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5부)로봇강국으로 가는길⑦로봇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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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든 사업을 하려면 종자돈이 있어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신규사업은 특히나 자금을 어떤 조건으로 빌릴 수 있는가에 따라 사업성패가 큰 영향을 받는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로봇수요를 향해 한참을 더 뛰어갈 지능형 로봇업체 입장에서 제품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자금줄의 안정적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우리나라의 국가 R&D사업은 대체로 정부예산과 민간기업의 대응투자를 섞어서 수행한다. 그동안 지능형 로봇분야에 투입된 자금도 대부분 정부주도의 R&D사업에 따라 집행됐다. 덕분에 지난 수년간 로봇 신기술과 제품개발은 그럭저럭 진행됐지만 상용화실적은 영 시원치 않다. 정부지원이 지능형 로봇의 R&D에만 집중되고 그보다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상용화 단계에서는 개별기업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처럼 시장수요가 성숙된 분야에서는 연료절감장치와 같은 신제품을 개발할 경우 곧바로 매출로 연결된다. 반면 지능형 로봇은 새로운 신제품을 개발해도 그에 따른 시장수요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아 기업들은 상용화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만약 존재하지 않는 로봇시장을 두드리다가 실패하면 거의 한푼도 못건질 확률이 높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지능형 로봇의 출시는 여타 업종보다 리스크가 훨씬 높은 도박이다.

 정부가 로봇개발을 부추겨 놓고서는 정작 상용화 단계에서는 자금줄이 움츠러드니 상용화 실패에 따른 파장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투자에 촛점을 만든 별도의 펀드를 조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봇펀드란=한마디로 시중에 떠도는 민간자본을 로봇산업에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금융상품이다. 기존 정부의 R&D지원만으로 지능형 로봇산업을 본궤도에 올리는데 한계가 드러난 이상 민간자본을 동원해 지능형 로봇의 개발과 양산·마케팅 등에 자금을 풀고 나중에 수익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로봇펀드의 필요성은 이미 2005년부터 유진로봇 등 일부 민간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중소기업들은 처음으로 지능형 로봇제품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자금수요가 훨씬 많은데 충격을 받았다. 머지않아 정부지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시점을 생각하면 로봇펀드와 같은 제도가 꼭 필요했다.

 그러나 로봇펀드의 설립에는 중대한 걸림돌이 있다. 지능형 로봇의 R&D와 상용화 과정에서 다른 투자대상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높고 현금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자들이 꺼린다는 점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고려해 지난 8월 서갑원 의원이 발의해 국회심의를 준비 중인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지능형 로봇촉진법)’에는 로봇펀드의 투자위험을 정부가 보증하며 조세를 감면하는 조항이 들어있다.

 로봇펀드의 투자위험은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완화해주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또한 로봇펀드를 조성, 운용할 별도의 로봇투자회사도 출범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로봇펀드의 투자위험과 세금을 감면하려면 별도의 법적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정부가 법적으로 투자자의 위험부담을 덜어주는 펀드상품으로 지난해 12월 출시된 유전펀드가 대표적이다. 유전펀드는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해 탐사에서 개발, 생산까지 20년이 넘게 걸리는 해전유전 프로젝트에 민간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유전펀드는 해외자원개발법에 따라 수출입보험공사가 투자위험을 보증하고 연 8%의 수익률을 제시하자 무려 2040억원의 민간자금이 몰려들었다. 이밖에 11월에 출시될 탄소펀드와 국내 첫 광물펀드인 니켈펀드도 세제혜택과 위험보장책으로 민간 투자자를 보호하고 있다.

 국회의 법안심사에 논의될 로봇펀드는 여타 실물펀드와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 유전·광산처럼 실체가 있는 투자처가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로봇기술·제품을 투자처로 삼는다는 점이다. 로봇펀드는 현재 R&D분야에 투자액의 10∼50%까지 지원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 혈세로 지원해온 로봇 R&D사업을 민간자본으로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로봇펀드의 기대효과=일부에서는 로봇펀드를 위해 법제도까지 신설하는 것은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로봇펀드의 순기능은 엄청나다. 우선 민간기업들은 로봇펀드가 출범하면 로봇개발에서 완제품 출시까지 한결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또한 정부가 안전성을 보장하는 로봇펀드의 출현은 지능형 로봇업계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는 약세를 보이는 국내 로봇업계의 평균주가를 한단계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강석희 다사로봇 사장은 “로봇펀드가 발행되면 로봇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자금의 안정적 조달은 물론 기업신용도의 향상으로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존 로봇업체 뿐만 아니라 로봇조합, 연구소와 신생 로봇업체들도 로봇펀드의 혜택을 받게 된다.

 지능형 로봇분야에 유입되는 자금의 규모도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로봇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로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로봇산업에 진출한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송주현 한국투자증권 팀장은 “정부가 민간투자의 방향성을 제시하면 부동산 시장을 떠도는 수십조원의 유동자금 중에서 일부는 로봇산업에 흘러들 것”이라며 “로봇촉진법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 6월까지는 1000억원 규모의 1차 로봇펀드가 출범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로봇펀드의 또 다른 장점은 지능형 로봇의 투자자가 미래의 로봇수요자로 바뀌는 시장창출 효과다. 어차피 지능형 로봇은 소비자 대상의 상용제품이기 때문에 로봇펀드에 투자한 시민들은 기꺼이 상점에서 로봇제품을 구매하는 로봇수요자가 된다. 로봇펀드로 상당한 자금력을 확보한 투자회사는 해외특허권을 사와서 관련 기업들에게 싼 값에 제공하는 등 로봇업계의 공동이익을 위한 활동도 할 것이다.

 로봇펀드의 가장 큰 가치는 금융상품으로 무형의 꿈을 실현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란 점이다. 투자의 상상력과 다양성이 결핍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실물이 없는 존재를 다루는 펀드상품은 2∼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로봇펀드가 성공하면 지적재산권, 아이디어, 표준화 등 인간의 창의력을 가치척도로 삼는 새로운 투자상품의 르네상스가 펼쳐질 것이다.

◆인터뷰-"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

:차종범 KETI 본부장

 “이제 신규 기술의 R&D재원을 정부에만 의지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새로운 기술로 이익을 볼 기업체와 수요자, 민간 투자가가 연구비용을 분담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차종범 한국전자부품연구원(KETI) 부품소재연구 본부장은 국내 로봇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로봇펀드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KETI는 로봇펀드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펀드출범과 동시에 지분참여를 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그는 세상을 바꿀 로봇기술은 장기적인 연구투자에서 나온다면서 로봇펀드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다. “HDTV는 지난 69년에 개발됐지만 2000년대에 꽃을 피웠습니다. TDX교환기는 요즘 돈으로 치면 7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어요. 새로운 로봇제품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도록 금융시스템이 꾸준히 받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차 본부장은 로봇펀드처럼 R&D에 초점을 맞춘 금융상품은 국내에서 아직 전례가 없지만 제도적 뒷받침만 있으면 확실히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로봇산업정책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 때문에 로봇펀드의 법적기반마저 흔들리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로봇촉진법의 다른 조항은 몰라도 로봇펀드는 대부분의 로봇업체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정기국회에 올라간 로봇촉진법이 좋은 방향으로 타협을 보길 바랍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