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지난 21일 오후 4시 서울 용산역 대합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이 정해 놓은 최종 협상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대합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 속보를 보고 있다. 궁금했지만 약속시간에 늦을까 이들을 지나쳐 4층 별실을 찾았다. 40명 정도가 모여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서로 도와 가며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국내 첫 한국어 위키피디아 사용자 오프라인 모임이다.
처음 만나는 자리인만큼 자기 소개로 행사가 시작됐다. 운영진인 박종대씨(NHN 검색모델링 1팀)를 시작으로 모든 참가자가 돌아가며 아이디나 이름, 참가하게된 경위 등을 밝혔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모임이 대개 그렇지만 한국어 위키피디아 사용자 모임은 더욱 연령·직업·관심사에 대한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다. 모든 사실을 담으려는 백과사전의 특성처럼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협업 툴인 위키, 혹은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특이한 점은 실제로 백과사전 내용을 만드는 ‘편집’을 해 본 사람만큼 사용만 해 본 사람도 많았다는 것.
참가자 소개가 끝나자 박종대씨의 위키피디아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박씨는 “편집 기여도가 없는 사람이 많아 소개를 하기로 했다”며 “궁금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견을 개진하기 바란다”고 토론을 유도했지만 여의치가 않다. 일부 참석자는 “행사가 너무 강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 콘텐츠 작성의 대원칙인 ‘중립적 시각’에 대해 얘기가 나오자 논의가 뜨거웠다. 주장에 대한 출처의 명시, 분쟁이 일어난 사안에 대한 기술 방법 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박종대씨는 ‘독도’를 예로 들며 중립적 시각을 견지하는 어려움을 말했다. “독도를 놓고 일본과 한국 사이에 분쟁이 있다고 적으면 그것은 이미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입장을 반영한 거죠. 어떻게 기술해야 할 지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정경훈씨는 “중립적 시각도 엄연한 시각의 하나”라며 “위키피디아에 객관적 시각이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너무 중립적 시각을 강조하는 게 한국어 위키피디아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한국어 항목이 많이 늘어나야 할 텐데 중립적 시각이라는 어려운 말에 섣불리 항목 작성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을 통해 ‘각 항목에 대해 무엇이 중립적 시각인지 사용자가 분쟁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며 고민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후 공식 행사가 마무리됐다.
행사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아이디 ‘Atlas’는 한국어 위키피디아 사용자 게시판에 “많은 불균형속에 이뤄진 첫 오프라인 모임 의의는 실로 중요합니다. 위키 백과의 균형을 향한 여러 첫걸음 중 하나”라는 후기를 남겼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와 관련된 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조직이 없는 현 상황에서의 한계도 뚜렷했다. 몇 사용자는 “토론을 통해 위키백과의 현재 당면한 과제 등을 논의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운영진은 “첫 모임인 데다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최순욱기자@전자신문, choi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