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자동차, 디지털 TV….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을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SW) 즉 임베디드 SW 수준에 따라 고급 제품과 그저 그런 제품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휴대폰의 유저 인터페이스, 고급 승용차에 장착한 수십개의 센서를 운영하는 것, 복잡한 디지털 TV 기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임베디드 SW 기능에 따라 좌우된다.
임베디드란 사전적으로 ‘한 부분으로 내장돼 있다’는 의미로, 임베디드 SW는 다른 하드웨어(HW)나 시스템에 내장돼 있는 SW를 말한다. 범용 컴퓨터의 SW와 달리 디지털정보가전기기나 산업·군사용 제어기기용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비휘발성메모리에 내장돼 그 역할을 한다.
전투기 원가의 50% 이상이 SW 가격이며, HW를 구성하는 작은 부품인 반도체조차 80% 이상을 SW가 차지할 정도로 IT 산업에서 차지하는 임베디드 SW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임베디드 SW에 IT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임베디드 SW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국은 앞다퉈 임베디드 SW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만큼 임베디드 SW 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국내는 HW를 개발하는 대기업이 함께 개발하는 정도가 아니면 개발인력 10인도 채 안 되는 영세한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자신문은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공동기획으로 임베디드 SW 국내 산업 현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과제를 짚어본다.
◇국내 임베디드 SW 산업현황 =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국내 최초로 델파이 조사법에 의해 150여개 임베디드 SW 개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베디드 SW 공급기업의 개발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임베디드 SW 시장규모는 8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지난해 시장에 비해 약 2.38% 증가한 수치다. 임베디드 SW가 내장되는 임베디드 시스템 국내 생산액은 약 309조원으로, 국내 임베디드 SW 비중은 2.65% 정도다.
가트너가 조사한 세계 임베디드 시스템 내 SW 비중은 10% 수준으로 국내 임베디드 SW 산업의 열악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사에 따르면 2010년까지 한국 임베디드 SW 산업은 약 13.3%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해 8∼9%까지 쫓아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까지 세계 임베디드 SW 산업 성장률은 3.9% 수준으로 2010년에도 시스템의 약 10% 비중을 유지할 것으로 가트너는 전망했다.
전체 임베디드 SW 산업 중에서도 임베디드 운용체계(OS) 분야는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조사 대상 기업 중 국내 개발 OS를 사용한다는 응답은 6.8% 수준에 불과했다.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93.2%는 외산에 내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문정현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팀장은 “국내 임베디드 SW 산업은 워낙 영세할 뿐 아니라 HW 개발 기업이 함께 개발하는 경우도 많아 표준화된 자료 조차 찾기가 쉽지 않다”며 “수차례에 걸쳐 피드백을 받고 의견을 수렴하는 델파이기법으로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지금 = 임베디드 SW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국은 막대한 기술 개발 투자를 진행 중이다. 미국은 군사·과학용 임베디드 SW를 21세기 핵심 분야로 선정하고 매년 4000억원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유럽은 유레카의 ITEA를 통해 1999년부터 올 해까지 8년 동안 32유로(약 3조9000억원)를 투입해 임베디드 SW 기술을 개발 중이다. 영국은 범국가적 임베디드 SW 기술 양성을 위해 산학연 공동연구 단지 내에 임베디드 SW 센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일본은 1984년부터 TRON(실시간 OS 신경조직)협회에서 I-TRON, T엔진을 개발해 일본 내 가전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 업계에서는 열악한 임베디드 SW 산업의 문제점을 임베디드 SW 전문기업의 영세함과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조에서 찾았다. 전문 기업의 영세함은 이번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50개 기업 중 임베디드SW 개발인력 규모가 4인 이하인 기업은 41.5%에 달했다.
이러한 기업들은 원천기술, 고급 연구 인력, 각종 시험 및 테스트 장비, 신기술 정보 등 개발에 필요한 전반적인 조건이 부족해 용역 사업을 주로 할 수밖에 없다. 라이선스 기반 아웃소싱을 주요 업무로 하는 해외 주요 임베디드 SW 기업들과는 사업 방식부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공급기업은 영세하지만 반대로 수요 기업 즉 임베디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소수의 대기업이다. 이러한 형태의 시장 구조는 다수의 영세한 임베디드 SW 기업들 간의 과당경쟁과 수요기업의 무리한 단가 인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이번 조사에서 고객은 국내 개발 임베디드SW를 낮게 평가하고 사용을 기피하는 것은 시장에 출시된 기간이 짧기 때문에 보급 및 확산에 필요한 충분한 기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임베디드 SW 산업 역사 자체가 짧고 시장에서 성숙할 시간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나서 중소기업과의 협업 시스템을 만드는 등 상생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대기업의 시범사업을 공개해 중소기업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를 통해 임베디드 SW 기업들이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작은 규모의 사업을 통합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가동, 국내 임베디드 SW 수준을 한단계 도약시킬 기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5년간 1000억원 규모의 플래그십프로젝트를 시작한 바 있다.
임베디드 SW 기업의 기술력을 향상하기 위한 인력 교육 문제도 정부가 나서야 할 부문이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임베디드 SW 기업들 48%는 중급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임베디드 SW 개발자들은 기업이나 사설교육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중급 개발자 양성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ESSS(Embedded Software Skill-set Standards) 마련을 통한 인력양성 및 채용의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이상훈 정보통신부 SW 기술혁신팀장은 “대규모 프로젝트 가동으로 국내 임베디드 SW 기업들의 수준을 한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수요지향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곧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