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4부-요소기술이 관건이다: ③구동메카니즘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10년 세계 소형모터 산업별 분포도

 로봇의 제작원가에서 구동메카니즘(모터+감속기+콘트롤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70%에 육박한다. 유감스럽게도 로봇이 움직이는데 필수적인 정밀모터·감속기 등은 한국로봇산업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쓸만한 산업용 로봇이나 지능형 로봇을 뜯어보면 구동메카니즘은 거의 외국상표가 찍혀 있다.

 

 로봇이라는 기계가 움직이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전기모터의 힘을 감속기어로 증폭시켜 로봇팔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전기모터를 쓰면 정밀한 위치제어가 가능해 로봇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나머지 두가지 방식은 공기압과 유압 실린더로 로봇팔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실린더를 쓰면 부품구성이 단순해지고 힘도 쎄지는 장점이 있지만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이족보행로봇의 구조를 보면 로봇에서 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확연히 드러난다. 로봇이 사람처럼 걷거나 움직이려면 적어도 수십개의 모터를 주렁주렁 장착해야 한다. 휴보의 걷는 동작이 꽤 자연스러운 이유는 손가락에서 발끝까지 무려 41개의 모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이 수백개의 근육으로 움직이는데 비하면 아직 멀었지만 로봇이 정교해질수록 내장되는 모터 숫자도 점점 늘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로봇구동에 중요한 부품인 모터의 해외의존도가 80%에 달한다. 특히 일본은 세계 모터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기술력과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국내 로봇용 모터수요를 석권하고 있다. 로봇왕국 일본의 저력은 어떤 스펙의 로봇용 모터도 직접 설계, 제조할 수 있는 모터기술에서 나왔다. 일제모터의 수입이 중단된다면 국내 산업용 로봇기업은 거의 생산활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한국 로봇업계 입장에서 일제모터의 높은 성능과 신뢰도, 다양성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거대한 산이다. 유럽의 스위스, 독일도 탄탄한 기계산업을 바탕으로 로봇용 고정밀 모터분야에서 넘보기 힘든 경쟁력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난 20년간 산업용 모터 국산화에 적잖은 노력을 해왔다. 덕분에 가전제품·자동차·정보기기 등에 들어가는 범용모터는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로봇장비에 사용되는 고정밀 서보모터로 시선을 돌리면 외국과의 기술격차는 여전하다. 모터 속도를 늦춰 로봇의 힘을 증가시키는 감속기 분야로 가면 기술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감속기는 각 모터의 특성에 따라 회전비율을 최적화하는 맞춤형 기계부품이다. 당연히 독자적 모터기술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모터에 맞는 감속기 개발도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모터를 제어하는 콘트롤러·드라이버는 기계가 아닌 회로기술이 핵심인 까닭에 국산품도 세계수준과 큰 격차가 없다는 평가다.

 자동차 엔진(모터)과 트랜스미션(감속기), 전자제어장치(콘트롤러)가 조화를 이뤄야 명차가 나오는 법이다. 완성도가 높은 로봇제품도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술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부품기업이 좁은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특정 로봇스펙에 맞는 구동메카니즘을 개발하기란 부담이 너무 크다. 기술력이 있어도 초기 로봇시장에서 전용모터나 감속기를 소량 생산해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제품개발을 기피하게 된다. 부천에 위치한 모터넷은 지난 2004년 휴보의 손가락 관절을 움직이는 모터 구동부를 국산화했다. 허나 겨우 모터 30개를 납품한 뒤 수요가 끊겨 여태 투자비 회수를 다 못하고 있다. 지난 90년대부터 정부주도로 로봇모터의 국산화가 몇차례 성공했지만 협소한 내수시장 때문에 상용화까지 연결된 사례는 별로 없다. 로봇제조사 입장에서도 국산모터 몇종에 맞춰 로봇제품을 설계하기 보다는 수십종의 제품군을 확보한 외산모터를 세트로 골라 쓰는게 더 편한 것이 현실이다.

 세계 4위의 로봇대국인 한국에서 로봇을 움직이는 구동메카니즘을 대부분 외산제품에 의존하는 이유는 한정된 내수시장이 부품 국산화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로봇구동부품의 해외외존도를 조속히 낮추지 않으면 정작 차세대 로봇산업의 과실은 상당부분 해외로 유출될 것으로 우려한다. 일본은 정밀모터나 동력전달용 감속기 등 로봇구동부품의 강국이기 때문에 세계 로봇시장이 커질수록 돈을 버는 구조다. 한국이 로봇을 한 대 팔 때마다 맥슨·야스카와·파낙 등 외국 부품업체들의 주머니만 불려주는 상황은 가능한 빨리 극복해야 한다.

 안팎의 어려움은 존재하지만 향후 한국이 로봇구동부품에서 경쟁력을 높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로봇을 움직이는 구동메카니즘이 서보모터, 감속기 및 콘트롤러가 일체화된 지능형 액추에이터로 진화하면서 한국이 강점을 지닌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어차피 모터나 감속기를 빼놓고 로봇산업의 경쟁력을 논할 수 없다면 정부주도의 부품 R&D사업을 다시 강화하는 정공법도 요구된다. 산자부가 최근 발표한 중기거점 기술개발사업에 로봇용 스마트 액추에이터 개발건이 포함된 것은 청신호다. 총 40종의 지능형 모터 시리즈를 개발하는 이번 사업이 성공하면 지능형 로봇제품을 만들 때 굳이 외국 모터업체의 브로셔를 뒤적이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로봇전용이 아닌 기존 정보가전과 호환되는 모터부품을 개발하는 공용화 전략도 필요하다. 소니가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만들 때 전용모터 대신 VCR모터를 채택한 이유도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부품가격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부품공용화 전략으로 로봇부품이 싸지면 로봇 완제품의 가격이 내리고 다시 부품의 대량구매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일부 전문가들은 로봇구동분야에서 일본과 기술격차를 고려할 때 전기모터가 아닌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펼친다. 전류에 반응해 수축하는 인공근육이나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로봇팔을 지금부터 개발하면 후발주자도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긴 10년 뒤에는 모터 대신에 신소재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친환경 로봇이 인기를 끌지도 모를 일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인터뷰-임태빈 모터넷 사장

 “모터는 로봇산업의 근본입니다. 우리나라가 로봇강국이 되려면 모터기술을 높이는 정부차원의 장기적 비전이 필요해요.”

 임태빈(51) 모터넷 사장은 모터개발에 뛰어든지 벌써 28년째다. 대학원 시절부터 황무지나 다름없던 모터기술개발에 매달렸고 지난 1999년 전자부품연구원 벤처창업 1호로 모터넷을 창업했다. 그는 로봇산업이 부각되면서 모터와 감속기, 제어장치가 결합된 액추에이터(작동기)의 국산화 수요가 커지는데 반가움을 나타냈다.

 “로봇용 모터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술격차는 3∼4년까지 줄었다고 봅니다. 각종 모터의 설계기술은 우리도 높지만 정밀가공과 제품군의 다양성에서 일본에 밀리는 상황이 문제입니다.”

 임 사장은 휴보의 손가락과 발꿈치 모터를 직접 개발하고도 추가수요가 없어 사장시킨 사례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로봇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신형 모터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실 영세한 모터업체가 몇년 뒤에나 시장수요가 터질 로봇구동부품을 홀로 개발하기란 힘듭니다. 정부가 관련 개발과제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만이 최선의 육성책입니다.”

 그는 현재 로봇의 주된 동력원이 전기모터지만 새로운 형태의 구동기술이 나오면 로봇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기업조차 모터사업을 해외로 이전하지만 로봇모터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국내서 생산해야 합니다. 로봇에서 모터를 빼면 고철이나 다를 바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