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2007)에는 ‘영화가 사랑한 만화’라는 기획전시가 마련됐다. 만화의 영화화는 1986년 이장호 감독이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제작한 것에서 시작,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 국제만화축제에서 별도의 전시가 기획될 만큼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으로서 만화의 위치는 공고하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유난히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제작이 도드라졌다. 이는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뮤지컬·게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표참조>
기획을 전시한 박인하 청강대 만화창작학과 교수는 “문화콘텐츠에서 한 원작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이 최근의 현상”이라며 “만화가 단순히 책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다른 서사장르에 활용되는 문화콘텐츠임을 알리는 것이 기획의도”라고 설명했다.
◇뛰어난 기획력, 탄탄한 스토리 딱이야=드라마·영화 제작사들은 ‘쩐의 전쟁’ ‘식객’ ‘타이밍’ 등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이 된 만화가 가진 △뛰어난 기획력 △탄탄한 스토리 △참신한 소재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시청률 30%를 넘은 드라마의 원작인 ‘쩐의 전쟁’의 박인권 작가는 한 작품의 스토리를 구상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을 쏟는 철저한 사전취재로 유명하다. ‘순정만화’ ‘26년’ 등의 강풀 작가 역시 만화 구성에 필요한 장소를 꼼꼼히 취재하고 스토리 구상에 많은 공을 들이는 작가다.
만화는 상상력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보지 못한 참신한 소재를 다루는 것도 드라마·영화 제작사들이 만화를 눈여겨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일례로 최근 한 드라마제작사에 의해 드라마화가 결정된 스테디셀러 ‘열혈강호(전극진·양재현)’가 있다. ‘열혈강호’는 1994년 ‘영챔프’에서 연재되기 시작해 현재 단행본 44권까지 출간돼 300만부 이상이 판매된 무협 대작. J&H필름의 조준형 PD는 “무협이란 소재를 다루면서도 캐릭터와 구성에서 기존의 무협소설이나 만화와는 차별화된 특성이 있어 선택했다”고 밝혔다.
만화가 지닌 풍부한 상상력은 온라인게임에서 사용되면서 그 진가를 더욱 확실하게 발휘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만화가 없었다면 많은 청소년들이 기억하는 ‘리니지’ ‘열혈강호’ ‘라그나로크’ 등 성공적 게임의 오늘은 없었다.
◇콘텐츠간 크로스오버도 확산=비단 만화가 다른 문화콘텐츠의 원작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영화 ‘괴물’이 석정현 작가에 의해 만화로 재탄생한 예에서 보듯 만화는 다른 문화콘텐츠와 소통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미디어코프는 ‘테일즈런너’ ‘군주’ ‘마스터오브판타지’ ‘그랜드체이스’ ‘모나토에스프리’ ‘젬파이터’ 등 6개 온라인게임을 만화책 한 권으로 묶은 연재시리즈 ‘코믹2.0’을 출시했다. 인기 온라인 게임을 원작으로 해 새롭게 재해석한 만화가 탄생한 셈이다. 코믹 2.0의 온라인 홈페이지는 게임과 만화를 연계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온라인 만화를 연재하는 만화 포털과도 차별화 된다. 이는 만화가 가진 서사적 특징이 어떤 문화콘텐츠 장르와도 접목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만화 가치 인정받는 계기돼야=만화계는 만화가 원작으로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 “만화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만화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태엽 대원씨아이 OSMU부장은 “만화의 드라마·영화화는 단순히 원작 활용의 문제가 아니다”며 “영화·게임·드라마가 된 만화를 독자들이 책·인터넷·모바일로 다시 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태엽 부장은 “만화 원작을 활용해서 드라마·영화를 많이 만드는 일본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화 된 후 3개월 안에 원작 만화 누적 판매량의 20% 정도가 팔리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다메 칸타빌레’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누적 판매량이 800만부였지만, 드라마로 되고 난 후 2000만부가 팔리기도 했다.
미디어다음에서 연재된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 강풀 작가의 ‘바보’ 등은 연재가 끝났음에도 연극 등으로 활용되면서 꾸준히 누적 페이지뷰가 증가하기도 했다.
박인하 청강대 교수는 “기존에 있는 원작에서 곶감 빼먹듯이 빼먹는다면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게 돼 있다”며 “지속적으로 장르만화나 창작을 옮겨가기 위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