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1)]브로드밴드 강국을 넘어서…

 ‘브로드밴드 원더랜드.’

 3년전 이맘 때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에 난 기사 제목이다. 초고속인터넷(브로드밴드)에 관한한 ‘동화속 나라’ 또는 ‘이상한 나라’(원더랜드)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우리나라다. 기사는 한국과 미국의 인터넷보급률을 언급하면서 “보편적인 브로드밴드 접근이 정보화 시대 국가의 성공에 관건이 된다면 미국은 한국에 한참 뒤처졌다”라며 “한국이 디지털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7년 9월. 한국은 여전히 디지털 강국이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초고속인터넷이 집안과 PC방을 뛰쳐 나왔다. 길가에서도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무선 인터넷을 즐긴다. 유선 인터넷은 100Mbps에 이른다. 무선 인터넷 속도는 3.6Mbps로 웬만한 나라 초고속인터넷 수준이다.

 4800만 인구에 이동전화 가입자 4250만명, 초고속인터넷에 연결된 가구 1450만이다. 보급률만 보면 일부 나라가 우리나라를 앞서기도 하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초고속인터넷을, 그것도 고속에 안정적인 서비스에 손쉽고 값싸게 접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 우리나라 뿐이다.

 이 ‘원더랜드’의 걱정은 인프라가 아닌 다른 데 있다. 막강한 인프라를 갖고도 여전히 미흡한 비즈니스 활용도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공개한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e비즈니스 환경평가 순위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IT 활용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하위권인 18위였다. 한국은행측은 “선진국 기업들은 인터넷을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단순한 브로드밴드 인프라 강국을 넘어 질적인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취약한 IT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며 “특히 IT산업 육성 패러다임을 제조업 중심에서 제조업-서비스업의 균형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브로드밴드 원더랜드’를 만든 주역들이다. 통신서비스사업자는 물론 단말기·장비·콘텐츠 등 후방산업계까지 시장 정체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해 활력을 잃은 지 벌써 오래다. 사업자들은 IPTV, 와이브로와 같은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지만 꽉 막힌 규제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단말기와 장비, 콘텐츠 업체들은 내수 시장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다.

좁은 시장을 넘어 해외로 나아가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통신사업자들은 러시아와 베트남 등지에서 일부 성공을 맛 봤지만 매출비중이 1%도 채 안된다. 수십%를 넘는 글로벌 통신사업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이다. 외국 소비자들은 ‘브로드밴드 코리아’를 알아도 이를 만든 KT나 SKT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통신사업자의 글로벌 사업이 부진하니 후방산업계의 해외 진출도 여의치 않다. 알음알음 해외 시장을 뚫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글로벌 휴대폰 사업도 우리 사업자 도움없이 스스로 개척해 얻은 결과다.

 인터넷미디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와 구글은 90년대말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다. 네이버는 국내 인터넷 업계의 최강자 자리에 올랐지만 구글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다양한 콘텐츠와 참신한 시도만 놓고 보면 네이버가 구글에 전혀 꿇릴 게 없지만 구글은 세계를 평정했고, 네이버는 이제 글로벌 사업을 시작했다.

 ‘IT코리아’는 한 때 세계 각국이 부러움과 찬사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이제는 그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추억하는 말로 바뀌었다. 진정한 IT강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서둘러 국내 IT산업의 활력을 되찾고 글로벌 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 잠재력은 아직 풍부하다.

 우선 막강한 IT인프라를 서비스는 물론 기업 생산성을 비롯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도구로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심재욱 위즈커뮤니케이션 사장은 “3G에선 영상통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라면서 “우리 통신사업자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통신과 방송, 인터넷 등 u미디어 사업자들의 서비스 노하우와 기술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후방산업계도 그간 실력을 다져놓았다. 글로벌한 비즈니스 능력만 덧붙이면 어느 나라에도 통할 수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염용섭 박사는 “과거 세계 IT산업의 혁신을 주도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한다”라면서 “컨버젼스를 주제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외국 기업들처럼 우리도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u미디어사업자와 후방산업계가 합심해 뛴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계 IT의 미래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 2007년 9월, 우리 U미디어 기업들이 미래를 향해 과연 어떤 비전을 세웠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