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국내 게임 업계가 노리는 기회의 땅이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사용 인구를 밑거름으로 게임 시장도 성장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중국 게임 시장규모는 총 65억4000만 위안이다. 온라인게임 인구는 46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몇몇 국내 게임이 중국에서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면서 중국행 골드러시가 줄을 이었다. 올해 들어서 상황은 달라졌다. 승승장구하던 국내 온라인게임은 그 기세가 한풀 꺾였고 중국 게임 업체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종주국의 명성을 이어나가기 위한 지상과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는 일이다.
◇추락하는 한국 게임=한국 온라인게임이 중국시장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자국 게임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함께 최근 수년간 일관되게 밀어붙여온 한국산 게임에 대한 비정상적인 표적 규제가 더해진 결과다.
중국 현지 언론과 정부기관인 국가신문출판총서 등에 따르면 지난 2002년과 2003년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65% 이상을 차지하며 절정에 달했던 한국산 게임 점유율은 2006년 말10% 내외로 급감했다. 불과 3년 만에 점유율이 6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오는 2010년까지 온라인게임 시장이 무려 약 3조6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중국시장에서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이 차지할 몫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2500 수준으로 예상된다.
김영만 한빛소프트 회장은 “중국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국 업체들의 입김도 점점 세지면서 중국 진출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계약대로 돈을 주지 않거나, 중국 게임시장에서 거둔 실적을 속이는 일도 빈번하다. 한국 온라인게임을 좋은 돈벌이로 생각해 아이템을 불법적으로 만들거나 표절한 짝퉁 게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당온라인은 중국에서 온라인 댄스게임 오디션 서비스를 맡았던 나인유와 갈라섰다. 예당온라인은 “나인유가 고의적으로 매출을 축소했다”고 주장했다. 엠게임은 CDC게임즈에게 4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제소까지 당했다.
◇중국 정부의 규제가 걸림돌=이러한 중국 게임 업체의 고자세에는 중국 정부의 철저한 보호정책이 한몫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게임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4개 대도시에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산업 지원 거점을 두고 자체 게임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각 지방 정부마다 몇 십 억원의 뭉칫돈을 개발비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다. 각 성의 주요 대학에 에 게임 전문 학과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업체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은 행정 규제. 중국에서는 해외 게임 업체가 직접 서비스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협력사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아쉬운 건 외국 업체이기 때문에 중국 업체의 횡포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감수하게 된다.
서비스 승인 자격인 ‘판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국가신문출판총서에서 판호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 자체 개발 게임은 2∼3개월 이내에 나오는 데 비해 한국 게임은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게 실상이다.
특히 최근 국가신문출판총서가 내년 외국 온라인게임의 서비스 허가 자격인 판호를 20개로 정하고 이 가운데 한국산 게임에는 10개만 할당키로 결정,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판호 수를 줄이는 추세였지만 이처럼 상한선을 못박는 제한 조치를 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게임 업계는 중국 정부의 판호 제한 조치에 대해 한국산은 묶고, 자국산은 풀어주는 이른바 ‘신인해전술’을 쓰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중국 현지 게임 배급과 한국산 게임 수입을 병행하고 있는 한 업체 사장은 “한국에서 게임을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이제 판호 확보라는 벽을 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며 “판호 확보가 최대의 승부처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민관 협력 체제 구축 시급=이처럼 국내 게임 업체가 중국 업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특히 중국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서 안전장치 마련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못쓰고 있다.
모 게임업체 사장은 “중국 게임 업체에게 입은 피해가 계속되는데 협력사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계약 조항을 조목조목 마련해야한다”며 “중국에선 기본적인 계약을 언제든지 깰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이를 상도의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 업계는 아울러 우리 정부가 중국의 저작권 침해 및 불공정 거래에 대해 신속한 조치를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도 중국 게임업계의 불공정·불법 행위에 대한 직접 조사 및 대응에 나섰다. 문화관광부는 중국 상하이 한국문화원에 ‘게임비즈니스센터’를 개설하고 현지 게임시장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직접 조사와 중국정부 대상의 대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영열 문화부 게임산업팀장은 “한꺼번에 다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통상·저작권 등 정부 고유권한의 문제까지 짚어낼 수 있도록 인력과 업무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며 “국내 업계가 가장 힘들어하는 중국 정부규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 게임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 비해 중국 게임은 한국 시장에 연착륙하고 있다. 그 주역은 중국 완미시공이 개발한 ‘완미세계’다. CJ인터넷을 통해 국내 서비스되는 이 게임은 최근 상용 서비스에 들어갔는데 초반 기세가 매섭다.
CJ인터넷에 따르면 테스트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회원이 30만명에 이르렀으며 현재 회원 수는 오픈베타 테스트 때에 비해 50% 이상 증가, 45만명을 돌파했다고 설명했다. 게임 성공의 잣대 격인 동시 접속자 수도 올해 나온 게임 중 최고 수준인 3만명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온라인롤플레잉게임의 동시 접속자 수는 상용화에 들어가면 20% 정도 줄어드는 게 상례인데 완미세계는 오히려 20% 정도 상승했다.
이처럼 완미세계가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 CJ인터넷 측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효과처럼 게임 자체의 완성도도 높지만 8개월 걸친 한글 작업 등 국내 사용자의 성향을 철저하게 고려한 현지화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국산 게임보다 한 수 아래가 아니냐는 완미세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둠에 따라 중국 게임 업체의 국내 시장 공략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네오위즈, KTH, CJ인터넷, 위메이드 등 국내 게임서비스업체들은 댄스 게임인 ‘파이브스트리츠’라는 댄스게임 판권을 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게임은 중국 업체가 예당온라인이 서비스하는 ‘오디션’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중국 게임은 거인소프트의 ‘거인’이나 완미시공의 ‘주선’ 등 5개 이상으로 보인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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