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수종사업을 찾아라’
아날로그시대의 종말과 디지털시대의 도래는 2000년대 한국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오디오·비디오·휴대기기 등 현재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이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고 아날로그 기술과의 연계성이 희미해지면서 새로운 디지털기술로 승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그 가능성을 확인해 줬다. 한국은 영원한 성장동력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의 맹주를 꿈꾸고 있다. 미래를 보는 안목과 특유의 민첩함으로 선발주자 일본을 따돌리고 메모리·LCD·PDP·OLED 등의 분야를 석권했다. 이에 힘입어 70·80년대 선진국의 하도급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 산업계는 IT산업의 팽창과 디지털 문화의 확산이라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계기로, 세계 속에 초일류 기업을 다수 배출해 냈다. IT혁명에 발빠르게 대처한 결과다. 경쟁국들이 변화를 망설이는 사이, 한국의 깬 기업들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확신과 과감한 대규모 투자로 세계 전자산업의 코어가 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을 꿰차는 데 성공했다.
이제 우리 첨단 산업계는 리더의 자리를 수성하기 위한 노력을 모으고 있다. 세계 산업계는 지금, 또 한 차례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비하고 있다. 고객맞춤형 사회의 도래·퓨전테크놀로지(FT) 혁명 등이 그것이다. 이 싸움은 우리 산업계가 영원한 리더로 다시 한번 세계 속에 이름을 날리느냐, 아니면 과거 아날로그 시대 선진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 확실하다.
이미 지난 2005년 앨빈 토플러는 대량생산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완전한 고객맞춤형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견했다. 그리고 2007년 현재 융합기술을 바탕으로 신산업·신시장이 창출되고 있으며, 그 방향이 고객의 니즈를 조합한 첨단 융합제품으로 귀결되고 있다. 향후 20∼30년을 준비하는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은 모두 이 같은 변화에 자신의 체형을 맞춰가고 있다. FT 시장은 소리없는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등이던 기업도 경쟁력을 잃는 순간, 일류의 대열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창출한 후발 주자가 순식간에 정상에 올라서는 시대가 됐다”는 말로 미래시장을 놓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을 설명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 사업을 찾지 못하면 언제든지 2류 기업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전 세계가 ‘차세대’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세대를 주도하는 힘은 ‘창조’에서 나온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는 더 이상 ‘세계 리딩 기업’의 자리를 지켜 나갈 수 없다. 한국 대기업에는 더 이상 2등 전략은 없다. 차별화를 통한 1등 전략만이 존재한다.
FT시대에는 영원한 경쟁자도, 영원한 동반자도 없다. 서로 다른 길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 공동개발의 파트너가 되고, 또 다음 순간 같은 분야에서 치열한 생존싸움을 벌여야 한다. 영원한 리더를 꿈꾸는 우리 대기업들이 10년, 20년 후 미래 로드맵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