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돈·시장·사람·제도’
한국 게임산업이 21세기 세계시장을 선도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기 위한 전략적 모색과 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외부에서 몰려오는 위기와 내부의 침체를 벗어나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기 위한 ‘어젠다’가 도출돼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산업 내부 동력을 재점검하고 세계시장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세계적 품질 갖추고 선도해야(기술)=세계 최고의 개발자로 손꼽히는 리처드 게리엇 엔씨오스틴 수석프로듀서는 “새로운 게임,다른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것 만큼 더 강력한 사업전략은 없을 것”이라며 “세계적 품질 기준을 높이는 것이 전세계 게임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한국에 충고한다.
엔씨소프트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WOW’가 온라인게임의 기술 수준을 올리고, 새로운 시장을 넓혔다면 이는 엔씨소프트에게 더없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란 판단에서다. 동시에 ‘자극제’까지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심각성을 높여가는 중국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기술개발과 이를 통한 격차 벌리기’인 것이다.
◇자금력의 획기적 제고(돈)= 돈은 어느 산업이든 선순환 구조에 의한 성장을 이끌어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자금력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기술-시장-재투자라는 일련의 사업 체계중 어느 하나도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수 없다.
해외 경쟁기업들로부터 국내 기업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고 우리 산업 자체의 내구력을 높이는데 자금문제는 더없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국내 게임업체에 대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장(IPO) 기회도 적극 완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정환 제이씨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은 “강력한 성장성을 입증 받은 게임이 아직도 국내 자본시장에선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며 “자율적으로 자금 수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산업 전체의 질적 도약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시장에 대한 전략적 공략(시장)= 언제까지나 온라인게임이 ‘메이드 인 코리아’란 이유만으로 대접 받을 수는 없으며, 벌써 이런 질서는 여러 군데서 깨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미·유럽·일본 등 전통적인 게임 강세 지역에 대한 체계적이고 새로운 접근 전략일 것이다. 또 기존 중국시장을 포함한 전략지역과 남미·러시아 등 신흥 공략지에 대한 새로운 ‘파고들기’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 초 새롭게 출범한 한국게임산업진흥원(원장 최규남)이 이런 과제에 천착하고 있는 것도 산업 내외의 요구를 깊이 반영한 행보다.
전문가들은 북미(미국 로스엔젤레스), 중국(상하이)에 한국 온라인게임 비즈니스센터가 개설되고, 앞으로 설치지역을 적극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단하고 있다.
◇개발자 고도화· 끊임없는 인력 양성(사람)= 한국산 온라인게임으로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 진출해 성공한 어떤 게임도 아직, 개발자 브랜드로서는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리처드 게리엇, 빌 로퍼, 알렉스 가든, 데이비드 존스 등 이름만으로 전세계 수천만명을 열광케도 하고, 좌절케도 하는 개발자가 아직 한국에는 나오지 않았다.
창작 산업의 특성상 게임 개발자는 산업 효과의 90% 이상을 만들어내는 중추다. 따라서 이런 개발자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과 글로벌 기준의 양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산업의 성장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김용관 게임아카데미 본부장은 “고급 개발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과 산업 흡수가 바탕되지 않으면 산업의 미래를 단정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전히 학벌·인맥·조직 등으로 움직이는 현 한국 게임산업 내부의 인력체계는 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의 효율적 실행과 세계화(제도)= 일단, 한국 게임산업은 올 초 법 시행과 함께 산업진흥을 위한 법률적 토대는 갖췄다. 하지만 △산업 장르별 균형적인 지원 체계 부재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비합리적 규제 구조 △시장·인력에 대한 비체계적 접근 등으로 여전히 개선 과제를 많이 안고 있다.
또한 산업의 국경이 무너졌듯 세계에 맞춘 제도의 시각 조정과 변화는 필수적이다.
이런 차원에서 문화관광부가 현재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는 ‘게임산업 재도약 과제(가칭)’가 게임산업을 둘러싼 제도 및 정책기조의 일대 혁신을 불러오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크게 기대되고 있다.
◆엔씨소프트·넥슨
한국 게임산업의 ‘양날개’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연매출 1조원 시대를 향해 동반 비상하고 있다.
각 사 5000억원대 매출은 게임산업 성장 탄력기 진입의 신호탄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지속 성장하기 위한 1차 관문인 셈이다.
이미 엔씨소프트와 넥슨은 수치상 6부 능선은 넘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연결매출 3387억원을 이미 달성했고, 넥슨도 올해 3000억원을 웃도는 국내외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의 일렉트로닉아츠(EA)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를 거느린 비벤디게임즈가 1년에 수 조원대 매출을 올리고, 닌텐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게임산업 전체 규모와 맞먹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여기서 한국 게임산업이 진정한 ‘세계 빅3’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 간판 기업들의 물량적 규모와 회사가치상 덩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된다.
아무리 실력있는 개발자를 품고 있고, 품질 높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쟁이 가능한 ‘돈’을 갖지 못하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세계 모든 산업분야의 경쟁구도가 그렇듯 게임도 이제 ‘규모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성장가능성도 중요하지만, 하루 빨리 경쟁할 수 있는 기본 체력과 바탕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차원에서 1조원 시대는 굉장히 산업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빅2의 1조원 달성은 한국기업들의 자신감 갖기와도 직결된 문제다. 어엿한 성장산업으로 국가·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단일게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게임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 연매출의 1조원 돌파는 국산 게임의 매출 구조가 본격적으로 대형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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