤처 붐’이 시작된 시점이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해인 2005년 6월 ‘추가대책(벤처 활성화 보완대책)’도 내놓았다.
당시 정부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또 다시 ‘벤처’카드를 들고 나올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벤처하면 떠오르는 것이 ‘게이트’ 등 비도덕성·부패 등인데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게 맞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벤처 이외에 마땅히 대처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초기 아이디어 기업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데 마땅히 벤처말고는 없다”며 내부적으로 결정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내놓은 벤처활성화대책의 핵심은 ‘벤처생태계 조성’이다. 창업단계부터 성장·성숙단계까지 벤처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틀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온 것이 1조원 규모로 결성된 ‘모태펀드’ 그리고 기술보증기금의 벤처보증 전담기관화 등이다.
이들 정책의 성과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정책이 나온 2004년 이후 벤처 경기지표는 크게 개선됐다.
2003년 7702개사였던 벤처기업 수는 2004년 7967개사, 2005년 9732개사, 지난해는 1만2218개사로 벤처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1년 이후 처음으로 1만개사를 돌파했다. 일부에서 정부의 벤처활성화대책이 성공으로 이어졌으며 ‘제2의 벤처 붐’이라는 주장의 배경이다.
투자규모도 크게 늘었다. 비록 과거처럼 엔절 투자자들이 시장에 대거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1조원 모태펀드의 여파는 적지 않았다. 이 자금이 시너지를 내며 연기금 등도 다시 벤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2004년 7770억원에 그쳤던 벤처투자액은 2005년 9557억원으로 급증한 후 2006년에는 1조231억원으로 역시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는 벤처기업의 총 매출액이 100조원을 달성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성장성과 수익성. 벤처기업의 평균 매출액이 69억원으로 29억원인 중소기업의 2.4배며, 영업이익 역시 평균 4억5000만원으로 중소기업 평균(1억2000만원)의 3.8배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다. 98년 이후 26만3000개의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고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벤처 버블 시기에는 ‘아이디어로 뭉친 소수인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고용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2004년 이후에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우수 인력도 다수 포진’하며 임직원 수가 크게 늘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98년 벤처 기업 고용인원 수는 7만5000명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33만9000명으로 급증했다. 매년 23.9%나 증가한 셈이다. 이는 대기업 고용인원수가 98년 220만5000명에서 2005년 145만명으로 매년 5.8% 감소한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현재 중소기업청장은 “벤처가 매출·고용 측면에서 대기업과 일반 중소기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성장세를 시현 중”이라며 “특히 이공계 인력의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
◆벤처정책 어떻게 변했나
정부의 벤처정책은 지난 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이 만들어진 것을 전후해서 크게 △태동기(1997년 이전) △창업 촉진 및 인프라 확충기(1997년∼2001년) △벤처기업의 질적 내실화를 위한 조정기(2002년∼2004년) △제2의 벤처 붐 조성기(2005년∼) 등으로 구분된다.
벤처기업 태동기의 대표적 정책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86년)과 신기술사업금융지원법(86년) 제정을 꼽는다. 이를 계기로 소위 한국 벤처 1세대로 불리는 큐닉스·미래산업 등이 등장했다. 96년 7월 코스닥시장을 개설한 것도 벤처기업 태동기에 정부의 큰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 촉진 및 인프라 확충기는 ‘벤처의 성장기’로 대변된다.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벤특법)이 만들어진 97년을 벤처정책의 원년으로 보는 이유다. 벤특법에는 창업 3년 이내의 벤처기업에 5년이상 투자하는 개인이나 개인투자조합은 투자액에 대해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것이 포함됐으며 이는 한국 벤처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도화선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이밖에 성장기에는 코스닥시장과 벤처캐피털에 대한 관심을 북돋기 위해 마련한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98년)과 창업투자조합 출자 지원(99년) 등의 제도가 나왔다.
2002년 이후 조정기는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 등 벤처기업의 투명성 확보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벤처기업확인제도 강화(2002년), 벤처캐피털의 투명성 제고(2003년), 코스닥시장의 퇴출요건 강화(2003년) 등을 꼽는다. 벤처기업확인제도 강화는 벤처기업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업체 가운데 ‘연구개발(R&D) 기업’은 연간 R&D 비용이 업종별로 총 매출액의 5∼10% 이상, 최소 5000만원 등 두 조건을 함께 충족시키도록 했다.
제2의 벤처 붐 조성기는 정부가 2004·2005년 발표한 ‘벤처활성화 종합대책’을 통해 가시화됐다. 이 대책은 벤처기업의 창업·성장·구조조정이라는 성장단단계별 지원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자금 지원의 경우 퍼주기를 피하면서 각 단계별로 적절히 수혈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벤처확인제도도 바뀌었다. 골자는 확인요건을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개편한 것. 확인기관도 이에 맞춰 중소기업청장에서 민관기관(기술보증기금·중소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캐피탈협회)으로 변경했다. 주요 개정내용을 보면 벤처투자기관의 범위를 벤처캐피털 이외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을 포함했으며 벤처투자기업 요건도 자본금 10% 이상, 6개월 이상 지속에 최소 투자금액 5000만원 기준을 추가했다. 여기에 기술보증기금·중소기업진흥공단 등으로부터 기술평가 후 신용으로 보증·대출 받은 기업으로써 일정 기준(금액이 8000만원 이상이면서 자산의 10% 이상) 이상일 경우 벤처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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