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디스플레이 강국](1부)급변하는 환경⑤일본의 부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6년 10대 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일본 디스플레이업계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대반격에 나섰다. 90년대 후반 세계를 호령하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미 PDP시장은 지난해 한국을 제치고 정상을 재탈환했다. LCD에서는 샤프가 삼성전자에 앞서 8세대를 1년 먼저 투자하고 10세대 투자도 먼저 공식화하면서 ‘종가’ 부활을 꿈꾸고 있다. 소니는 ‘꿈의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TV로 브라운관 시대의 왕좌를 다시 찾겠다는 포부다.

 지난주 일본 요코하마에서 펼쳐진 FPD인터내셔널2007에도 이 같은 야심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샤프와 마쓰시타가 각각 세계 최대인 108인치 LCD와 103인치 PDP를 전면에 내세운 가운데 TMD·세이코엡슨 등도 상용화를 앞둔 AM OLED를 대거 출품하고 기세를 한껏 올렸다.

 일본의 부활이 두려운 것은 전후방 인프라가 세계 최강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디스플레이 장비와 소재시장의 80∼90%를 장악하고 있다. 소니·샤프·마쓰시타·JVC·히타치 등 글로벌 TV업체도 즐비해 있다. 산업자원부가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전·후방산업 경쟁력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다. 한국을 100으로 환산하면 일본은 장비·재료산업에서 118, TV 등 세트산업에서 110으로 멀찌감치 앞서 있다. LCD·PDP·OLED 등 패널마저 다시 정상을 탈환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의 부활이 경영 전반의 과감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비용절감 중심의 소극적인 경쟁력 향상 활동이 결국 도태를 불러왔다는 뼈아픈 자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성은 지난 10년간 적자사업을 정리하고, 경쟁자와 합작까지 불사하는 과감한 사업구조 개혁으로 나타나고 있다. TMD, IPS알파 등 일본 업체가 합작해 탄생한 기업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장 공략 전략이 더욱 공격적으로 바뀐 것도 위협적이다. 샤프가 8세대 LCD 라인을 세계 최초로 투자한 데 이어 마쓰시타는 세계 최대 PDP 공장을 2008년에 새로 가동할 계획도 밀어붙이고 있다. 소니는 한 대를 팔면 몇백만원의 손해가 예상되는 11인치 AM OLED TV를 시장 선점을 위해 12월부터 전격 시판할 계획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과 경쟁에서 한발 늦은 투자에서 비롯된 것을 깨닫기 시작한 셈이다.

 대만·중국 등과 글로벌 연대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LCD업체들에 기술을 수출제휴를 잇따라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과 LCD 합작공장을 세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패널·장비·재료 등 전·후방산업의 앞선 기술력에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여 단기간에 한국을 추격하겠다는 속셈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일본 업체들은 이 같은 급성장 전략과 병행해 최대 무기인 특허공세로 경쟁국을 견제하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2004년 후지쯔·마쓰시타 등이 한국 PDP업체를 상대로, 샤프가 대만 AU옵트로닉스를 상대로 일제히 특허소송을 제기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식재산권 분쟁은 경쟁업체들과 기술 격차를 연장하는 한편 기술 라이선싱으로 로열티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업체가 갈수록 선호하는 양상이다.

 90년대 후반 LCD와 PDP 기술이 한국에 공개되면서 추격을 빌미를 제공한 점을 들어 기술과 노하우를 블랙박스화 하려는 움직임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특허화하기 힘든 응용 기술이나 노하우의 경우 설계·생산·조달을 내부 조직에서 모두 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영업비밀방지지침, 기술유출방지지침 등을 잇따라 제정하고 핵심 기술 보안 강화에 적극 노력 중이다.

 이충훈 유비산업리서치 사장은 “일본업체들의 특허 무기화는 LCD와 PDP에서 당한 경험으로 인해 AM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AM OLED가 본격 상용화돼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에 일본 업체들이 소송을 걸어오면 사업 차질은 물론이고 비싼 특허료로 사업성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준형 삼성전자 차세대연구소장은 “일본 업체와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LCD·PDP와 달리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는 핵심기술을 먼저 개발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한국의 강점인 양산기술을 계속 주도하면서도 사업화 가능한 원천기술을 한발 빨리 개발할 수 있도록 R&D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장비·재료 경쟁력

 일본은 패널시장에서는 한국에 패권을 내줬지만 여전히 장비·재료산업에서는 세계 최강이다.

 일본 장비업체는 지난해 세계 10대 장비업체 가운데 무려 7개나 올랐다. 시장 점유율은 82%에 이르렀다. 컬러필터 재료·편광판·액정·유리기판 등 LCD 핵심 소재 대부분은 일본이 원천특허를 갖고 시장을 거의 독점하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LCD는 한국·대만에 밀려 3위지만 장비·재료 산업까지 합치면 사실상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 디스플레이 장비업체가 올린 매출의 합계는 43억1200만여달러로 웬만한 패널업체에 버금간다.

 일본 장비·재료산업의 강세는 한국 후방산업의 종속화도 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디스플레이업계의 장비·재료 국산화는 각각 50%, 66%에 이르렀지만 핵심 장비와 재료의 일본 의존율은 70%를 넘어섰다. 현재 자동화 장비는 75%, 컬러필터는 95%를 일본에서 수입 중이다.

 일본 장비·재료업체는 AM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도 선점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OLED 양산장비는 일본 알박과 도키가 양분한 상태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면 일본 장비·재료업체의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LCD·PDP에서 극복하지 못한 장비·재료 국산화가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도 재현되면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의 진정한 극일이 힘들다고 지적한다.

◆일본 디스플레이업계 혁신 현황

 일본 디스플레이산업이 재도약하는 발판은 강도 높은 혁신으로 만들어졌다.

 일본 업체는 2000년 이후 한국업체와 경쟁에서 도태되자 적자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합작을 이용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마쓰시타가 난립했던 자회사를 통폐합했고 후지쯔는 LCD사업을 샤프에, PDP사업을 히타치에 각각 매각했다. NEC는 PDP사업을 파이어니어에 넘기기도 했다.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합작도 잇따랐다. 도시바와 마쓰시타가 중소형 LCD사업을 위해 TMD를 공동 설립했고, 후지쯔·도시바·마쓰시타는 지난해 IPS알파라는 LCD 합작법인을 출범시켰다.

 이와 함께 정부 주도로 반관반민의 컨소시엄이 출범해 수평적 협력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지난 2004년 차세대 LCD 개발을 위해 샤프·히타치·엡손 등 20여개 LCD업체가 참여해 출범한 ‘퓨처비전’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컨소시엄은 그동안 업체마다 개별적으로 개발해온 부품과 소재를 공동 구매하고 함께 개발하는 ‘상생모델’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 컨소시엄에는 삼성전자와 S-LCD를 설립한 소니가 제외돼 자국 중심의 연대를 분명히 했다.

 경영에도 혁신 바람이 거셌다. 소니·마쓰시타·후지쯔 3사는 종신고용 전통을 버리고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6만5000명을 감원했다. 또 모자라는 패널 물량을 과감하게 대만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 비용절감을 실현했다.

 이 같은 구조개혁에는 일본 정부도 깊숙이 개입했다. 일본 정부는 IPS-알파 설립을 막후에서 조정하는가 하면 퓨처비전·NBCI 등 차세대 유망 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조직화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