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이끄는 이공계 사람들]서정욱 전자무역추진위원장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서정욱’이라는 세 글자를 입력하면 인물정보·뉴스·블로그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카테고리는 ‘백과사전’이다. 그만큼 그가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이공계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과사전은 ‘한국의 제2대 과학기술부 장관. 전기공학 박사. 전기전자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개발을 해온 원로 과학자로 코드분할다중방식(CDMA)의 이동통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주역을 맡았다(출처: 두산백과사전)’고 소개하지만 몇 문장 내지 몇 장의 원고로 그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대(공학사)·텍사스A&M대(공학박사) 등을 마친 서정욱 한국무역협회 전자무역추진위원장(73)은 40대 시절인 70년대를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서 국내 국방과학기술 발전에 쏟아부었고, 50대인 80년대에는 전자교환기(TDX) 혁명을 이끌었다. 그는 남들이 안주할 공간을 찾을 법한 60대에 접어들어서도 CDMA 전쟁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치열하게 90년대를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거쳐간 △국방과학연구소장 △한국전기통신공사 TDX단장 및 부사장 △한국과학기술원장 △체신부 전파통신기술개발추진협의회 의장 △한국이동통신 CDMA단장 및 사장 △SK텔레콤 사장 및 부회장 △과학기술부 장관 등을 보면 그의 활약상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서 위원장이 한국 정보통신 역사 속 거의 모든 터닝포인트에 등장하는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 93년 12월 24일, 모두가 들뜬 크리스마스 이브. 당시 한국이동통신의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을 이끌던 서 위원장은 크리스마스 케익을 들고 연일 계속되던 야근에서 벗어나려는 관리단 직원들을 붙잡았다.

 그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불과 하루 사이지만 해가 바뀌니 1년의 차이를 지닌다”며 “당시 연내에 이용자 요구사항을 모아 CDMA 대장정의 출사표를 공포하면 1년이라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자비한(?) 짓을 했다”고 회상했다.

 또 한번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주인공은 95년 12월 미국 퀄컴이었다. 이듬해 초로 예정된 상용서비스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믿었던 퀄컴 단말기에서 계속 오류가 발생했다. 서 위원장은 마침 한국에 머물던 퀄컴 관계자를 ‘인질’로 잡겠다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결국 퀄컴 관계자는 크리스마스를 머나먼 서울에서 보내야 했다.

 이제 서 위원장은 지나간 얘기를 들추자면 한도 없는 70대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원로과학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무역협회 전자무역추진위원장으로 활동중이다.

 서 위원장은 “지금까지 쉴틈없이 숨가쁘게 살아왔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을 이뤄왔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우리 이공계가 허장성세(虛張聲勢)와 구두선(口頭禪)을 지양하고 참된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인생모토

대관세찰(大觀細察). 크게 보면서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

좋은 책과 장난감으로 과학에 눈을 뜨게 하신 부모님.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신 선생님. 유학의 길을 터주신 공군의 선배님.

○이공계에 하고 싶은 한마디

전문가들이 신뢰하고 호응하는 과학기술행정, 세계의 교수와 학생을 모을 수 있는 대학 경쟁력, 투명하고 유연한 국책연구소 등 우리의 이상은 아직도 먼 곳에 있다. 그렇다고 낙심하면 안된다. 각자 무실역행하여 이상을 실현하자.

○주요 이력

△1957년 서울대 △1969년 미국 텍사스 A&M대 공학박사 △1970∼1982년 국방과학연구소 실장·부장·소장 △1983∼1990년 한국전기통신공사 TDX단장·부사장 △1990∼1992년 과학기술처 차관 △1992∼1993년 한국과학기술원장 △1993∼1996년 체신부 전파통신기술개발추진협의회 의장 △1995∼1996년 한국이동통신 CDMA단장·사장 △1996∼1999년 SK텔레콤 사장·부회장 △1999∼2001년 과학기술부 장관 △2002∼현재 한국무역협회 전자무역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