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하버드대학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임의의 두 사람이 연결되기 위해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실험했다. 우편물을 전달받아야 할 최종 인물을 가장 잘 알 것 같은 자신의 주변인물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실험결과 평균 5.5명을 거치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Six Degrees of Separation’으로 알려진 이 실험은 6단계만 거치면 어떤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해석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좁은 세상’이라는 직관을 던져 주었다. 여러 가지 제한적인 가정을 토대로 한 결과였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복잡한 연결관계로 이루어진 ‘인맥 네트워크’의 숨겨진 구조를 드러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실험이었다.
사회 연결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은 이처럼 사회적 상호작용 및 그 관계를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로 모델링해 그 구조·과정·진화 등을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분석 대상의 개별적인 속성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넘어 전체 판도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숨어 있는 구조를 판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러 분석 방법론과 구별된다.
분석 대상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평균 몇 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될 수 있는지(average distance)를 비롯, 전체 네트워크의 지도(network map)는 어떻게 생겼는지, 전체 네트워크의 크기(diameter)는 얼마인지, 각 개인은 평균 몇 명과 연결돼 있는지(average degree), 네트워크의 중심인물(hub)은 누구인지,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중개자(brokerage)는 누구인지 등에 관한 것이 기본적인 분석 내용이다.
최근 들어 이 방법론은 네트워크의 진화·발전에 관한 연구 그리고 적용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리스트 네트워크 분석 연구에 투자를 확대해 군사적인 측면에 적용하고 있다. 범죄 네트워크를 분석하면 허브가 누구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조직 내 지식 흐름 및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분석해 지식을 제공하는 허브가 누구인지,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의 중개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 조직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보험사기에 관한 연계분석, 은행 간 결제 네트워크 분석을 비롯해 온라인 커뮤니티, 생물 대사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그 적용 분야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대상의 국지적 이해를 넘어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얻는 직관이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전자신문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국내 IT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어 온 파워 리더 간의 인맥 네트워크를 사회 연결망 분석 기법으로 분석해 본 일 역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번 네트워크 분석은 직접적인 친소 관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학력·경력 등 데이터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계산, 관계의 잠재적인 개연성을 보여줬다. 특히 IT산업의 파워 리더에 초점을 맞춘 국내 최초의 인맥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분석 결과 이들 IT산업 파워 리더 간의 휴먼 네트워크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그 안에 숨겨졌던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직장 연에서는 6개 정도의 IT 관련 주요 대기업 출신으로 이루어진 강한 응집집단이 발견됐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강한 응집성을 보이며 대기업 CEO들의 ‘순혈주의’ 특성을 보였다. 여러 응집집단을 넘나들며 인맥 중개자 역할을 하는 소수의 ‘마당발’ CEO도 파악됐다. 이들이 전체 직장 네트워크를 하나로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업종별로도 차이를 보여 소수의 ‘허브’ 인물을 중심으로 집중화된 경향을 보이는 업종이 있는 반면에 군소 응집집단들이 흩어져 있는 구조를 보이기도 했다.
학연 분석에서는 세대별로 그 응집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대기업 CEO급에서는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명문대 출신이 여전히 강한 학연 응집집단을 이루고 있음이 발견됐다.
사회 연결망 분석은 연결망 데이터의 체계적인 구축과 복잡한 지표 계산을 위한 컴퓨팅 파워를 요구한다. IT의 진보와 함께 이와 같은 체계적인 전산 데이터가 사회 전체적으로 많이 쌓이고 있으며 컴퓨터의 용량과 처리 속도가 혁신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사회 연결망 분석의 지평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기훈 사이람 사장 ghghim@cyr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