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9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블리자드 신작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1만명이 넘는 게이머가 숨죽인 가운데 차기작 동영상 ‘스타크래프트 2’가 공개되는 순간,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도 잠시 더 큰 함성이 경기장을 메웠다. 글로벌 버전이지만 게임 상태에서 캐릭터·시나리오까지 모든 자막을 한글로 표기한 것. 세계 시장을 겨냥한 ‘스타크 2’ 첫 울음소리는 그렇게 한국을 시작으로 세계로 울려 퍼졌다.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블리자드는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이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크게 성공했고 수렁에 빠진 블리자드를 구해 주었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는 “한국 시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블리자드도 없었다”며 “이는 세계 온라인게임 역사가 바로 한국 게임 역사”임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은 우수한 인력·최고의 품질·효과적인 마케팅 3박자가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저 없이 ‘개발자’를 꼽았다. 서울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본사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모하임 CEO를 직접 영상으로 만나 봤다. 기자는 그를 12일 오전 10시30분에, 모하임 CEO는 기자를 11일 오후 6시30분에 만났다. 시간은 다르지만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환경 바로 오늘의 블리자드를 만든 성공 비결의 하나다.
#블리자드 “온라인 게임의 역사다”
블리자드는 1991년 2월 마이크 모하임·알렌 아담·프랭크 피어스 3명이 공동으로 설립한 ‘실리콘&시냅스’라는 회사가 모태다. 15년 만에 보잘것 없는 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글로벌 게임업체로 성장했다. 마이크 모하임 CEO는 “스스로도 놀랍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창업 당시 블리자드는 게임 하청업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게임업체로 발돋움했습니다.”
모하임 CEO는 지난 1998년 봄까지 블리자드 부사장을 역임한 후 대표에 올랐으며 직원 3명에서 미국·유럽·아시아 지역에 2700여명이 근무하는 글로벌기업으로 만들었다.
블리자드를 만든 일등공신은 ‘워크래프트’다. 특히 1995년 ‘워크래프트2’를 만들면서 블리자드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나 게임을 즐기는 롤플레잉 형태의 게임시장이 탄력을 받으면서 블리자드의 주가도 껑충 뛰었다.
“블리자드는 10년 넘게 최고의 판매 기록을 세우는 게임을 연이어 출시해 왔습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워크래프트3·디아블로2·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초대형 히트작은 게임 대상을 휩쓸었습니다. 블리자드 ‘배틀넷’은 수백만명이 동시 접속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서비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개발 철학 “재미없는 게임은 가라”
마이크 모하임 CEO는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재미는 게임을 만드는 기본 원칙입니다. 블리자드 창업 때부터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에 충실했습니다. 완성도나 재미에서 제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고객과 약속한 게임 출시 시점도 재조정할 때도 많았습니다.”
게임 완성도를 위해 그가 택한 전략은 ‘자유 토론’이었다. “완성도 높은 게임 개발을 위해 블리자드는 개발자 직위에 상관 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개발자가 아닌 일반 직원도 자유롭게 게임에 의견을 덧붙입니다. 자유 토론은 오늘의 블리자드를 만든 독특한 문화의 하나입니다.”
모하임 CEO가 “게임은 기본적으로 흥미가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끊임 없이 게이머 성향을 분석하고 의견을 듣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현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WOW를 예로 들겠습니다. 한국 게이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한국적인 색채를 곳곳에 가미했습니다. 이 결과 남대문·석가탑과 같은 건축 양식과 부채·김치 등 의식주 속의 한국 문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WOW’ 마니아에게도 크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블리자드의 VIP 고객이 많은 한국 시장을 겨냥해 외산 게임 중 드물게 모든 문자와 음성을 완벽하게 한글화했으며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공 신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블리자드는 WOW를 출시하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 타이틀은 2004년 출시 당시 온라인게임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주춤했던 매출과 순이익 모두 크게 성장했다. “시의적절하게 타이틀을 출시한 게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욱 중요한 건 팬들의 사랑이었습니다. 디아블로·스타크래프트·WOW 등 수많은 히트작은 모두 전 세계 팬들의 사랑과 아낌없는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게임 중독 등 일부 부작용과 관련해서도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입니다. 블리자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행성을 조장할 만한 요소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아이템 거래를 원천적으로 막고 게임 시간 설정 시스템을 제일 먼저 도입해 건전한 게임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블리자드 성공 비결에는 이같은 철저한 브랜드 관리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래 블리자드의 비전도 명확하다. “블리자드는 단순한 게임업체이기를 거부합니다. 캐릭터 인형에서 소설·만화·영화 제작까지 게임을 기반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은 무궁무진합니다.” 모하임 CEO는 “블리자드를 만든 것은 결국 팬들이었다”며 “전 세계 1위 게임업체라기 보다 게이머한테 가장 사랑받은 기업이라는 명성이 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창간 축사
창간 25주년을 축하합니다. 25주년은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25년 역사 동안 수많은 기업이 생기고 사라졌습니다. 한국은 어떤 분야보다도 게임이 강한 나라입니다. 전자신문이 게임산업을 이끄는 미디어로 자리잡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창간을 축하합니다.
블리자드는 어떤 기업
1991년 2월 마이크 모하임·앨런 애덤·프랭크 피어스 3명이 공동으로 ‘실리콘&시냅스’라는 회사를 창업해 게임시장에 진출했다. 94년 이 회사는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꿨고 이를 지금까지 사용 중이다. 블라자드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결정타는 95년 ‘워크래프트 2’였다.
이보다 앞서 워크래프트를 출시했지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듄2’ 이후 며칠 만에 공개되면서 ‘복사판’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2’는 이런 평가를 보기 좋게 따돌리면서 세계적인 타이틀로 명성을 얻었다. 1997년 1월 패키지 게임을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배틀넷’을 개발하면서 온라인게임으로 회사의 비전을 확실하게 잡았다. 디아블로·워크래프트·스타크래프트 시리즈가 인기를 누린 것도 배틀넷의 힘이 컸다.
1997년 블리자드는 프랑스 비벤디그룹에 인수됐다. 이어 1999년에 ‘워크래프트 2, 배틀넷 에디션’, 2000년 ‘디아블로2’를 출시하는 등 히트작을 이어갔다. 2002년 ‘워크래프트 3:레인 오브 카오스’ 2003년 ‘워크래프트 3:프로즌 스론’ 2004년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잇따라 출시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대표업체로 자리매김했다. 3명으로 출발한 블리자드는 미국·유럽·아시아 지역에 2700명 엔지니어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이크 모하임 CEO는 누구
마이크 모하임 CEO는 90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1991년 2월 동업자 2명과 블리자드의 전신인 실리콘&시냅스를 설립했으며 1998년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1999년부터 블리자드 모회사인 비벤디게임즈의 최고 경영위원으로도 활동해 왔다.
주요 타이틀로 본 블리자드 역사
1992년 로스트 바이킹
1994년 록&롤 레이싱
1995년 로스트 바이킹2, 워크래프트 2
1996년 워크래프트 2:비욘드 더 다크 포털, 디아블로
1998년 디아블로: 헬파이어, 스타크래프트
1999년 워크래프트 2, 배틀넷 에디션
2000년 디아블로 2
2002년 워크래프트 3
2003년 워크래프트 3: 레인 오브 카오스
2004년 월드오브워크래프트
2007년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