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IT관련법 쟁점](3)통방기구통합법

 지난달 28일 개최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제4차 법률안심사소위에서 위원들이 기구통합법안 및 IPTV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개최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제4차 법률안심사소위에서 위원들이 기구통합법안 및 IPTV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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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출범한 국무총리 자문기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의 다수안에 따라 정부가 발의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기구통합법)이 법안 처리를 위한 결승점에 다다랐다. 이법안은 올초 국회에 구성된 방송통신특별위원회를 통해 여야가 연내 처리를 합의하면서 일단 ‘파란불’ 신호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법안에 대해 특위 위원간, 부처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기존 제출 법안에 대한 수정 논의가 떠오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법안과 IPTV 도입을 위한 법안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언급할 정도로 IPTV 등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가 지연되면서 벌어지는 각종 경제, 산업적 손실이 막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법안과 관련해 유관부처인 정보통신부, 방송위원회 등의 입장과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통신과 방송 융합기구의 큰 틀은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1대1 통합이다. 이에 대해 융추위가 나서서 정통부와 방송위가 1:1로 통합, 통신·방송 관련 모든 기능을 통합하는 ’독임제 요소를 포함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의 안을 다수안으로 채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지난 1월 기구통합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통부와 방송위는 각각 이 법안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법안을 심의하던 국회 방통특위 법률안심사소위에서 지난달 17일 3차 회의에서 △정통부와 방송위의 진흥기능과 규제정책 기능을 독임제 부처로 통합 △규제집행기능은 위원회로 통합 등의 내용이 잠정 합의되자 방송위가 강력 반발하면서 다시 치열한 논리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열린 제4차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이 안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한 상황이다.

◇쟁점1, 규제와 진흥 기능 분리 여부= 지난 17일 방통특위 법안심사소위 합의안이 알려지면서 가장 큰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규제·진흥 기능 분리 여부’이다. 기존 기구통합법에서 규제기능과 진흥기능을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조직에서 같이 담당해야 한다는 내용을 뒤집는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에 진흥정책 수립과 집행, 규제 수립 기능을 몰아주고 대통령 산하 위원회에 규제 집행 기능만 준다는 안에 대해 방송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흥을 맡게 되는 정부 조직인 부처에서는 법령과 정책을 제·개정하는 기능을 총괄하고 위원회에서는 부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규제행정을 실행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면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이는 방송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방송 민주화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라며 “규제와 진흥은 따로 뗄 수 없는만큼 독립성이 확보된 합의제 행정기관이 업무를 총괄 수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잠정 합의안 도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일부 의원이 합의안 폐기를 강력하게 주장해 규제·진흥 분리 여부는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쟁점2. 위원 임명방식= 현재 융추위 다수안에 따라 정부가 제출한 법률에는 △위원회는 위원장 1인(장관급), 부위원장 2인 및 상임위원 2인(차관급)으로 구성하며 이들을 대통령이 임명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야 하고 탄핵소추의 대상 △상임위원은 각계를 대표할 수 있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임명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대해 정통부 측은 일단 찬성하는 입장이다. 출범하게 될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 정책 주무기관으로서 전문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 행정기관으로 설립된 만큼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부에 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방송위가 우려하는 방송의 독립성에 관해서는 △위원장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 및 탄핵소추 △각계 대표단체의 상임위원 추천 △위원 자격요건 법정화 △위원의 임기 및 직무 독립성 보장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방송위원회 측은 “위원 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위원 임명에 국회 추천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쟁점3. 타부처와 기능조정 여부= 지난해 7월 융추위에서 논의가 시작된 이래 통신방송 융합과 관련된 정통부, 문화관광부, 방송위, 산업자원부 등 관련 기관은 각각 기능 조정에 대한 이견을 제출해왔다.

정통부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가사회 정보화 및 정보보호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하고, IT기기 및 산업 진흥 기능, 디지털 콘텐츠와 방송영상, 방송광고 기능 역시 통합 위원회로 이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문화콘텐츠 분야에서의 지분을 주장했다. 융추위 논의 당시 문화부 조창희 문화산업국장은 “21세기에 콘텐츠를 방송영상, 온라인콘텐츠, 디지털콘텐츠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하며 “문화 콘텐츠의 범위 확대 추세 등을 고려해 문화부에서 콘텐츠 정책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산자부는 IT기기 및 산업 진흥 기능에 있어서 업무 중첩 문제가 있다며 산자부로 이들 기능을 이관할 것을 건의했다.

이처럼 각 부처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통합위원회 설립 법안이 공전을 거듭하자, 부처간 기능조정 문제는 기구통합 입법 완료 후 정부 전체적인 조직개편 차원에서 별도 논의하는 것을 전제로 법안이 마련됐다.

◇쟁점4. 독임제 요소 도입= 융추위에서는 방송의 독립성과 관련이 없는 기술개발, 표준화 등 방송통신산업진흥 기능에는 독임제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내놨고 법안에도 합의제와 독임제가 결합되는 형태의 기구통합안이 반영됐다.

이에 대해 방송위는 위원회 소관 사무중 일부를 위원회 의결을 거쳐 위원장이 결정하도록 규정한 부분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위원장의 권한 규정, 사무조직 등을 위원장이 처리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면서 합의제 위원회의 성격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재인 방송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독임제 요소가 이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정통부는 기술과 시장선점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IT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시장선점이 중요하므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라도 독임제 요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진행상황

 통신방송 융합 기구 설립 문제는 지난 2005년 IPTV 서비스 도입 논의가 시작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소관 업무를 어느 부처에서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논의 추진 경위= 신규 통신방송 융합서비스에 대한 소관 부처 문제가 관련 부처 사이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닫자 국무조정실에서는 지난해 7월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위원장 안문석)를 출범시켰다. 융추위를 중심으로 정통부, 방송위, 문화부 등 유관 부처 관계자와 산업·학계 등을 망라한 전문위원들이 3개월에 걸친 30여회의 마라톤 회의 끝에 다수안이 마련됐다. 다수안에서는 △통신방송 융합이라는 환경변화에 따라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관련 기능 전반을 통합해 종합·체계적 정책 수행 △독립성 보장 측면에서는 ‘합의제’, 산업 진흥 측면에서는 ‘독임제’ 성격이 필요 △통신·방송 관련 기구를 통합해 ‘대통령 소속 합의제 행정기관’을 설치하되, 독임제 요소 포함 등을 제시했다.

◇입법 추진 과정= 융추위의 다수안에 따라 정부는 지난 1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국회는 방송통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법안 처리와 관련한 회의를 개최해왔다. 국회 방통특위 회의에서는 최근까지 20여회에 걸친 회의를 통해 국무조정실,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방송위원회, 공정위원회 등 각 기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한편 유럽·일본·미국 등 해외사례를 시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최근 개최된 제3차 방통특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정부 부처와 독립 위원회 간 규제·진흥 기능을 분리하는 안이 잠정 합의됐다. 그러나 이 회의는 법안심사소위 소속 의원 총6명 중 4명만이 참석, 결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달 28일 제4차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잠정 합의안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입법 전망= 지난 9월말 제4차 법안심사소위 개최 이후 방통특위는 개점 휴업 상태다. 지난 4일 예정됐던 제5차 회의가 ‘정치관계법 개혁특별위원회’에서의 여야 갈등으로 열리지 못한 것. 법안심사 소위 의결을 거쳐 국회 본회의, 법제처 심사 등 갈길이 먼 일정이 기약 없이 연기된 것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과 여야의 날선 대립으로 방송통신특별위원회 설립 법안 처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지혜기자@전자신문, go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