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IT인가. 인터넷 안에만 IT가 있는가. 아니, 휴대폰에 있고 위성에도 있다. 그뿐인가. 자동차에, 도로에, 건물에, 로봇에… 손가락에 꼽기는커녕 어떻게 분류할지조차 막막하다. 칼로 물을 자르듯 나눌 수 없을 정도로 IT가 거의 모든 곳에 스며들었고 더욱 깊어진다. 이처럼 빠르고 예상하기 어려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조직은 뱁새걸음조차 옮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살이 쪄 민첩성이 떨어지기 일쑤다. 다이어트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 정부를 새 초소형 고성능 그릇(행정기구)에 담읍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지척에 둔 지금, 중앙행정기관 기능 대통합을 통한 ‘초소형 고성능 행정개혁’ 논의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참여 정부 5년여 동안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중앙행정기관 조직·인력은 늘었으나 오히려 △실효성 없고 △비효율적이며 △투명하지 못한 나머지 “정책이 표류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행정기관의 덩치가 커지면서 준정부기관(산하기관)과 공기업까지 덩달아 비대해졌다. 실제로 재정경제부 아래에 한국주택금융공사와 한국투자공사, 문화관광부 아래에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 해양수산부 아래에 부산항만공사와 인천항만공사가 증설됐다. 정보통신부도 2개 준정부기관으로 나뉘어 업무 중복을 초래했던 IT 국제 협력과 수출 진흥 기능들을 하나로 묶은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을 만들었으나 조직 몸무게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황성돈 교수(한국외대 행정학과)는 “‘초소형 고성능 정부’를 만들기 위한 파격적인 조직개편안이 필요하다”며 ‘6부 2처제’를 제안했다. 6부는 △경제 △국방 △외교통일 △법무시민 △복지문화 △미래 등이다. 2처는 행정관리예산과 국가보훈이다. 이른바 ‘대통합’을 말하고 있다.
김동욱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는 “경제·국방 등 모든 곳에 스며든 IT”를 거론하며 ‘IT라는 특수 임무’를 줄 별도 기관(정통부)의 한계를 제기하며 황성돈 교수 제안에 힘을 보탰다. 황 교수도 “전자정부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안(security)·안전(safety)·신뢰(trust)”라며 “u정부(government)가 전체 시스템에 연계되고 가정·지역사회·정부 모두를 잇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이 더 큰 위험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좌표를 명확하게 하고 장기적으로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가야 한다”는 최임규 백석대 행정학과 교수의 지적에 의견을 함께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 개혁안으로 “IT를 중심축으로 하는 부처 간 기능통합”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문화산업·기술개발·산업진흥 기능을 묶어보자”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IT를 산업부 안에 포함하면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가 돼 사양 산업과 함께 쓰러지는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최대 강점이 된 IT가 두루뭉술해져 결국엔 공멸할 수 있다는 논리다. 오히려 문화산업기능까지 IT를 중심으로 짜는 ‘실험’을 제안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이에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무엇보다 문화를 산업으로 보고 진흥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것. 그는 “21세기에도 정부가 성장동력 발굴을 독려하고 될 성 부른 기술에 직접 투자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가는 사고를 이어가는 것은 실패와 낙오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IT는 세계 최강에 근접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IT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해 ‘민·관이 함께 정책을 숙의해 결정하는 체계’를 꾀할 때다.
◆IT 행정개혁 이렇게-김동욱 교수 제안
“우주 ‘빅뱅’처럼 IT가 사회 전반에 확장된 지금, ‘전략적 특수부대’(정통부)에서 벗어나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전통적 가치에 입각한 ‘큰 그림’(부처 통합)을 그릴 때다.”
김동욱 교수(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는 “지난 95년 정통부가 만들어진 이래로 IT가 주요 성장엔진으로 기능을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그림”이라며 “이제 더 이상 산업 논리에 따라 ‘IT가 국내총생산(GDP)의 몇 %를 차지한다’는 식의 시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시각은 행정개혁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및 정부조직·관료제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연속 정책토론회에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김 교수가 제안하는 세 가지 IT 관련 행정개혁방안은 이렇다.
◇미래부=“IT가 여전히 국가 전략적 기능을 한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과학기술부와 묶을 수 있다. IT를 기술 차원에서 최첨단으로 업그레이드하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 일부 교육 기능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산업부=“TV와 모니터 경계선이 사라지듯 산업 전반과의 융합(컨버전스)을 꾀해야 한다. 기기 간 융합 및 통합 속도가 빨라질수록 좋다.”
◇문화통신부 또는 디지털미디어부=“음악·영화·콘텐츠 등 문화산업 전반을 IT와 묶을 수 있다. 유통체계까지 포함해서다. 영화 유통 체계가 ‘멀티플렉스’를 지나 디지털로 배급되기 시작했듯 ‘필름산업’이 아닌 ‘IT산업’으로 바뀌었다.”
김동욱 교수는 “여성가족부·해양수산부·정통부·방송위원회·기획예산처 등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선진 체계로 묶을 대상들”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방송위원회처럼 행정 체계나 법 체계상 있을 수 없는 정파적 분배로 탄생한 조직”이라며 “방송위처럼 ‘특수 임무를 가진 조직’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고 덧불였다.
그는 또 “정부행정조직을 너무 쪼개 놔서 감당이 안 될 정도인데다 위원회가 많다 보니 옆에서 들어오는 간섭이 많되 정책적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등 아마추어 같은 조직체계”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각종 위원회에서 목소리를 높여 정책 방향을 틀었던 일부 인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등 정책을 결정한 사람과 책임을 질 사람이 괴리됐다”며 “따라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전반적인 (정부)조직 개편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동차·의료·건설·교통·국방·문화 등 거의 모든 지식정보가 디지털로 생산·가공·저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부에 ‘IT라는 특수 임무(스페셜 미션)’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국가 전략적으로 추진되는 법무·환경·교통 등과 어울리고 다양한 역사적 배경에 걸맞게 IT를 잘 녹여넣은 ‘큰 그림’을 고민할 때”라고 재차 강조했다.
◆말말말...
A:인터넷을 이용해 지식 생성 모델이 바뀌어 간다. 네이버·구글 등으로 지식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데 그게 네이버나 구글의 것인가. 또 그 공간이 네이버나 구글만의 공간인가. 아니, 제대로 정리조차 안 된 상황이다.
B:인터넷 등에서 미증유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모든 것을 정보통신망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 정통부가 다 관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C:더 큰 문제는 행정기관장의 권위가 실추된 것이다. 정통부·방송위원회와 같은 행정기관의 장이나 실무 국장이 정책을 결정해 발표하는 것은 국민과 이해당사자(기업)에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부 내 위원회나 기관 내 노동조합에서 간섭하거나 반대해서 정책의 효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많다. 이는 돛대도 없는 배를 바다에 띄우는 꼴이다.
D:정부 조직을 너무 쪼개 놓아서 감당이 안 될 정도에 이르렀다. 또 장관이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환경이 조성돼 있지 못하다. 복잡한 상위구조로 말미암아 장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이 많다. 최종 의사결정을 단순(simple)하게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E:말과 단어만 앞서고 실천이 없는 ‘혁신’이 남발됐다. 다른 방법을 찾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