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만해도 휴맥스에 이어 매출액·이익 규모 2위를 차지하며 전도유망했던 셋톱박스 전문업체 홈캐스트. 옛 대주주와 예기치 못한 경영권 분쟁에 휩싸이면서 홈캐스트는 지난해 갑작스런 어려움에 처했다. 올초에서야 경영권 문제를 매듭짓고 잠시 무너졌던 연구개발·생산·영업 역량을 다시 추스리며 이제 재도약을 위한 날갯짓에 한창이다.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출도 영업이익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신설한 전략기획팀은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하자는 지속 가능 경영의 초석인 셈입니다.”
이보선 사장(41)은 지난해 경영권 분쟁의 경험이 오히려 회사의 체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약’이 됐다고 믿는다. 1년도 채 안돼 대부분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수출전선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 사장은 “회사 전직원이 일치단결하면서 내부 조직력은 훨씬 강해졌다”면서 “이런 분위기만 잘 끌어가도 제2의 전성기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홈캐스트의 저력은 여전하다. 셋톱박스 기술력을 좌우하는 수신제한시스템(CAS)을 6개나 보유하고 있다. 제품군도 경쟁력을 자랑한다. 올들어 수요가 늘고 있는 고화질(HD)·개인영상저장장치(PVR)·IPTV·모바일 셋톱박스 등 고부가가치형 제품군을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업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 사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매출액 대비 6%의 연구개발 투자를 해오면서 차세대 제품군을 앞서 개발해 왔다”면서 “당장 올 하반기에 해외 선진시장에서 제품 경쟁력을 입증해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홈캐스트는 올들어 주력 제품군을 고가형 하이브리드 셋톱박스로 과감하게 옮기는 한편,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던 중동·아프리카 시장의 비중을 연내 30% 대까지 낮출 계획이다. 대신 유럽·아시아·미주 등 선진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시장 환경도 방송·통신 융합, 유무선 통합 등의 추세에 맞춰 새로운 서비스와 단말기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면서 “당분간은 PVR·IP 겸용 하이브리드형 셋톱박스가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은 욕심에 못 미치지만 이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홈캐스트는 최근 최대 신흥시장으로 부상한 인도 방송사업자 시장에 신규 진출한데 이어, 하반기에는 유럽과 미주 시장에서도 대규모 수출 계약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에 5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홈캐스트는 올해 1500억원 매출에 100억원 흑자가 목표다. “지금이 바로 제2의 고도 성장기를 구현할 턴어라운드 시점”이라고 이 시장은 힘주어 말한다.
이 사장은 지난 1990년 삼성전기 종합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현 최승조 부사장과 의기투합, 지난 2000년 홈캐스트를 창업했다. 그에게 홈캐스트의 부활을 기대해도 될만한 사례 하나. 이 사장은 벤처기업에게 결코 적지 않은 업력인 지난 7년간 연평균 22%의 매출 신장을 일궈낸 인물이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