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공계가 취약한 나라는 갈수록 국가경쟁력에서 열위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이공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 산업기술 문화 확산을 위해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공계 사람들’을 공동 기획했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이공계의 선구자로 평가받거나 산업기술 발전에 업적을 남긴 인물을 매주 1명씩 선정, 그동안의 경험과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을 들어본다.
경기고 수석 입학. 고교 1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학과 차석 입학. 대한민국 최연소 박사. KAIST 설립 주도. 두 번의 과기처 장관 역임. 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정근모 명지대학교 총장(68)의 이력이다. 그는 세계 최고 반열의 과학자로, 미래형 인재육성의 교육자로, 또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조율자로 살아온 대표적 실천형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정 총장은 “대한민국의 힘은 과학기술력에 있다. 즉 이공계 인력은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가는 잠재력인 동시에 핵심이다”라는 말을 자주하곤 한다.
그가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 데는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시대가 될 테니 정치인이 되든 법률가가 되든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물리학계의 거두 권영대 교수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가 물리학과 4년을 마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주요 일간지에서는 ‘과학신동, 기술자에 대한 천시 항의, 행정대학원에 수석 입학’이라는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정근모 총장은 남플로리다대 교수로 재직 중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보다는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핵융합에너지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케네디스쿨)에서 과기정책을 다시 공부했고 ‘후진국에서의 두뇌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이라는 논문을 써, 이후 우리나라가 KAIST를 설립하는 기초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정 총장은 KAIST 설립의 최대 공헌자다. 아이디어와 기획부터 미국으로부터의 원조 획득, 교수진 확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설립 후 첫 부원장 역할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지난 82년 한국전력기술 사장직을 맡은 정 총장은 당시에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난 섞인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열정 그리고 실력을 통해 ‘한국형 표준원전’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한국형 표준원전은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는 두 번의 과기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중심 축이 되고 있는 우수연구센터 제도를 만들었고, 특히 ‘중간진입전략’을 도입,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세계 시장에 입성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중간진입전략이란 이미 정상궤도에 오른 선진국의 기초·응용단계의 과학기술 연구결과를 최대한 활용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과학기술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고등기술연구원이라는 산·학·연의 전략적 연구기관을 만들어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효율적 연구기관 모델을 제시한 것도 정 총장의 업적 가운데 하나다. 고등기술연구원은 산업기술연구조합으로 기업에서 일하는 고급두뇌들에게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시키고 교수들을 산업현장에 투입해 기업실무를 익히게 하는 획기적 프로그램이다.
정 총장은 최근 ‘첨단 농축수산 생명과학기술 지원연구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FTA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농축수산업의 실질적인 솔루션을 찾아내는 기반을 마련해 보겠다는 판단에서다.
김승규기자@전자신문, seung@
<정근모 총장은>
●인생모토
-무실역행 관용화합(務實力行 寬容和合) 즉,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주변과는 관용을 가지고 화합해야 한다는 뜻.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
-민족의 지도자요, 국민의 정치가요, 국가의 어른인 도산 안창호 선생. 국가 장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
●이공계에 하고 싶은 한 마디
-21세기 대한민국의 힘은 과학기술력에 있다. 이공계 인력들은 이런 사명감을 통해 초일류 국가 건설에 헌신해야 한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주요 이력
△1971∼1975년 KAIST 교수 및 부원장 △1988∼1990년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자문위원·이사·총회의장 △1990∼1996년 12, 15대 과학기술처 장관 △1992∼1994년, 1994∼1998년 고등기술연구원장 △98년∼ 과학기술한림원 이사·원장(현직) △2004년∼현재 명지대 총장(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