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두 달 전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가입. 인터넷 없이는 살기 힘든 세상이다. 단지 앞 전단지를 뒤적이다 한 초고속인터넷업체가 대형 할인마트와 공동 진행하는 행사가 눈에 들어왔다. 10만원 상당의 사은품을 준단다. 마침 전기밥솥이 필요했던 K씨, 망설임 없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K씨는 공짜라는 생각에 기뻤다. 서비스 품질도 매우 만족스럽다.
10월 중순 느닷없는 상실감이 찾아왔다. 할인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동일한 초고속인터넷업체가 새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지금 가입하시면 현금 15만원에 3개월 무료 이용 혜택을 드립니다.’ 두 달 사이에 10만원 이상 신규 가입 혜택이 늘어났다. K씨는 ‘두 달 동안 유용하게 써왔으니 됐다’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사람 마음이란 간사해서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업체는 유무선 할 것 없이 신규가입자 유치에 너무나 많은 공을 들인다. 물론 가입자 기반이 힘인 통신서비스 산업에서 신규가입자 유치는 최우선 영업전략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기존 가입자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가입자를 유치할 때는 왕처럼 떠받들다가 일단 가입하면 ‘나 몰라라’ 한다.
역설적이지만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유치 경쟁이 정말 치열해 ‘약정기간 파기 위약금’까지 대신 물어주던 시절에는 기존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 있었다. 과열 경쟁이 사라진 지금 기존 가입자는 정말 찬밥신세다.
애플은 지난 9월 출시 2개월 만에 아이폰 가격을 200달러 내리면서 기존 구매자에게 100달러씩 보상해줬다.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소비자 마음을 헤아린 조치다. 이것도 부족하다고 피해보상 소송을 거는 게 미국 소비자다.
우리 통신사업자는 소비자를 너무 무르게 보는 건 아닐까. 새로운 것과 공짜 혜택만 쫓는 소비자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새 손님’만 우대하는 영업 행태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낭비만 지속할 뿐이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