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무사안일의 함정

 사상 최대 규모의 반도체장비 개발 과제인 ‘나노반도체장비 원천기술상용화 2007년도 사업’에 참여할 기업이 대부분 확정됐다. 이 사업은 차세대 45∼22나노급 장비 원천기술을 발굴·확보해 글로벌 대응이 가능한 장비를 개발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 때문에 장비별 해당분야에서 한 단계 도약을 꿈꾸는 장비업체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40여개 장비업체가 지원, 경쟁률이 5 대 1을 육박했다.

 하지만 참여업체가 선정된 후 업계에서는 ‘여전히 잡음을 우려한 나눠주기식 과제평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심사 분위기가 공정성보다는 형평성에 치우쳤다는 불만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심사과정에서 노골적으로 과거에 지원을 받은 기업은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또 연속선상에 있는 과제를 1단계는 A사에게 줬으니, 2단계는 B사에 줘야 한다는 식의 논의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러면 1단계 상용화에 성공하고 2단계에서 탈락한 기업은 글로벌시장 개척 시 해외경쟁사로부터 ‘A사 장비는 한국 정부 과제에서도 배제된 불량 장비’라는 악선전에 시달리게 된다. 세계화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 과제가 도리어 글로벌 장비업체 도약의 발목을 잡게 되는 셈이다.

 이번 사업은 창업지원사업이 아니다. 어플라이드나 TEL(도쿄일렉트론)과 같은 글로벌 장비회사를 키워내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지원자금 규모도 늘리고 선정기준도 ‘선택과 집중’으로 될 성 부른 곳에 몰아주는 쪽으로 잡았다. 기업이 세계 수준의 장비를 개발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나눠먹기식 관행을 철저하게 배제하기로 했다.

 당초 목표와 잡음을 걱정해 형평성에 우선한 사업자 선정이 이뤄졌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골고루 나눠먹기식이라면 이 사업은 ‘고만고만한 기술을 가진 기업의 양산’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할 것이다. 업계의 불만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디지털산업팀=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