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에서 이역만리 오지로 선교 활동을 떠나는 신부들에게 꼭 가르치는 기술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피자 만드는 법. 밀가루 반죽인 도우를 적당하게 구운 뒤 그 위에 기호에 맞게 소시지·양파·올리브·해산물 등을 올리면 손쉽게 피자를 만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도우만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위에 올라가는 재료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선교지 사정에 따라 조화롭게 재료를 골라 올리기만 하면 가장 ‘현지화된 피자’를 만들 수 있어서다. 피자 만드는 방법만 익힌다면 최소한 오지에서 돈이 없어 굶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게 교황청 생각이란다. 이처럼 만드는 일이 간편하고 현지 재료와 쉽게 어울릴 수 있으니 피자는 이미 ‘글로벌’ 음식이 됐다. 한국 음식 중에도 글로벌화 가능성이 높은 음식이 있다. 비빔밥이 그 예다. 갓 지어낸 흰 쌀밥에 고추장·참기름만 기본 재료로 제공되면 그 위에 무엇을 얹든지 비빔밥이다. 시금치·콩나물·도라지를 얹으면 한국식 비빔밥이요, 치즈·소시지·피클을 얹으면 서양식 비빔밥이다. 일본 나리타 공항 2층 돌솥비빔밥 가게는 항상 20m 이상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고추장은 다소 적게 넣어 매운 맛을 줄였지만 쌀밥과 참기름이란 기본 재료 위에 일본인 기호에 맞게 날치알·김치 등을 적당히 넣어 현지화에 성공한 탓이다.
갑자기 왠 피자와 비빔밥이냐고 핀잔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한국의 IT 산업 얘기다. 최근 국내 IT 분야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국내 업체 간 더불어 성장하기 위한 ‘상생(相生)’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 수출에 성공한 국내 중소 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 시장을 넘어선 동반 성장, 즉 ‘글로벌 상생’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만 하더라도 스티브 발머 CEO가 지난해 한국에서 발족시킨 ‘소프트웨어 생태계’ 프로젝트를 거쳐 36개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이미 몇 차례의 수출 성공 사례를 이뤄내 이 같은 글로벌 상생 체계가 효과적인 동반 성장 모델임이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을 ‘활용’하겠다는 실리적인 접근보다는 아직도 과거의 폐쇄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다국적 기업이라면 무조건 배척하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피자의 도우, 비빔밥의 쌀밥처럼 기반 기술(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 기반 기술 위에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를 적용시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IT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1달러 매출을 올리면 한국 IT 업계는 반도체 수출 증가 등의 긍정적 효과에 힘입어 13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현재 한국 내 IT 관련 일자리는 총 124만4000개가 있으며 이 중 49%인 60만5000개의 일자리가 마이크로소프트 기반 기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IDC 연구결과는 그만큼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국내 기업이 공존공생, 즉 ‘글로벌 상생’이 중요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역으로 모바일 와이맥스의 뼈대가 된 와이브로 기술이나 지상파DMB 기술·고속 메모리 기술 표준 등은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기반기술로써 글로벌 상생의 핵심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IT 환경은 초고속 인터넷망 등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및 온라인 서비스 분야에서만큼은 시장창출 능력이 상대적으로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중소 IT 기업이 내수 시장에만 초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글로벌 시장까지 염두에 둘 여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도 시각을 좀 더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마케팅 능력, 아울러 이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반 기술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열린’ 자세야말로 한국 IT 업계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상생’에 뚜렷한 철학을 가진 분이 차기 대통령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국적 기업의 국내 사장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인으로서 바라는 절실한 소망이다.
◆유재성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jsasungy@Micro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