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짧은 시간에 LCD시장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LCD시장에 진출한 지 불과 2년 만에 3개의 5세대 라인을 갖추고 추격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아직 기술력이나 자본에서 한국·대만·일본에 한참 뒤져있지만 거대한 내수시장을 무기로 LCD 강국의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산업육성 정책을 발판 삼아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 주도로 주요 LCD업체가 합병을 시도하면서 규모의 경제 실현도 급류를 타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일본·대만·한국업체와 합작해 대규모 LCD·PDP 생산라인 건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비오이오티·SVA―NEC·IVO의 3개 LCD업체가 각각 5세대 LCD라인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중국의 LCD시장 점유율은 4%로 36%대의 한국과 대만에 크게 뒤져 있다. LCD시장 진출이 일본에 15년, 한국에 10년 가까이 뒤지다 보니 아직 후발주자로서 시장 파괴력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5세대 라인을 운영 중인 3개 업체도 아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올 연말까지 LCD 3사의 합병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면 재료 구매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등 규모의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기업 신뢰도 상승에 따른 자금 조달이 가능해져 차세대 라인 투자나 연구개발(R&D)자원의 집적도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세한 자국의 LCD업체를 규합해 한국과 대만의 메이저 LCD업체와 단시간에 맞설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6세대 이상 대형 LCD라인 등 신규투자도 활기를 띠는 양상이다. 중국 TV업체 TCL은 일본 샤프와 합작해 7세대 라인을 선전에 지을 계획이며 TCL·창홍·스카이워스·콩카의 4개 TV업체는 공동으로 6세대 라인 건설을 추진 중이다. 또 대만 이노룩스는 5세대 라인을 중국 현지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톈마는 올 연말 4.5세대 라인을 상하이에서 가동할 예정이다.
중국 LCD산업이 단시간에 급부상하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중국 정부의 든든한 산업지원책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중국을 세계 디스플레이 단지로’라는 슬로건 아래 7차 5개년 계획을 범정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7차 5개년 계획에는 순차적으로 LCD업체를 늘려가는 한편 컬러필터·기판유리 등 재료와 부품을 국산화하는 전략도 포함돼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중국 업체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반면에 외국 기업에는 무거운 관세를 부과해 자국산업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정부가 직접 개별기업에 지분 투자해 자본금까지 지원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비오이오티·SVA-NEC·IVO 등에는 각각 베이징·쿤산·상하이 등 주요 시의 정부 지분이 40∼50%에 이를 정도다.
중국 LCD산업이 ‘잠룡’으로 대우받는 배경에는 풍부한 내수시장과 함께 막강한 전방산업 인프라도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은 삼성·LG·소니·샤프 등 세계적인 TV업체가 앞다퉈 현지 조립공장을 설립하면서 ‘세계 TV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삼성전자·LG필립스LCD·AU옵트로닉스·치메이옵트로닉스 등 주요 LCD업체도 대규모 모듈공장을 일제히 중국에 가동 중이다. 값싼 인건비·풍부한 시장·중국 정부 지원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세트와 모듈업체의 ‘차이나 러시’는 갈수록 열기를 더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중국 LCD업체가 2∼3년 후 한국과 기술격차를 극복하는 한편 차세대 라인 투자로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대만이나 일본보다 위협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LCD패널 생산에 이은 모듈·TV 세트 제작이 원스톱으로 이뤄지면서 전·후방산업의 시너지 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중국은 PDP·프로젝션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 산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창홍이 한국의 오리온PDP를 인수해 대규모 PDP라인 건설에 나섰고 액토디지털은 한국 AMIC와 프로젝션 TV용 엘코스(Lcos) 패널 양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서충모 AMIC 사장은 “중국에는 브라운관 TV를 생산해온 로컬기업이 무려 200여개에 달할 정도로 내수시장이 풍부하다”며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중국업체를 견제하면서도 중국의 풍부한 시장과 전방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중국 LCD산업의 강점과 약점
중국 LCD산업은 후발주자로서 기술이나 인프라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적 한계로 대부분의 기업이 한국·일본·대만 등으로부터 영입한 기술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원천기술은 물론이고 양산기술 등도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장비·부품·소재 등의 인프라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지원·거대한 내수시장·저렴한 인건비 등의 강점을 바탕으로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우선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향후 강력한 정부 지원으로 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을 육성한다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있다. 현재 중국 LCD업체는 5세대 라인 양산에서 초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향후 차세대 라인 투자를 이용한 기술력 향상과 규모의 경제 실현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연말까지 정부 주도하에 성사하기로 한 3개 LCD업체 합병의 성공 여부가 이 같은 실험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 지원 현황
중국 정부의 강력한 LCD산업 육성책은 대만을 벤치마킹한 측면이 강하다. 대만 LCD산업은 정부 주도의 성장정책을 발판으로 후발주자의 한계를 단시간에 극복한 모범사례기 때문이다. 또 같은 중국인으로서 문화적 코드가 비슷한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우선 대만 정부와 마찬가지로 세제 혜택으로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다만 대만 정부가 부가가치세·법인세 등을 면제해주는 세액 공제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중국은 수입관세를 중심으로 세제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관세 혜택으로는 중국 내 제조용으로 수입되는 LCD 재료·부품·장비 등의 관세와 소비세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수입되는 외산 LCD TV와 LCD 모듈에는 각각 30%, 3%의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이 같은 높은 관세 부과는 해외 업체가 TV와 모듈공장을 중국에 설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아예 LCD기업에 자본까지 참여하는 고강도 지원책까지 구사하고 있다. SVA―NEC·비오이오티·IVO 등 현재 5세대 라인을 운영 중인 LCD업체 모두가 지방과 중앙정부로부터 직·간접적인 자본 지원을 받은 상태다.
중국 LCD업체가 하나같이 적자를 기록 중이지만 정부가 이처럼 강력한 지원책을 구사하는 이유는 △지역의 GDP 증가 △지역 부동산 개발 △고용 창출 등의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이미 구축된 TV·모듈공장과 연계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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