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애플의 성장전략 해부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의 화두 중 하나가 성장동력이다. 우리 기업들은 최근까지 반도체 산업이나 휴대폰, 디지털가전 등의 영역에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빠른 성장을 구가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 성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라 새로운 아이템을 창출하고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최근 비즈니스위크가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은 애플의 신규사업 전략을 검토해 보면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들을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규사업의 성공을 위한 전략들을 검토하고 애플의 신규사업에서는 이런 전략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보자. 여기에 열거한 전략들은 신규 벤처기업의 기본 전략으로 쓰일 수도 있고, 기존 기업들이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해 새로운 분야에 진입하려 할 때에도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선택, 기술추진형과 시장견인형=신규사업의 성패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시장이다.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경쟁이 매우 심하거나 쇠퇴기에 접어든 시장에 진입해서는 기업의 전략과 기술 및 마케팅 능력이 아무리 우수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 힘들다.

애플은 혁신적인 기업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마우스를 도입한 것을 비롯해 여러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획기적인 자취를 남겼다.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할 때도 아이튠스라는 온라인 뮤직서비스와 함께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해 사용자 편의성 면에서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 번의 실패를 겪은 후 애플의 시장 전략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사업은 애플(Apple) II와 매킨토시라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성숙되지 않은 시장을 개척한 예다. 이런 유형을 기술추진(Technology Push)형 시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개척한 새로운 시장은 IBM PC라는 후발 추격자를 만나 경쟁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경험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애플은 MP3플레이어와 온라인 뮤직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때는 시장이 성숙되기를 오래 기다린 흔적이 보인다. 대신 성숙된 시장에서 기존의 고객들이 부족함을 느꼈던 사용자 편의성을 혁신적인 기술로 충족시켰다. ‘시장견인-기술연료(market pull, technology-fueled)’라는 이상적인 시장 선택의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기업에 가장 이상적인 신규시장 형태는 시장견인-기술연료 형태다. 시장은 이미 성숙해 있고 기술에 의한 혁신은 미처 만족되지 못할 때 고객의 숨은 욕구를 만족시켜 경쟁우위를 창조하면 투자를 빨리 회수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수익은 다시 재투자돼 강한 선순환 구조를 이루게 된다. 벤처기업의 창업이나 기존 기업의 신규투자 시에 따져 볼 만한 점이다.

◇팟(POD)과 팝(POP)=이 두 가지 용어의 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팟과 팝 뮤직, 이런 내용인가 하겠지만 사실 이 두 개념은 마케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팟(POD:Point Of Difference)은 어떤 유형의 상품들 차별화 요소를 말한다. 팝(POP:Point Of Parity)이란 그 상품 고유의 것이 아니라 경쟁이 되는 다른 상품들과 공유하는 우수한 특징을 일컫는다. 팟과 팝은 새로운 상품이 시장에서 순조롭게 팔리기 위해 필요한 상호보완적 요소다. 상품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도 가져야 하지만 비교되고 경쟁하는 동류의 상품도 있어야 잘 팔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독불장군은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첨단기술 기업이 ‘팟’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팝’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간과한 나머지 시장에서 실패하는 예가 많다.

신당동에 떡볶이집이 많이 모여 있는데 그 심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떡볶이집들이 모두 잘 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하필이면 좁은 구역에 다닥다닥 붙어서 점포를 열고 있는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의문이다. 이것은 ‘유형 멤버십(category membership)’이란 개념을 이해하면 실마리가 풀린다. 예를 들어 값이 비싼 명품 의류를 사는 고객은 자신이 지급하는 가격이 정당한 가격인지 상당한 불안감을 느낀다. 이럴 때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팝’이라는 요소다. 특정한 거리에 비슷한 의류 점포가 모여 있으면 서로 비교 대상과 가격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에 고객은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고 구매욕도 자극받는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술력을 자신해 차별화 요소인 ‘팟’에 집중한 나머지 어떤 ‘팝’을 가질 것인지 개념을 잃는 경우가 많다. 국내 모 기업이 개발한 휴대형 초소형 PC도 기술과 디자인이 뛰어나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론 성공하지 못했다. PDA도 아니고 휴대폰도 아니며 PC라기엔 좀 기능이 약한 어중간한 상품은 미국 대형 유통업체 매대에서 차지할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유형 멤버십이 없는 제품은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힘들다.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비슷한 개념의 기기를 UMPC란 형태로 함께 홍보하고 있다. 성과는 미지수지만 공동의 노력으로 유형 멤버십을 만들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림 1>은 애플이 새로 개발한 아이팟 터치라는 신제품을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광고한 그림이다. 이 제품은 MP3 음악이나 동영상 재생 기능뿐 아니라 와이파이 기능을 내장해 인터넷 내비게이터로도 활용될 수 있다. 다른 회사 같으면 혁신적 기능을 강조해 새 이름을 붙였겠지만 애플은 이것이 단지 새로운 아이팟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팟의 기존 고객들에게 기존의 제품처럼 쉽고 친숙하게 구입해도 좋은 친밀한 제품이라는 면을 강조한 것이다.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등 첨단 부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제품의 어떤 점이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중 정확히 어떤 경쟁제품을 대체하려는 것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고객들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기도 힘들다. 그런데 많은 벤처기업들은 유형 멤버십이 확실하지 않은 제품을 가지고 그 기술적 우수성을 고객에게 호소하려는 경우가 많다. 고객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벡터란 방향과 크기를 갖는 양이다. 크기가 같은 두 벡터를 더해도 방향이 반대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0이 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방향이 같은 혁신을 해야 고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많은 기업이 경쟁우위를 갖추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기업 내부 프로세스의 혁신을 시도한다. 그러나 실제로 동종 업계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획득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수많은 혁신의 방향이 중구난방이어서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업체들의 휴대폰은 신기능을 추가하는 데서는 항상 세계적으로 선도적 위치에 있다. 카메라폰, 뮤직폰, DMB폰, 3세대, 3.5세대 영상통화폰 등에서 보듯 항상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첨단 제품이 고객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으로 전달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은 단지 2.5세대 통신기술을 채택한 휴대폰이다. 일반적인 휴대폰 업체의 로드맵으로 본다면 상당히 뒤처지는 제품이다. 그러나 아이폰에는 많은 고객들을 매장 밖에서 밤을 새우고 기다리게 한 혁신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구현돼 있다. 터치스크린을 채용한 것도 상당히 앞선 것이지만 두 손가락을 동시에 사용해 화면의 줌인과 줌아웃을 할 수 있는 ‘멀티터치’라는 특허기술도 추가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에서 고객들이 기대하는 사용자 편의성이라는 확실한 차별화 요소에 혁신 노력을 집중한 것이다.

애플은 매킨토시에서부터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항상 고유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도입해 고객 편의성의 측면에서 확실한 경쟁우위를 지켜 왔다. 반면에 데이터 통신의 종류처럼 당장 고객이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요소는 과감히 생략했다. 오랜 기간 한 방향으로 집중함으로써 고객이 애플이란 브랜드에서 어떤 차별성을 기대해야 하는지, 즉 가치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확실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유통 구조의 차별화=비즈니스위크가 애플을 2007년에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할 때 높이 평가한 항목은 애플의 강점인 운용체계나 아이폰 같은 신제품이 아니라 ‘애플스토어’라는 새로운 형태의 판매점이었다. 애플스토어는 소니나 삼성의 플래그십 매장이 단지 브랜드 이미지 제고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과 달리 실제로 좋은 수익을 올리고 있고 계속 확장되는 추세다.

일반적인 전자제품 매장을 보면 제품들이 종류에 따라 배열돼 있다. 컴퓨터는 컴퓨터끼리, 디지털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끼리, MP3플레이어는 MP3플레이어끼리 전시돼 있다.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들과 함께 쓰일 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반면 애플스토어에는 제품들이 고객의 용도에 따라 모여 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코너, 그래픽 디자인 사용자를 위한 코너, 음악을 듣는 사람을 위한 코너 등이다. 사진을 위한 코너에는 사진기·PC·사진 편집 및 관리 SW를 모아 놓았다. 고객은 각자의 흥미에 따라 여러 제품을 함께 사용해 봄으로써 제품 포장에 써 있는 사양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제품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천재 바(genius bar)’라는 명칭의 전문가가 상담하는 코너도 마련해 경험의 질을 높이고 있다. 이런 혁신적 점포 구조는 애플이 바라는 대로 그 제품의 가치를 고객과 소통하는 데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 유통 채널이 고유의 마케팅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과 수익을 창출하는 기능을 모두 담당함으로써 마케팅과 판매가 분리되지 않고 판매점이 광고마케팅 기능을 하는 시너지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런 판매점을 고안하기 위해 애플은 모의 점포를 짓고 실험을 수없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 부문의 혁신도 고유한 벡터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물론이다.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자사 제품의 차별성을 고객들이 잘 이해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애플은 어떤 신제품이 나오든 그 광고가 어떻든 ‘아! 과연 애플답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은 경영학에서 흔히 말하는 총체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의 비전 제시, 제품 기획, 기술 개발, 판매, 고객과의 가치 커뮤니케이션 등 사업의 전 과정에서 한 방향으로 잘 정렬된 통합적 전략이 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회사 규모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브랜드 가치로 드러나고 있다.

오종훈 (포스텍 교수·펄서스테크놀러지 대표) jhoh@pulsus.co.kr

◆오종훈 (포스텍 교수·펄서스테크놀러지 대표)

1986년 KAIST 졸업(이학박사, 물리학)

1986.3∼2006.12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전자전기공학과 겸임교수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산타크루즈 캠퍼스) 방문교수

1998년 미국 벨연구소 초빙연구원

1999년 펄서스테크놀러지 설립

2000.1∼현재 펄서스테크놀러지 대표이사. IT-SoC 협회 이사. 국제오디오공학회(AES) 한국지부 회장

2002년 세계 최초 6채널 대지털 앰프 구동 IC 개발

2004년 디지털 이노베이션 대상(산자부, 정통부, 한국일보) 대상 수상

2006년 세계 최초 휴대폰용 디지털 앰프 IC 개발

2007.1∼ 현재 포스텍 기술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