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IT코리아2.0](3부)IT는 36.5℃⑤방송개혁, 지금이 적기

 지난 4월을 기준으로 별도 수신장치가 없이 지상파 방송인 KBS를 시청하기 어려운 곳이 71만4000 가구에 이른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공기’(公器)인 방송의 ‘보편적 시청권리’로부터 누수가 일어나는 것. 이를 해결하려면? 답답한 소비자(시청자)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실제로 방송위원회의 ‘TV 시청행태 연구(2006)’에 따르면 시청자가 케이블TV에 가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TV 수신이 잘 되게 하려고(57.1%)’였다. ‘채널이 다양하기 때문(23.5%)’이라거나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어서(5.0%)’라는 이유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국민이 자기 돈을 들여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한다고? 이거 뭔가 잘못됐다.

 ‘방송 개혁, 지금이 적기다!’

 디지털케이블TV와 IPTV, 위성방송과 DMB 등 서로 플랫폼은 다르나 서비스 형태를 나누기 어려운 미디어가 늘고 있다. 통신과 방송 플랫폼이 서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주파수 희소성’을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인 공익 추구 정신과 이론, 실행법을 손질할 시점이다.

 특히 통신·방송 융합 가속화로 유료 방송서비스가 늘어남에 따라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호하기 위한 고민도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동안 방송법에서는 ‘보편적 서비스’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채 방송의 공익성·공공성, 공적 책임 차원에서 보편적인 접근과 내용의 보편성을 추구해왔다. 한마디로 모호했다. 그나마 지난 1월에야 방송법 개정을 통해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방송법 개정안(제2조 제25호)에 담긴 ‘보편적 시청권’이란,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체육경기대회, 그밖의 주요 행사 등에 관한 방송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나 전국 71만4000가구는 여전히 난시청 피해를 입고 있다.

 두메산골이나 섬마을만의 고통이 아니다. 전체 가구의 60% 이상이 공통주택인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빌딩, 아파트 높이가 하늘을 찌르면서 발생하는 난시청 지역이 많다. 실제로 인천·경기에 12만8000가구, 부산·경남에 14만9000가구, 대구·경북에 16만가구, 광주·전남에 7만4000가구 등이 따로 수신장치를 달지 않으면 KBS를 볼 수 없고 케이블TV나 위성방송과 같은 유료서비스를 통해 수신하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유료방송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시청자들이 지상파 방송을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공시청(MATV)망 설비 등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률에 매몰된 나머지 획일화·상업화한 TV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뤄 공익적 프로그램이 고사하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도·교양, 사회 소수자 대변 등 시장논리에 따라 공급하기 어려운 방송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보완장치가 요구된다는 것. 매체가 늘어나면서 시청자 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송프로그램 제작 풍토가 만연하고, 통신과 방송의 융합으로 시장(시청자) 반응에 더욱 집착하는 환경에 대응한 공익성 보호·제고장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새 시대(통신방송융합) 새 질서가 필요하다”며 “모든 방송사업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규제 논리를 접고 디지털 융합시대에 걸맞을 잣대를 마련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또 “궁극적으로 규제 완화, 특히 방송사 소유·겸영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없이 플랫폼(방송국)만을 늘리는 것은 불어나는 살을 이기지 못해 걸음이 늦어지고, 그나마 제자리걸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대담-공영방송 정체성 재정립

 통신·방송 경계가 모호해지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주파수 자원의 희소성에 따른 규제 근거였던 ‘방송의 공익성’, 즉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때다. 날로 경영이 열악해지는 데다 지상파 방송의 단순 중계국으로 역할이 위축되고 있는 지방 방송사를 포함해서다. 이 같은 방송 개혁의 상징적 존재이자 대상으로서 논쟁이 거듭되는 KBS2를 중심으로 언제 어떻게 무엇을 바꾸고 고민해야 할지를 전문가에게 물었다.

 -왜 KBS2를 민영화하자고 주장하나.

 △조은기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민영화하든지, 완전 공영화하자는 거다. 그런데 완전 공영화를 하려면, 지금처럼 KBS2가 광고수익 등을 바탕으로 KBS1까지 보전해주는 상황에서는 시청자들이 내는 수신료를 최소 2배 이상 올려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할 텐데, 실현하기 어려운 얘기다. 따라서 떼어내자는 거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언론학)=KBS2 민영화에는 방송 개혁의 상징적 의미가 담겼다. 방송을 개혁하려면 무엇보다 자금이 필요하고, 그 자금이 외부로부터 유입될 필요도 있다. 언제까지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기댈 수는 없다.

 -또 하나의 민영방송을 허가해 특정 기업 등에 특혜를 준다는 시비를 부를 수 있지 않나. 새로운 미디어 재벌이 등장하거나 기존 미디어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조은기=또 다른 민영방송이 등장하면 특혜 시비를 부를 것이라는 걱정은 공익성을 ‘방송국 단위로 해결’하려다 보니 불거지는 문제다. 왜 그걸 방송국에 일임하나. TV프로그램 펀드 같은 것을 만들어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플랫폼(방송국) 중심에서 프로그램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다. KBS2 등이 상업방송으로서 이익을 많이 내면 ‘주파수 사용료’를 내도록 한 뒤 그 자금을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에 투입하는 체계도 좋은 개선책이 될 것이다. 공익적 프로그램이라는 게 시청자에 많이 노출될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돈(이익)이 안 되는데 누가(독립제작사 등) 만들려고 하겠는가. 방송발전기금이나 다른 형태의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 지원기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김국진=당연히 ‘미디어 황제’로 통하는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한 것과 같은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가치를 존중해야 할 ‘방송의 공익성’이 훼손되도록 방임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디지털(통신방송) 융합상황에서 콘텐츠 등을 모두가 공유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니 규제 이념으로서의 ‘방송의 공익성’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방 방송국들이 단순 중계국 구실에 머물고 있는데 케이블TV·위성방송·지방방송 간 협력 관계를 터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국 소유와 겸영 규제를 얼마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같은 배경에서 KBS2의 민영화 여부에 시선이 모이는 것이다.

 -재벌의 미디어 지배 등을 막아낼 구체적인 방법은.

 △조은기=많다. 재단 형태로 운영해도 되고. 적절한 주체를 찾는 게 관건이다. 개인적으로 국민주 형태로 주식을 분산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오픈 플랫폼’을 시도해볼 가치도 있다. KBS2를 단순 플랫폼(방송국)으로만 두고 블록을 끼워넣듯 방송프로그램 단위로 편성하는 것이다. 8시 인기 드라마에 이어 9시 메인 뉴스를 배치하는 등 흐름(flow)을 감안한 편성에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방송 수혜자(시청자) 이해에 부합하는 공익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김국진=기존 진입장벽 규제는 이미 기능을 충분히 했다. 이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수직적 칸막이가 아닌 전체 시장 점유율 개념을 가지고 접근(규제)할 때다. 이를 통해 새로운 자본이 한결 수월하게 방송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되 공영방송과 제반 상업방송의 규제 기준을 따로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 정책적으로 새 플랫폼(방송국)이 등장할 때마다 지상파 방송사의 진입이 허용되다 보니 안주하게 된 측면이 있다. 경쟁력 있는 사업자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또 방송프로그램 외주 활성화도 결국엔 지상파 방송사의 이익 위주로 고착됐다. 어떤 콘텐츠이든, 누가 만들었든 지상파 플랫폼에 올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플랫폼은 콘텐츠 공유 그릇이자 전달체로서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적절한 개혁 시점은 언제일까.

 △조은기=정권 교체기에 1순위로 논의할 게 KBS2 민영화를 포함한 방송 개혁이다.

 △김국진=방송사 소유·겸영 문제에까지 얽혀있기 때문에 정권 말기에는 쟁점 자체를 손대기가 어렵다. 대통령 선거 주자들의 정책적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