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 특허행정 역사에 큰 획을 긋는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세계 지식재산권의 정책방향을 주도하는 주체로 미국과 일본·유럽 중심으로 이뤄져온 3극 특허 협력이 한국과 중국이 포함된 5극 협력 체제로 전환된 의미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선진 5개국 특허청장 회담은 5극 체제 시대를 여는 첫 신호탄이었다. 이 회담은 지식재산 신흥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서 확인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사실 3극 중심의 특허협력 체제는 최근까지도 다른 국가들이 깰 수 없는 강력한 철옹성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도 한국의 진일보한 특허행정 혁신 성과와 급증하는 출원 앞에서 더 이상 자신만의 영역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5극 체제 형식으로 처음 열린 이번 회담에서 우리 특허청은 향후 5개국 특허청장 회담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이 자리에서 전상우 청장은 회담이 원론적 수준에서 탈피해 실행에 들어갈 수 있는 협력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액션 플랜’ 수립을 제안했고, 각국 특허청은 회담 종료후 3개월 이내에 실무자 레벨에서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키로 합의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았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특허 5극 체제의 주역으로 떠 오를 수 있었던 데는 2개 성과가 큰 밑거름이 됐다.
첫번째로는 특허출원 대국으로의 위상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산업재산권 출원국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산업재산권 출원은 연간 37만2000건으로, 미국과 중국·일본의 뒤를 이었다. R&D 투자 증가와 함께 지식재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산업재산권 출원이 활발하게 이뤄진 때문이다. 이 중 특허출원도 연간 16만6000건으로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주요 선진국에 대한 해외 특허 출원도 그 어느때보다 활발했다. PCT 국제특허출원건수로는 세계 5위, 미국 특허청내 외국인 특허출원 건수로는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 8월말 현재 전체 산업재산권 출원은 24만4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했다. 특히 고도의 기술개발과 연관되는 특허출원은 3.4%나 증가해 특허출원의 질도 점차 향상되고 있는 추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특허 심사 처리기간은 한국을 5극 체제로 합류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성과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6년 36.9개월이 걸리던 특허심사 처리기간을 10년만인 지난해 9.8개월로 단축, 세계 최고 수준의 심사 처리기간을 달성했다. 이는 미국(21.1개월)·일본(26개월)·유럽 특허청(24개월) 등 선진국 특허청에 비해 무려 11개월 이상 심사를 빨리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른 경제 효과도 만만치 않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 2조4464억원의 생산 증가 효과를 거뒀다. 1차 심사처리기간 단축에 따라 전체 제조업의 생산 증가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증대 효과도 이 기간 동안 9926억원에 달한다.
심사처리기간 단축은 기술의 사업화를 앞당김으로써 시장 선점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기업의 신속한 의사 결정과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을 이끌어내 궁극적으로는 국가 기술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전상우 특허청장은 “지재권 선진 그룹에 참여함으로서 우리 국익의 극대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일본과 미국간 시행중인 특허심사 하이웨이제도를 유럽과 중국 등으로 확대해 우리 국민이 세계 주요국에서 조기에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상우 특허청장, 지재권 영향력 50인에 선정
전상우 특허청장이 지난 8월 지식재산권분야의 국제저널인 ‘매니징 IP’로부터 ‘2007년 세계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IP 50인)’으로 선정됐다. IP50인에 우리나라 특허청장이 선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매니징 IP는 커버스토리에서 전 청장이 취임 1년만에 특허심사처리기간을 9.8개월로 단축시키고 미국·일본·유럽 3극 중심의 특허 협력을 한국·중국을 포함한 5극 특허협력 체제로 발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또 전 청장의 이러한 활동이 결국 한국 특허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데도 일조했다는 평가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과 전문성이 바탕이 된 전 청장의 지재권 외교가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특허로’, 특허행정정보화 국제표준 선도
한국이 특허강국으로 자리잡은 데는 특허행정 업무의 전산화도 한 몫 했다.
특허청이 2000년대 초 개발한 특허행정 정보화 시스템 ‘특허로’는 한국을 IT강국에서 특허강국으로 각인시키는 주요 계기가 됐다.
세계 첫 인터넷 기반의 특허행정정보화 시스템인 ‘특허로’는 특허·실용·상표·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대해 출원에서부터 심사·등록·심판·심사결과 확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 과정을 100% 전산화한 것이 특징이다.
출원인은 굳이 특허청을 방문하지 않아도 안방과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출원할 수 있으며 1억2000만건에 달하는 전 세계 특허 문헌 정보도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열람할 수 있다. 또 24시간 365일 무중단 전자출원 서비스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전자출원율이 전체 국내 출원의 98%에 달할 정도로 완전 정착됐다.
이처럼 한국을 특허행정 전산화의 강국으로 각인시켰던 특허로는 이제 전 세계가 앞다퉈 도입하려는 벤치마킹 1호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상 특허행정 정보화의 국제 표준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인도 등 8개국은 한국으로부터 기술컨설팅을 받았고 미국과 일본 등 30여개 국가는 벤치마킹을 수행중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지난 2월 자국의 특허행정정보화 사업에 ‘특허로’ 모델을 전격적으로 도입키로 결정하고 현재 사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에는 태국의 ‘지재권정보센터 구축사업’ 참여를 위해 MOU를 교환했으며 내달에는 실제 시범사업을 위한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이와 함께 ‘특허로’ 기능 중 국제특허에 관련된 기능만을 축약시켜 구현한 국제특허출원접수시스템(PCT-ROAD)을 개발, 이스라엘과 캐나다 등 15개국에 보급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러한 특허행정전자정부 IT 서비스 수출로 직접적인 국익 창출도 기대되고 있다.
우리 IT 서비스 기술의 해외 수출로 관련 중소 SW 업체의 수출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허행정 정보 서비스 시장이 2조원대에 달하고 내년까지 연 8% 이상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특허로’의 수출 전망도 그 어느때보다 밝다.
기존 미·일·유럽 특허청 등 선진 특허청이 주도하던 특허행정 국제표준화 경쟁 구도에서 이제는 한국이 앞서 국제표준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양상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세계 각국 특허청 정보화 사업에 우리 시스템이 도입됨으로써 직접적인 IT 서비스 수출 외에도 한국형 정보시스템 확산의 계기가 마련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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