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6부) 미국 로봇현장을 가다 ③하와이대 수중로봇 연구실

하와이대 수중로봇 연구팀이 호놀룰루 인근 스너그 하버에서 SAUVIM 잠수정을 바다에 투입하고 있다. 내년이면 심해 작업테스트까지 끝내고 상용화에 들어간다.
하와이대 수중로봇 연구팀이 호놀룰루 인근 스너그 하버에서 SAUVIM 잠수정을 바다에 투입하고 있다. 내년이면 심해 작업테스트까지 끝내고 상용화에 들어간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누군가 한 번 성공하면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훨씬 수월해진다. 지난 98년 박세리 선수의 극적인 LPGA 우승은 한국이 여성 골프강국으로 부상하는 기폭제가 됐다. 로봇 분야도 한국인에게 적합한 벤치마킹 대상이 있다면 세계 일류와 격차를 예상보다 쉽게 줄일 수 있다.

 

 로봇공학자는 무인로봇이 활동하는 데 최악의 환경으로 깊은 바다 속을 꼽는다. 밝은 지상에서도 로봇이 정확한 위치를 인식하고 적합한 이동경로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 안에서 청소를 하는 로봇도 정확한 위치인식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물며 빛과 전파가 전혀 닿지 않는 심해에 로봇(무인잠수정)을 빠뜨리면 열에 아홉은 방향감각을 잃고 엉뚱한 곳에 처박히기 십상이다. 결국 무인잠수정이 케이블을 깔거나 침몰된 선박을 인양하려면 반드시 사람이 원격조종으로 도와줘야 했다. 무인잠수정이 심해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정해진 루트를 따라서 탐사를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로봇이 혼자서 정교한 수중작업을 하기에는 정확한 위치제어가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와이 공대건물 한켠에 있는 수중로봇 연구실(Autonomous Systems Laboratory)은 세계 최초로 혼자서도 수중작업이 가능한 차세대 자율형 무인잠수정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연구실은 수중로봇의 정밀위치제어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무인잠수정을 수심 수㎞의 심해에 빠뜨려 놓아도 정확한 목표지점까지 약 한 뼘(20㎝) 이내 오차로 찾아가는 기술이다. 이만 한 위치정밀도라면 사람의 도움(원격 케이블) 없이도 로봇 혼자서 바다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며칠씩 작업을 하는 일도 수년 내 가능해진다. 이 연구실은 바다 속에서 로봇의 활동영역을 한 단계 넓힌 연구성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6년 설립된 하와이대 수중로봇연구실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여준구 현 항공대 총장이 하와이 교수시절 수중로봇 연구실을 처음 세우고 한국 연구원을 주축으로 혁혁한 연구성과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연구실 활동이 한창일 때는 최대 30여명의 연구진 중에서 3분의 1은 한국인이 차지하기도 했다.

 여준구 박사는 하와이대학에 부임한 이후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해 자율형 수중로봇(AUV)의 위치정밀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연구팀이 처음 개발한 수중로봇 ‘ODIN(Omni Directional Intelligent Navigator)’은 20㎝ 이하의 위치제어가 가능해 전문가의 경탄을 자아냈다. 당시 다른 AUV가 1m 남짓한 정확도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여 박사는 이러한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 91년 한인 교수로는 두 번째로 미국 대통령 상을 수상했다. 미 해군도 하와이대 수중로봇 연구실의 성과에 주목하고 지난 96년 굵직한 국방 프로젝트를 여 박사에게 맡겼다. 수중에서 스스로 작업을 하는 자율형 무인잠수정(SAUVIM:Semi Autonomous Underwater Vehicle for Intervention Mission)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러 SAUVIM 프로젝트는 95% 이상의 진척도를 보이며 최종 테스트를 남겨두고 있다. 사람의 도움 없이도 자체 판단으로 로봇팔을 작동하는 무인잠수정이 활약하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최성근 하와이대 기계공학과 교수

 “NASA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수중로봇 개발은 우주로봇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작업입니다.”

 연구실 운영을 책임지는 최성근 하와이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캠퍼스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부둣가의 한 건물로 안내했다. 최 교수가 자랑하는 SAUVIM 무인잠수정은 무게만도 6톤으로 웬만한 SUV 차량보다도 덩치가 컸다. 현재 무인잠수정의 HW·SW 개발작업은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내년 4월 심해에 투입돼 각종 테스트에 들어갈 예정이다. 주요 부품은 테스트를 위해 분해된 상태였지만 길이 2m의 로봇팔이 장착되면 케이블 깔기·수중폭탄의 위치파악·표본 채집·해저공사 등을 거뜬히 할 수 있다. SAUVIM의 주변에는 약 25개의 특수센서가 장착돼 GPS신호도 닿지 않는 심해에서 길잡이 노릇을 한다. 최 교수는 무인수중로봇이 해저에서 자동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작업하는 진행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줬다. 그동안 미해군 연구소가 하와이 수중로봇 연구실에 지원한 자금규모는 1200만달러가 넘는다. 수중에서 홀로 작업이 가능한 자율형 무인잠수정의 군사적·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방증이다. 최 교수는 “수면 위에서 케이블로 조종되는 원격 무인잠수정(ROV:Remotely Operated Vehicle)은 선박운영비 때문에 하루 3만달러가 넘는 비용이 든다”면서 완전 자율형 무인잠수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자율형 무인잠수정은 물속에 빠뜨려 놓고 작업이 끝나면 선박이 와서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ROV보다 유지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2010년대 후반이면 연료전지를 장착한 무인잠수정이 등장해서 최고 한 달까지 수중작업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배터리 전력이 떨어지면 알아서 항구로 귀환하는 무인잠수정 개발이 궁극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와 연구실 주요 멤버는 그동안 축적한 해양로봇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2001년 MASE(Marine Autonomous Systems Engineering)라는 로봇전문 벤처기업을 세웠다. MASE는 앞으로 2년내 SAUVIM의 자율기능을 이용한 자동 수중로봇과 해난사고 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선박을 개발해서 대박을 노리고 있다. 하와이대 수중로봇 연구실은 우리나라 해양로봇의 성장에도 중요한 촉매로 작용했다. 지난 20년간 이 곳을 거쳐서 로봇기술을 배워간 한국인은 30여명에 달한다. 척박한 국내 로봇계에 자신감을 심어줬던 하와이 대학의 모범적 사례는 우주로봇을 비롯한 여타 극한로봇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인터뷰: 여준구 항공대 총장

 “한국은 극한로봇분야에서 선진국과 격차를 짧은 시일내 따라잡을 기술력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입니다.”

 여준구 항공대 총장(49)은 하와이 대학에서 18년간 재직하면서 수중로봇 연구실의 총책임자로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남겼다. 이후 미국립과학재단(NSF)에서 로봇프로젝트를 관리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던 그는 지난해 항공대 총장직을 수락하고 갑자기 한국행을 택했다. “미국 과학계에서 익힌 노하우·인맥을 우리나라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력을 살려 항공대에서도 무인비행기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여 총장은 자신의 로봇연구실에서 배출한 한국 연구원이 국내 해양로봇발전에 도움이 된 사례를 들면서 우리 나라가 선진국과 기술차이를 따라잡으려면 혼자 도전하기보다는 국제협력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오랜 연구실 운영과 NSF의 로봇프로젝트 관리를 맡으면서 첨단기술개발에 대한 연구비지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기업과 정부의 해외기술투자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 총장은 “미국에 있는 일본계 교수는 대부분 자국 정부·기업의 우선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지만 유독 한국 기업은 R&D파트너로 미국인 교수나 연구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연구인력을 국가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놀룰루(미국)=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