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벤처 "거친 생존의 파고 넘어라"

‘생존을 위해서는 M&A도 불사한다.’

 기업의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벤처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수도권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한 지방 벤처기업의 경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사업 다각화는 기본이고 기업간 협업, 기업간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열악한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궁극적으로 지방 벤처기업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M&A 열풍=M&A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대구이다. IT 및 바이오 분야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신성장동력 사업을 확보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디스플레이업체인 새로닉스(대표 허전수)는 지난 8일 PMP 제조업체인 네오솔(대표 이철호)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새로닉스는 네오솔을 흡수함으로써 무선 LCD TV 사업에서 PMP 사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대구테크노파크 벤처공장 입주기업인 전진바이오팜(대표 박성덕)도 지난달 매출 500억원대의 사료회사 코스프(대표 이성구)를 인수했다. 한방발효화장품 전문기업인 전진바이오팜은 이번 합병으로 내년에는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앞서 지역의 대표적인 광학업체인 미광콘텍트렌즈(대표 박종구)도 대구의 바이오벤처기업인 웰진을 흡수, 콘텍트렌즈사업에서 항암제 개발 등 생명공학분야로 주력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부산 소재 벤처기업인 ‘엠아이’는 협력사 관계였던 서울 소재 한국알파시스템과 우호적인 합병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엠아이비전(대표 조대화)으로 새롭게 출발한 이 기업은 MPEG4 네트워크 비디오 서버 제품군 등에서 다양한 첨단 MPEG4 영상 압축 및 전송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합병을 통해 마케팅과 SI분야 경쟁력이 높아져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존 라이선스 판매 및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공급 방식에서 탈피해 패키지 형태의 완제품 판매방식으로 전환한데 이어 부가가치가 높은 시장 개발을 위해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긴밀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1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제 2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M&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사업 다각화로 본격적인 해외 수출에 나서고 있는 C사는 동종 업계를 대상으로 M&A를 모색 중이다. 이에 앞서 A사도 제품 양산을 위해 특구내 모 기업과 M&A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밖에 3∼4곳 이상의 기업들이 대전 지역 모 회계법인에 M&A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수도권 기업들과의 M&A 성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주지역에서는 한국광산업진흥회를 중심으로 M&A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진흥회는 설립된 지 7∼8년 된 광통신부품 업체들이 M&A를 통해 대형화·전문화될 경우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동일 부품을 생산하는 일부 기업의 M&A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사업 다각화=대전지역의 대표적인 IT부품 기업인 해빛정보(대표 박병선)는 사업 영역을 기존 광학부품 제조 분야에서 친환경 도금 사업 및 표면 처리사업으로 확대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무독성 친환경 표면처리 양산 기술을 갖춘 케로나이트와 향후 2년간 국내 독점 생산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대전 유성구 문평동에 표면처리공장을 설립, 휴대폰 케이스 및 키패드 등 IT부품을 대상으로 한 친환경 도금 사업과 표면처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해빛정보는 연간 32억원 규모의 판매 실적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주지역 IT기업인 서희정보기술(대표 서경필)은 산·학·연 공동기술개발사업에 적극 참여해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초창기 소프트웨어(SW) 개발에 전념해오다 지난해부터 전광판을 네트워크 그룹화한 발광다이오드(LED) 생활정보시스템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초보자도 쉽게 로봇을 구성해 제어할 수 있는 로봇 컨트롤러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이밖에 광주지역 SW개발업체들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과 관련해 콘텐츠 개발과 컴퓨터형성이미지(CGI) 등 문화기술(CT)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올해 말 정부 제2통합전산센터 개소와 관련돼 정보보호 인력양성과 아웃소싱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 소재 제노(대표 김정상)는 인터넷 방송 솔루션 개발에서 하드웨어 장비 개발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누구라도 촬영·편집·방송의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실현할 수 있는 휴대형 인터넷방송시스템 ‘UCC TOP 제노’를 개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제노는 이밖에도 웹 에이전시와 인터넷 광고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한 데 이어 영상검색 시장 등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기업간 협업 사례=대전지역에서는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가 허브비즈 CEO 클럽을 통해 기업간 협업을 유도하고 있다. 허브비즈 CEO 클럽은 공동 연구개발, 마케팅 및 경영정보 공유 등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최근 들어 기업들의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면상발열체 전문업체 유니플라텍은 대전방지 전문업체인 옴니캠과 투명전도성(ITO) 필름 소재를 공동 개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레이저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원테크놀로지도 기능성 화장품 제조업체인 서울프로폴리스와 손잡고 레이저 수술후 2차 감염을 막고 시술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제품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광주지역에서는 LED 업계의 협업이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다. LED라이텍·지론테크놀러지·에이앤에스 등 LED업체들은 국내외 전시회에 공동 부스를 구성해 참여하는가 하면, 협업생산 및 공동 마케팅 등도 모색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는 부산정보기술협회(PIPA·회장 안현태)가 주축이 돼 부산IT컨버전스협의회를 구성,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이 협의회는 부산 지역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 IT를 접목, 열악한 부산 IT기업의 활로를 모색하고 업종 간 상생발전을 추구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협의회는 부품·소재업계 등 제조업에 IT융합 필요성을 적극 알려나가면서 해당 분야 기업의 협의회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PIPA 회원기업과의 협업시스템을 적극 장려해나갈 방침이다. 또 영상·조선·해양생물 등 부산 전략산업에 IT를 접목, 지역 산업활성화의 새로운 모토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전국팀>

◆기고-벤처기업 M&A 전문기관 설립 절실

: 백종진 벤처기업협회장

 벤처기업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 생멸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다. 창업단계를 벗어난 벤처기업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하지만 더러는 폐업의 고통을 겪으며 사멸하기도 한다.

 우리 벤처기업은 특히 2000년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벤처기업은 꾸준히 생겨나 현재 1만3000여 곳이 성업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매출 1000억을 넘긴 벤처기업도 102곳이나 탄생했다. 이는 벤처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기 시작한지 불과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실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사에 빛나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정부는 그동안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벤처특별법을 제정해 기업이 코스닥시장에 진입하기까지 성장단계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써 왔다. 벤처업계도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새로운 성장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경영환경이 모든 벤처기업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코스닥은 과포화 상태에 이르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충분할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영위하는 벤처기업 가운데 다수는 조만간 한계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벤처업계는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어떤 탈출구를 마련해 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 왔다. 결론은 지금의 인프라는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하지만, 사업전환을 통한 기업회생이나 투자자금 회수기반은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에 새로 연장된 벤처특별법에서는 M&A 관련 조항을 일부 삽입해 기업회생 및 회수시장 확대를 꾀했다.

 그럼에도 현재 경영환경에서 벤처기업의 M&A가 활성화되기에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우선 매도 또는 매수를 희망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적절한 기업가치 평가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도 장애요인이다. 더욱이 인수합병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M&A 전문기관의 설치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장차 사업승계를 못하거나 경영환경 변화로 한계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예측해 10여 년 전부터 정부 또는 민간차원의 M&A 전문기관을 설치, 회수시장 확대를 추진해 왔다. 특히 중소·벤처기업 전담 M&A 전문기관을 설치해 지금도 10곳이 성업 중이다.

 우리 업계는 조속히 벤처기업 M&A 전문기관이 설치되기를 고대한다. 벤처기업의 창업을 돕고, 이들 기업에 투자된 벤처캐피털의 자금이 M&A 방법으로 회수되고, 회수된 자금이 다시 벤처기업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벤처기업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산다사형 유기체인 벤처기업의 특성을 살려 우리 경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jjbaek@haan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