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서비스의 해외 시장 진출은 쉽지 않다. 자금력만 있어도 안 되고 기술력만 있어도 안 된다. 하지만 아시아를 대표하는 통신 기업 싱텔(SingTel)과 홍콩 대기업 허치슨의 통신 자회사 3그룹(Group)은 각각 현명한 투자전략과 혁신적 서비스를 앞세워 해외시장에서 거침없는 도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두 회사의 서로 다른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소개하고 우리가 배울 점을 찾아본다.
#싱텔(SingTel)-현지화에 기반한 전략적 투자
1992년 3월에 설립된 싱텔(싱가포르 텔레콤)의 글로벌 사업 전략은 현지 상황에 가장 적합한 투자방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현지화가 쉬운 곳을 집중 공략해 승승장구해왔다.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해외시장에 뿌리내린 대표적 기업이다.
◇좁은 내수 시장이 해외 진출 촉매=싱텔은 1998년 49%의 영업이익을 누리던 싱가포르 독점통신사업자였지만 인구 400만명의 좁은 통신시장에 한계를 느꼈다. 90년대 중반 자국 이동전화 가입률이 20%대에 진입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싱텔은 ‘최적의 시기에 성장과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지역에 진출한다’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전 세계 흩어져 있던 자본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시켰다. 2006년까지 124억달러를 투자해 호주(Optus)·태국(Advanced Info Service POL)·인도(Bharti Televentures)·인도네시아(PT Telekimunikasi Selular)·필리핀(Glabal Telecom)·방글라데시(Pacific Bangladesh Telecom)에 진출했다.
3월 현재 옵투스와 5개 자회사를 포함한 총 가입자 수가 작년 대비 46% 증가한 1억2400만명을 기록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이통사 중 최대 규모의 가입자 기반이다. 전체 매출의 70%와 수익의 50%를 해외 사업자로부터 창출한다.
◇시장 수준에 맞는 지역별 세분화 전략=싱텔은 한 곳에 올인하지 않고 신흥 시장과 성숙기 시장에 고른 투자를 했다. 우선 통신서비스 보급률은 낮지만 잠재력과 환경이 양호한 국가를 집중투자 대상으로 선택해 성장성과 안정성을 추구했다. 단기적 유망 시장에는 전략적 몰입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펼쳤다.
호주처럼 어느 정도 성숙기에 이르렀거나 이미 포화상태에 가까운 시장에서는 해외 자회사와 장비나 단말기 공동구매에 따른 원가 절감 전략으로 운영 효율성과 시너지를 추구했다.
반면에 싱텔은 해외 투자시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라에 따라 정부 규제 수준이 다른만큼 투자 가능한 범위에서 투자한다. 특히 최고경영인은 해당 국가의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을 고용한다.
싱텔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성공을 거둔 이 전략을 이제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로도 적용해볼 생각이다. 림 추안 포 싱텔 해외사업부문 CEO는 올 초 “아시아태평양에 국한된 싱텔의 위치를 좀 더 과감하게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원칙에 충실한 투자=통신 산업은 초기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만 수익을 회수하려면 5∼10년이 걸린다. 싱텔은 원칙에 충실한 투자를 통해 위험요소를 줄였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사업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는 접근법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지리적으로는 가장 잘 아는 아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자사의 기술과 강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업파트너를 신중하게 선택했다. 이미 성장한 시장과 성장 중인 시장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사업의 안정화를 꾀했다.
싱텔은 재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거래를 추진하지 않는 원칙으로 유명하다. 2000년 홍콩 케이블앤와이어리스와의 600억달러 규모 합병계획과 말레이시아의 타임 엔지니어링의 인수에 실패해 언론과 분석가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조건에 맞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킴으로서 인수합병에서 과도한 값을 치르는 승자의 재앙을 피했다. 작게 시작하고 실수를 거쳐 배움으로써 후에 기회가 와서 보다 큰 투자를 진행한다는 원칙도 지킨다.
#3그룹(Group)-혁신적 비즈니스 모델로 유럽 매료
3그룹은 홍콩 종합 대기업 허치슨 왐포아(Hutchison Whampoa)의 통신부문 자회사 중 하나다. 또 다른 통신 자회사 허치슨 텔레콤 인터내셔널(HTIL)이 홍콩·마카오·인도네시아 등에서 2G와 3G 서비스를 하는 가운데 3그룹은 까다로운 유럽시장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로 급속 성장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3G 시장 선점에 총력=보다폰·O2·T-모바일·오렌지 등 전통적 강호가 존재하는 유럽 시장에서 3그룹은 후발주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형 이통사들이 3G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이 2003년 3월 유럽 최초로 3G 서비스를 영국에서 개시하고 이탈리아·호주·오스트리아·스웨덴·덴마크에서 잇따라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 패러다임을 바꿔나갔다. 3그룹의 영국법인인 3UK의 3G 네트워크 커버리지 확장 속도는 예상보다 3년이나 빨랐다. 올해 2월 현재 3UK의 3G 커버리지는 90%에 달한다. 영국 주요 도시에 7250개의 기지국을 구축했다.
3G 서비스 초기에는 충분한 단말 확보 실패와 불명확한 마케팅 전략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공격적인 가격정책과 유통채널 강화로 가입자와 단말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유럽 3G 시장 공략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2007년 3월 현재 3그룹의 글로벌 3G 가입자 수는 1472만명에 이른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선구자=3그룹은 기존 유럽 이통사들이 시도하지 않던 비즈니스 모델을 과감하게 도입하며 혁신을 주도해왔다. 지난해 말 영국에서 처음 선보인 무선 브로드밴드 패키지 ‘X시리즈’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웹 브라우징·VoIP·인스턴트 메시징과 같은 인터넷 관련 서비스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정액제를 함께 발표하면서 영국 무선인터넷 시장 활성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올 상반기 데이터 정액제를 발표한 보다폰과 오렌지가 모두 VoIP를 정액제에 포함하지 않으며 애플리케이션 유형별로 대역폭을 제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3그룹은 요금제뿐 아니라 서비스 자체로도 많은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슬링미디어·오르브와 손 잡고 PC 및 TV의 콘텐츠를 휴대전화로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으며 이통사 중 처음으로 모바일 스카이프 지원 단말기를 선보이며 이동통신망을 통한 모바일 VoIP 시대를 열었다. 반면에 보다폰과 오렌지는 동일 모델에서 VoIP 기능을 삭제하고 판매해 논란을 일으켰다.
◇빛 보는 혁신전략=3그룹은 주력 시장인 영국에서 5%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아직은 미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면서 ‘혁신적 사업자’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 주효하면서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있다. 2007년 3월 기록한 1472만명의 3G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30%나 성장한 수치다. 2006년 매출이 전년 대비 35% 증가한 506억6800만홍콩달러를 기록하고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하는 등 실적도 크게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선보인 광고기반 동영상 서비스를 총 가입자의 10%인 60만명이 이용하고 접속 횟수가 600만건 이상을 기록하는 등 3그룹이 선보인 혁신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모습은 유럽 이동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잠재적 파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허치슨의 유럽 공략 첨병인 3그룹은 이통 서비스 해외진출에 자금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현지 터줏대감의 느린 행보를 비웃는 ‘혁신 서비스’를 앞세운 3그룹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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