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달러경제
파울 W 프리츠 지음, 염정용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
“달러로는 모델료 안받아요.”
지난해만 300억원을 벌어들이며 최고 부자 모델로 꼽히는 지젤 번천이 P&G와의 계약에서 유로화를 고집해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고 누구나 좋아했던 달러가 요즘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 재정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정부도 달러 약세에 ‘백약이 무효’인듯 손들고 말았고 달러 값어치는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세계 기축통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달러 약세는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에서는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다. 통상 원화가치가 10원 올라가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3000억원 줄어들 정도로 위협적이다.
‘위기의 달러경제’는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맹렬한 비판서다. 달러 경제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부르는 시한폭탄이다.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 1990년대 초 미국저축대부조합 파산, 1994년 멕시코 금융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2000년 IT 거품 붕괴, 2002년 엔론 파산 등 달러 경제는 지난 20년간 크고 작은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흥미로운 것은 화폐 경제에 대한 접근법이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며 결국 욕망이 화폐제도까지 붕괴할 것이라는 논리다. 돌이켜보면 경제는 정치의 시녀이지 않았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은 냉전체제의 세계 패권 유지라는 욕망 충족을 위해 대규모 신용 조달에 나섰다는 것이다.
막대한 군비 경쟁으로 화폐를 마구 찍어낸 결과는 소련의 경우 파산·권력 와해였고 미국의 경우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열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대외 순채무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식 경제모델은 무절제한 소비생활과 불평등을 부추기고 끝없이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경제 윤리마저 망각해버리는 일이 잇따른다.
미국 최대 회계 부정 사건으로 기록된 엔론 사태에서 공인회계사무소 직원은 재무 서류까지 아예 소각해버리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대로가다간 미국 역시 소련처럼 파산을 맞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불합리성과 욕망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화폐제도는 무엇인가. 이 책은 금본위제도로 돌아갈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금은 가격 변동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지급 불능의 위험은 없다. 지폐는 국가 재정 파탄으로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만, 금은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금은 이자도 붙지 않기 때문에 경제 전반의 과도한 투자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금본위제만이 복지국가가 예산 적자를 끊임없이 늘려서 금융계가 과도한 투자로 내몰려 세계 경제가 붕괴하는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본위제에 대해 ‘번영과 자유에 대한 보장’이라고 소제목을 붙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세계에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 제3의 정책인 금본위제를 옹호했다.
다양한 심리학자와 철학자가 등장해 화폐 경제의 속성을 파헤치고 있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모든 경제 활동은 군중 심리에서 비롯되며 경제의 기저에는 심리학이 깔려있다는 시각도 재미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드러나는 어색한 번역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단점이다. 1만3000원.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