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데이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이맘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한국프레스센터 회의실에서는 가전제품 특별소비세(특소세) 폐지에 대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당시는 이미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컬러TV 등 일부 가전제품에 대한 특소세를 두고 폐지 또는 인하를 주장하는 통상산업부와 현행 수준 유지를 주장하는 재정경제원이 대립하던 시절이다.

 그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한 시민단체 대표는 보급률이 160%에 달해 생필품화된 컬러TV 등을 여전히 사치성 상품으로 분류, 15%의 특소세를 부과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며 행정편의주의라면서 특소세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조세관련 학자도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경원 공무원의 답변은 한마디로 황당했다. 주장에 동감하지만 특소세 폐지로 줄어드는 세수를 확보할 ‘방법’이 없어 불가하다는 해명이었다. 토론회는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싱겁게 끝났다. 이후 가전제품 특소세는 1999년 12월 전격 폐지됐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이번엔 과다한 유류세가 문제다. 지난해 정부가 유류세 명목으로 거둬들인 돈은 23조5000억원, 국세의 17%에 달한다. 유류세가 현재 수준으로 인상된 건 9년 전인 IMF 구제금융 시절이다. 정부는 공적자금 조성을 이유로 조세저항 없이 꼬박꼬박 현찰을 챙길 수 있는 유류세를 인상했다.

 고유가로 서민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오늘날, 정부가 유류세를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정부는 갖가지 이유를 대지만 가장 큰 이유는 11년 전 특소세 건과 다를 바 없다. 씀씀이가 커질 대로 커진 정부 입장에서 다른 세수확보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유류세 인하를 단행할 수 없는 것이다.

 1993년작 ‘데이브’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데이브’는 외모가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대통령 유고 시 몰래 대통령 대역을 한다. 불우아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싶다는 그에게 비서실장은 “예산을 확보할 자신이 있으면 해보라”는 조롱섞인 말을 던진다. 그는 절친한 회계사 친구와 함께 밤새 불필요한 예산지출 항목을 뽑아내고 절감한 예산을 불우아동 지원으로 돌리는 묘안을 짜내 진짜 대통령보다도 더 대통령다운 역할을 해낸다.

 지금이 바로 그 ‘데이브’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최정훈차장·솔루션팀@전자신문, jh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