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판은 늘 떠들썩하고 역동적이다. 규제산업인만큼 한쪽의 규제가 다른쪽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어떤 정책이 결정되느냐에 따라 업체별 매출이 수백억, 수천억원씩 달라지기도 한다. 올해도 KT 무선 재판매, 리비전A 식별번호 논쟁, 요금인하 방안 등을 둘러싼 한치 양보 없는 논쟁과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재 영역을 지키려는 고육지책일 뿐 미래를 위한 움직임과 거리가 멀다.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통신업체는 두드러진 것은 아니나 이보다 더 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래 10년, 미래 50년을 위해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개척하는 프런티어 경쟁이다.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저마다 신중하다.
KT그룹·SK텔레콤 그룹·LG통신그룹은 미래 먹거리를 위해 △컨버전스 사업 추진 △신규성장 동력 발굴 △글로벌 사업 등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통신시장 구도는 유선에서 KT·하나로텔레콤·LG데이콤 등 3∼4개 업체가 과점하고, 무선에서는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3사가 나눠먹고 있지만 이 같은 구도는 앞으로 2∼3년 사이에 완전하게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규제완화 로드맵을 통해 유무선 교차진입을 허용하고 신규 통신사업자의 출현을 독려하면서 통신사업의 울타리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통신서비스의 특성상 초기자금이 소요되고 유지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 시장판도가 금방 흔들릴 가능성은 적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무엇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2009년부터 지배적사업자가 보유한 망과 가입자를 일정 신규 사업자에게 내줄 수밖에 없다. 사업법이 확정되면 내년에라도 사업자들은 스스로 재판매에 나설 계획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새로운 이통사업자 출현 등의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인터넷전화 등 일부 통신사업과 단말기 유통에만 주력해온 SK네트웍스가 MVNO 사업을 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유무선으로 분리해 전략을 꾸려온 3대 통신그룹도 앞으로는 그룹차원의 유무선 복합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KT의 KTF 합병, SK텔링크·SK네트웍스를 아우르는 SK텔레콤의 유선 전략, LG데이콤의 LG파워콤 흡수합병과 LG텔레콤과의 유무선 통합 밑그림이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 조만간 대주주가 바뀌는 하나로텔레콤의 향배도 관심꺼리다. 외자 펀드가 인수전에 참여할 의사를 보이지만 SK텔레콤그룹이나 LG통신그룹도 언제나 하나로 인수를 사정권안에 뒀다.
KT는 수년내에 현재 12조원 안팎의 매출규모를 15조원대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IPTV·와이브로 등 신규사업과 글로벌 비즈니스 개척이 절실한 상태다. SK텔레콤도 현재 10조원대에 머물고 있는 매출을 확대하고 사업무대를 넓히기 위해 미국과 중국 등 해외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LG통신그룹은 현재 3위권에 그치고 있는 유무선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후발사업자로서의 공격적인 전략을 택했다. 3사간 시너지 효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요금인하와 같이 최근 불거진 외부압력은 통신사업자의 자율적인 경영의지를 퇴색시키고, 투자없는 신규사업자의 시장 진입은 투자의욕 감퇴와 후방산업 선순환 고리 약화라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