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라기보다는 영화인이죠.”
영화 ‘괴물’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44)가 스스로에 대해 정의한 말이다. 하나의 회사를 책임지는 경영자이면서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만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말과 비례하는 말이다.
최 대표는 일반적인 영화인들이 걸어온 것과는 다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재단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영화를 하고 싶어 서울예대(당시 서울예전) 영화과에 다시 들어갔다. 독특한 이력과 소신(?) 때문에 모 방송국에서 취재를 해 갔을 정도.
“영화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습니다. 한국영화는 고전부터 거의 다 봤죠.” 지난 1990년 개봉한 정지영 감독, 안성기 주연의 영화 ‘남부군’의 연출 스탭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조감독으로 올라와 있다. 이후 감독 데뷔는 못했다. 이후 강우석 감독이 설립한 시네마서비스에 입사해 배급 담당 업무를 하며 영화에 대한 안목을 길렀다.
2001년 지금의 ‘청어람’이라는 ‘한국영화 전문 배급·투자사’를 설립했다. 2003년 ‘싱글즈’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등을 배급하면서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3위, 전체시장 점유율 4위라는 성과를 이루며 성장했다. 2004년부터는 제작에도 손을 댔다. 첫 작품 ‘효자동 이발사’부터 시작해 ‘작업의 정석’ ‘흡혈형사 나도열’ 등 작품성 있고 개성강한 영화들을 내놓았다. 2006년 제작, 개봉한 ‘괴물’은 1300만명 관객 동원이라는 역대 한국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며 단번에 청어람의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최 대표는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흥행돌풍을 이어가던 그때를 “대단했었다”고 회상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다. 그간의 고생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괴물’의 성공으로 청어람은 영화계는 물론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는 대형 통신 자본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괴물’이 흥행가도를 달리던 지난해 8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연예 기획사 iHQ가 청어람 지분 30%를 인수했다.
한국 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쓴 ‘괴물’은 이후 속편과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조만간 ‘괴물2’와 드라마 기획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는 “괴물2와 드라마는 이제 기획 단계로 괴물의 형태는 전편 영화와 같은 것을 쓸 것인지, 괴물 수는 몇 마리이며 어떤 스토리라인을 가질 것인지 등을 연내에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어람에게 올해는 2004년 이후 잠시 쉬었던 배급 사업을 재개한 원년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 ‘해부학교실’ ‘두사람이다’와 코미디물 ‘꽃미남 테러사건’ 등을 공동 배급하며 작품 스펙트럼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그에게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윈도의 확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신규수요가 늘어나는 건 당연히 환영합니다. 하지만 특정 윈도에만 관심있는 주체가 자칫 기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라고 그는 밝혔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영화에 투자한 주체가 기존 홀드백 순차를 무시하고 특정 윈도를 우선시한다면 전체적인 부가판권 시장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제작 개봉한 ‘해부학교실’은 모범적인 부가판권 사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홀드백 순차와 기간을 충실히 지켜 전체 영화 업계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게 최 대표의 요즘 생각이다.
전경원기자@전자신문, kw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