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ICU와 KAIST 간 통합 방침이 양교의 발전안을 먼저 만들어보자는 조건부로 가닥이 잡히면서 ICU의 자립화나 특별법에 의한 회생의 길도 함께 열어 놓아 당분간 혼선이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ICU는 국내 유일의 IT특성화 대학으로서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으로 시장 친화적인 맞춤형 고급인재를 양성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KAIST와 대등한 위치에서 통합 주도권을 행사하면 발전안(로드맵) 수립 자체가 초장부터 삐걱 거릴 공산이 크다.
또 KAIST는 이번 조건부 통합 결정으로 세계 명문 IT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일정 규모를 갖추게 되면서 세계 톱 10으로의 도약의 기회를 만들긴 했지만 정부 부처의 추가 예산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통합의 길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번 통합 논의에서 보여지듯 정보통신업계의 처지가 ICU 자립화 요구에 모인 점도 정부 측이 간과할 수 없어 통합으로 가닥은 잡았지만 재론의 여지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IT 사관학교’ 사라지나=국내 유일의 IT 특성화대학인 ICU의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선택과 집중으로 맞춤형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석·박사 과정 학생 수(616명)가 학사과정(419명)보다 많은 점이 이를 방증한다. 또 2005년 기준으로 교수 1인당 특허출원건수가 1.83건으로 국내 대학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ICU는 지난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로부터 한국 내 4년제 대학 중 교육 및 연구협력에 가장 적합한 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카네기멜론대와는 2003년부터 소프트웨어공학 복수 석사 학위과정을 운영하는 등 국제화 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영 효율화 논리에 밀려 개교 10년 만에 문을 닫을 처지에 몰린 셈이다.
◇ICU는 뒤숭숭, KAIST는 표정관리=KAIST는 이번 통합 결정으로 일단 교수 및 학생 규모 측면에서 세계 명문 IT 대학들과 동등한 수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내다보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현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90명)와 ICU 교수(47명) 숫자를 합할 경우 총 137명으로, 미국 MIT(140여명)·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어바나 샴페인(UIUC·140여명), 대만 타이완대학 이공계대학(150여명) 등과 비슷한 규모가 된다. 미국 스탠포드대학(100여명)보다는 오히려 더 많다. 학생 규모도 현재 KAIST 전자·전산학과의 경우 1400여명 정도지만, ICU(1000여명)와 통합한다면 2400여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ICU는 그동안 통합 논의과정에서 교직원 간 학생 간 갈등 표출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CU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통합이 좋을 지 모르지만, 10년이나 20년을 내다본 발전안이 나올지는 여전히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사 문제 등 산넘어 산=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넘어 산이다. 인사권과 예산권이 대표적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ICU 교수들에 대한 인사 기준이다.
KAIST와의 통합을 지지해온 ICU 교수들은 통합시 향후 6년간 교수 평가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KAIST측은 상당히 난감한 입장이다. 서 총장은 개교 후 처음으로 지난 9월 교수 테뉴어(tenure·정년 보장) 심사를 통해 신청 교수중 43%를 탈락시키면서 대학 개혁의 물꼬를 튼 바 있다.
이처럼 거침없는 대학 개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 애쓰고 있는 KAIST로서는 ICU교수들의 요구가 못내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기본 원칙은 확고하다. ICU와 통합한다 하더라도 대학 개혁만큼은 절대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양 대학간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또한 이번 통합 결정에서 IT 강국을 지향하는 정보통신업계의 바람을 반영한 ICU의 자립화 등 민영화라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어 ICU 문제는 언제든 원점에서 재논의가 가능한 점도 쉽지 않은 통합의 길을 예고하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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