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각)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주최로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 2007’.
8000여명의 관객이 ‘스타크래프트2’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새 확장팩에 대한 발표를 듣기 위해 행사가 열린 애너하임센터를 가득 메웠다. 블리자드 라이선스 상품을 파는 부스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 발표하는 게임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확고한 브랜드를 쌓아온 블리자드에 대한 북미 지역 게이머들의 애정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과 애정의 기반에는 창조적 게임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블리자드의 개발력 그리고 개발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열정과 자유와 균형=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사장은 “개발자 스스로 해 보고 싶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유와 시간을 주는 것”이 개발자 전략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열정을 가진 개발자들이 최대한 즐겁게 일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기본에 충실한 것.
완전한 자유는 물론 아니다. 개발자들이 낸 아이디어는 사내 각 부서의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계속 수정·발전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경우 개발자와 운영진이 한 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끼는 유저의 불만이 실시간으로 개발자에게 전달된다. 일종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EA 출신의 스타 개발자인 척 오셰이어 넥슨 이사도 “시장의 수요와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한 북미식의 ‘구조화된 개발과정’들이 한국의 개발 환경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개발 진행 과정을 예측 가능하게 하고 일정대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으며, 개발팀에도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것. 물론 이런 ‘견제와 균형’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은 경험한 것들을 만들고 싶은 자유가 보장된 경우다.
◇도제 방식에서 제도권으로=이런 개발자들은 어떻게 키울까? 과거엔 미국에서도 철저히 도제식으로 게임 개발자들을 키웠다. 20년 전만 해도 교육 프로그램이라곤 전무했다. 전설적 온라인 게임 ‘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한 미국 오리진시스템즈의 현장 개발자들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훗날 미국 게임계의 주요 개발자로 자리잡아 게임 산업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1992년 오리진시스템즈가 EA에 인수된 후 사실상 해체되면서 이런 도제식 개발 훈련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지난 10년 동안 북미 게임 업계엔 큰 변화가 있었다. 카네기멜론대학이나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워싱턴대학 등의 주요 대학은 ‘상호작용 엔터테인먼트’(Interactive entertainment) 분야의 학부·대학원 과정을 운영한다. 디지펜(Digi Pen)같이 ‘비디오게임교육’을 특화해 모든 교과 과정을 운영하는 공인 교육시설들도 생겼다.
무엇보다 게임 산업이 30여년의 역사를 쌓아오면서, 비디오게임의 실전경험을 쌓은 후 게임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변신한 베테랑 개발자들이 새로운 세대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광범위한 지식·교양 필요=이런 효율적인 교육은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개발자의 양성으로 이어진다. 북미 개발자들은 학교 때부터 철저히 훈련받아 실제 개발 현장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일정을 제대로 맞춰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게임 관련 전공자라 하더라도 입사하면 다시 훈련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또 창의적 개발자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기술뿐 아니라 종합적인 교양과 상상력을 가진 인재 양성도 과제로 지적된다. ‘울티마’를 개발했고 지금은 엔씨소프트가 서비스할 ‘타뷸라라사’를 개발하고 있는 리처드 게리엇의 서재에는 기호학·문학 등 각종 인문학 서적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이런 광범위한 지식과 교양이 좋은 게임 개발의 기반이 되는 것. 특히 한국이 장점을 가진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선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이 필수적인데 이 역시 인문학적 기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우리와 연관 깊은 블리자드 출신은..
역대 세계 PC게임 판매 순위 5위 안에 3개나 자사 게임을 올려 놓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그 명성에 걸맞게 블리자드 출신 개발자들이 설립한 게임 회사들도 국내외에서 맹활약하며 새로운 게임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세계적 히트게임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아버지인 빌 로퍼는 2003년 블리자드를 떠나 블리자드 출신 중역 4명과 함께 플래그십스튜디오를 설립했다. 2004년부터 한빛소프트와 손잡고 대작 온라인게임 ‘헬게이트 : 런던’을 개발하고 있다. ‘디아블로’를 능가할 온라인 RPG를 목표로 현재 클로즈베타 서비스 일정을 조율 중이다.
블리자드에서 워크래프트·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개발 및 배틀넷 시스템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제프 스트레인과 패트릭 와이어트, 마이크 오브라이언 등 3명은 게임 개발사 아레나넷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02년 엔씨소프트에 인수된 후 ‘길드워’를 개발, 세계적으로 300만장이 팔리는 성공을 기록했다.
올 1월 설립한 유아이퍼시픽게임스(UIPG)는 블리자드 출신 한·미·일 게임 개발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 ‘디아블로’의 이미지 컨셉트 설계자 미치오 오카무라와 디자인 디렉터 에릭 섹스턴, 캐릭터 디자이너 리드, 애니메이터 켈리 존슨 등이 참여했다. 공동 회사 설립자 겸 총감독으로 활약하게 된 이장욱씨는 블리자드와 한국의 제이씨엔터테인먼트·한빛소프트 등을 두루 거치며 국내에서 개발자의 ‘큰형’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미국 본사와 한국 개발 스튜디오에서 RPG를 각각 개발하고 있다.
애너하임(미국)=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