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의 총연구원 수는 2000명이 채 안 됐다. 연구기관도 80여개에 불과했다. 국민소득(GDP)이 100달러가 안 되던 시절이다. 그러니 산업이라고 해봤자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정도였고 산업화를 위한 자본 축적은 미미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지난 1966년 KIST가 탄생했다. 지난해 창설 40주년을 맞은 KIST는 그동안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산업화와 근대화의 밑거름이었다.
지난 1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KIST를 찾았다. 그의 과학기술정책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70년대 KIST를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먼저 운을 뗀 그는 과학기술 강국을 위한 5대 실천전략과 2대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우리나라가 기술 수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핵심 원천기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0월 말에는 대전과학고를 방문해 일본과 중국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역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과학고 방문 때만 해도 과기계의 뜨거운 감자인 PBS(Project Based System)를 잘 모르는 듯한 인상이었지만 KIST에서는 “정부가 시장 원리를 도입해야 할 곳에는 안 하고 도입 안 해야 할 곳에는 한다”며 PBS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혀 점차 과기계의 현안과 이슈를 제대로 알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날 이 후보는 자신이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과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가 서울 시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있을 때인데, 정부에서는 무직이라 압둘 대통령과의 만남이 곤란하다고 했지만 정작 압둘 대통령이 흔쾌히 자신을 만나자고 해 두 시간가량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포럼을 만들어 아시아 주요 과학자를 참여시키고 궁극적으로 인류에 기여하는 포럼이 되게 하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속으로 “나는 과학자도 아닌데 왜 비즈니스 하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까” 의아했다면서 “과학이 비즈니스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 보구나” 하고 생각했으며 압둘 대통령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 후보에게 한 수 가르쳐 준 압둘 대통령은 과학자 출신 대통령으로 인도 최초 위성발사와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2차 핵실험 등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인도 국민은 그를 ‘미사일 맨’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미 항공우주국에서 6개월 연수한 것을 빼고는 모든 공부와 연구를 인도에서 한 압둘은 과학기술로 인도를 가난에서 구하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 얼마 전 가방 두 개만 달랑 들고 대통령궁을 떠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전공이 비즈니스인지 과학기술인지의 차이일 뿐 두 사람은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점에서 꿈이 서로 닿아 있다. 과학이 국경을 모르다 보니 국적과 전공이 달랐음에도 두 사람의 그런 의기투합이 가능했을 것이다. KIST에서 “과기인이 우대받는 나라, 과기인이 성공하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역설한 이 후보는 실천을 의식한 듯 이광요 전 수상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언젠가 이 수상이 먼저 보자고 해 만난 적이 있는데 “리더는 비전과 꿈이 있어야 하며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정부는 과학기술 5대 강국을 비전으로 하는 새로운 계획안을 내놓았다. 이 계획안도 원천기술 개발 강화 등 여러 중요한 과기 정책을 담고 있다. 오는 22일에는 정동영 후보가 KIST를 찾아 과기 공약을 발표한다. 대선 후보 공약과 정부 새 계획안 대로라면 우리가 갈망하는 세계적 과기 강국이 조만간 이루어질 듯하다. 하지만 이 후보가 이광요 수상 예에서 밝혔듯 실천이 중요하다. 뉴턴은 그랬다. 진리는 단순함에서 나온다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과기강국이 되는 것도 단순하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고, 정부가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면 된다.
◆방은주/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