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연속 세계 1위. 삼성전자 LCD총괄이 지난해까지 세운 대기록이다. 올해도 내년에도 이변이 없는 한 신화는 계속된다. 일본업체보다 출발은 10년 이상 늦었지만 질주는 거침없다. 삼성전자 LCD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은 단연 이상완 사장이다. 불과 10년 남짓한 길지 않은 시간, 그는 불모지를 숲으로 바꾸는 ‘상전벽해’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어느새 꿈을 현실로 만든 그가 다시 꿈꾸는 디스플레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언제나 진중한 그가 모처럼 무르익은 비전을 제시했다.
#제4의 물결, ‘신(新) 디스플레이 라이프’
지난 60여 년간 안방을 장악해온 브라운관이 거친 ‘단말마(斷末摩)’를 몰아쉬고 있다. LCD와 PDP로 대변되는 평판 디스플레이(FPD)가 생활 곳곳으로 파고 들면서 브라운관은 머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FPD는 무서운 기세로 디스플레이의 세대 교체를 이루고 있다. 90년대 초 LCD의 등장은 노트북PC라는 새로운 물결을 몰고 왔다. 그리고 2000년에는 모니터에서, 2005년에는 TV 시장에서 주류인 브라운관을 밀어내고 제2, 제3의 신 물결(New Wave)을 일으켰다. 급속한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인간 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단순한 정보전달 기기로 활용되던 TV가 FPD 기술로 대형화 되면서 ‘홈 시네마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얇고 가벼운 FPD는 초경량 노트북PC·PMP 등의 산파 역할을 하며 ‘모바일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가정과 직장은 물론 심지어 자동차·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디스플레이로 세상과 소통하는 길도 열렸다.
지금까지의 변화는 서막에 불과하다. 인류는 앞으로 15년 내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본 듯한 ‘신(新) 디스플레이 라이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新) 디스플레이 라이프’란 개인(Personer)·가정(Living)·사회(Office & School) 등 생활 전반에 소설 같은 변화를 의미한다. 언제(Anytime)·어디서든(Anywhere)·어떤 크기(Anysize)로나 구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진정한 유비쿼터스 사회로 안내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대 속 디스플레이로 오늘의 메이크업과 의상을 결정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꺼내 조간 기사를 검색하거나 못다 읽은 소설을 불러오기도 한다. 회사에 와서 책상과 벽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테이블 디스플레이를 놓고 열띤 토론도 벌인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전자칠판(e-board)과 테이블 디스플레이로 가득한 교실에는 책장 넘기는 모습 대신 터치스크린 e북을 두드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밤이면 벽과 천장이 디스플레이로 둘러싸인 침실에서 반짝이는 은하계를 보며 잠이 드는 날도 머지 않았다. 인터넷 혁명으로 마치 종이편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e메일이 대신했듯, 거울·액자·칠판 등 생활 필수품이 하나 둘 첨단 디스플레이로 바뀌면서 인류는 ‘신 디스플레이 라이프’를 향유하게 될 것이다.
#디스플레이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 주도
‘신(新) 디스플레이 라이프’가 창출할 산업 파급효과는 천문학적이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향후 5년간 FPD시장 규모는 연평균 16%씩 성장해 2011년이면 1340억달러의 황금어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상용화가 가능한 프린터블(Printable) 디스플레이가 나오면 시장은 가늠하기 조차 힘든 규모로 수직 상승할 것이다. 현재의 반도체 공정을 거치지 않고, 마치 인쇄물처럼 롤투롤(roll-to-roll)방식으로 찍어 내는 프린터블 디스플레이는 신문·책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 벽 전체를 도배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의 진화는 미디어·콘텐츠 등 다른 산업의 대폭발도 예고하고 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e페이퍼·e북 등 뉴 미디어의 급부상을 불러올 것이다. 인터넷의 부상으로 촉발된 올드 미디어의 퇴조가 다시 한번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3D 디스플레이, 풀HD의 4배에 이르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환경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흑백TV에서 컬러TV로, HD에서 풀HD로 바뀌면서 방송사·영화사·게임 제작사들은 이같은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든 사용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울트라 모바일PC·개인용정보단말기·휴대폰 등이 하나로 통합된 ‘개인 디지털보드(Personal Digital Board)’ 시대도 성큼 다가온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 산업이 전자제품, 미디어, 콘텐츠의 변화에 따라가는 다소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이젠 여타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패러다임 변화도 가능하다.
#빠른 원천기술 확보가 패권 좌우
황금어장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일본·대만·중국 등 미래 디스플레이 강국의 패권을 놓고 대치한 가운데 미국·유럽 등도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에서는 뒤지지 않겠다는 태세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05년부터 LCD·PDP·OLED 시장을 제패하며 디스플레이 최강국의 입지를 굳힌 상태다. 하지만 위태로운 1위다. LCD에서 대만이, PDP에서 일본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 기반 산업인 장비·재료·부품의 해외 의존도도 여전히 60%를 넘는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기술 진입장벽도 두텁다. 앞선 양산기술로 LCD와 PDP 시장을 석권했지만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원천 기반기술부터 하나하나 다져 나가야만 한다. 거꾸로 위기는 기회다. 한발 앞서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맹렬한 기세로 쫓아오는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욱 벌일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할 절호의 찬스도 잡을 수 있고 계속해서 디스플레이 강국 코리아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변화를 읽는 혜안과 이에 맞춘 비즈니스 모델 개발도 빼놓을 수 없다. 무수한 애플리케이션을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파괴력 있는 것에 집중해야만 압도적인 선도기술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쌀’이라면 디스플레이는 ‘전자산업의 창(窓)’이다. 전자산업이 지속 되는 한 디스플레이 산업 디스플레이산업은 전자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전자산업의 쌀인 반도체에서 한국업체가 세계 중심에 있듯이, 전자산업의 창도 코리아의 로고가 아로새겨져야 하지 않을까.
◆이상완 사장이 현실로 만든 비전들
이상완 사장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LCD 사업 초창기 애플·디지털이큅먼트 등 대형 PC업체들은 당시 11.3인치를 선호했으나 이 사장은 이보다 좀 더 큰 12.1인치로 승부수를 던졌다. 패널은 물론 세트업체들도 하나같이 야유를 보냈지만 결국 이 사장은 12.1인치를 새 표준으로 만들며 일본업체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이일은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2003년초 일본 샤프 등 경쟁업체들이 6세대 투자를 발표했을 때 7세대 투자를 결정한 것도 이 사장의 결단이었다. 디스플레이업체들이 하나같이 LCD TV는 32인치가 주류라고 말할 때 그는 꿈만 같은 40인치의 대중화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3년 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지난해 세계 최대 8세대 투자를 결정한 뒤에는 2008년에 50인치 LCD 패널 가격을 1000달러(100만원) 이하로 낮추겠다고 선언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8세대를 가동하면서 그 꿈을 서서히 현실화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제시한 ‘신 디스플레이 라이프’도 막연한 꿈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40인치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올해 프린터블 디스플레이의 초기 프로토타입도 나온 상태다. 오랫동안 숙고하고 결심이 서면 불도저처럼 밀어 부치는 그의 집념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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