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짜고치면 어떠랴!

 17일 오후 3시,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방문했다. 무려 1664건의 정부 규제 폐지와 개선 과제 등을 건의하기 위해서다. 건수가 워낙 많은만큼 이들 과제에는 통신사업자의 연구개발출연금 납부의무를 폐지하는 등 IT업계의 귀를 쫑긋 세울 내용도 다수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과제 도출 과정이 한 총리가 직접 제안해 추진됐다는 점이다. 한 총리는 취임 다음달인 지난 5월 경제계 인사와의 자리에서 규제개혁 방안 마련을 전격 제안했다. 정부가 기업, 그것도 엄청난 차별적 규제를 받는다고 주장해온 전경련 측에 규제를 없애겠다며 도움을 청한 셈이다. 한 총리는 이 자리에서 참여정부 잔여기간을 고려, 최대한 빨리 해결(?)해 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한다. 한경연 고위관계자는 “통상 1년은 소요될 과제 건의를 최대한 당겨달라고 해 10월까지 하게 된 것”이라며 ‘영웅적인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실제로 이날 한 총리에게 제출된 CD 자료는 종이로 인쇄하면 무려 5000장이 넘는다고 한다.

 재계의 이런 노력에 화답하듯 정부(총리실)는 이날 ‘재계의 규제개혁 건의 해결에 발벗고 나선다’는 일종의 보도자료를 냈다. 그것도 과제 전달식이 있던 오후 3시 한참 이전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이번에 도출된 과제는 이미 수시로 전달됐고 정부는 이를 토대로 개선방안 마련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날 전달식은 ‘요식행위’란 것, 즉 정부와 재계가 모처럼 손발이 잘 맞아들어갔다는 얘기다.

 정부가 재계에 규제개혁 과제를 직접 찾아달라고 요청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참여정부 임기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취임한 한 총리의 과감한 결정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왠지 정치적이면서도 인위적 냄새를 떨쳐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뭐 그것이 중요하랴. 규제에 신음하는 기업의 얼굴이 확 필 수만 있다면.

 김준배기자<정책팀>@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