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IT컨실팅에 첫 발을 딛다
1983년 초 어느날, 그날도 나는 안권회계법인(후에 안건회계법인으로 상호 변경)에서 회계감사부의 매니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법인 대표가 호출을 하더니 안권회계법인과 멤버펌(Member firm) 관계에 있는 딜로이트해스킨스셀즈에 약 2년간 교환근무를 통보했다.
며칠간 고민했다. 당시에는 미국에 가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 큰 특혜였던 상황이었는데 나보다 유능한 후배가 많은 데다 사십이 다 된 나이에 늦은 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표의 지시를 거역할 수도 없어 수락을 하고 1985년까지 2년간 딜로이트 뉴욕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미국 8대 회계법인 중의 하나이자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딜로이트 뉴욕사무실은 수천명의 회계감사·세무 및 컨설팅의 전문가를 보유한 대형 법인이었다. 나는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100층에서 근무했다. 이 기간은 전문가로서의 전문성과 도덕성 및 고객으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품위 등을 우선시하는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시의 경험이 이후 20여년간 컨설팅 업무 수행에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IT컨설팅 서비스업계는 해외에선 아더엔더슨(엔더슨컨설팅)·딜로이트·쿠퍼스 등 대형 회계법인이 활발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국내에선 1980년대 후반에 삼일회계법인 쿠퍼스라이브란 멤버펌과 앤더슨컨설팅·안권회계법인이 소규모로 사업을 시작한 상태였다.
안권의 경우 약 20∼30여명의 전산인력을 채용해 시작했다. 당시에는 큰 금액인 매년 수억원의 결손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업을 주도한 법인 대표가 19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 법인의 재무나 기타 상황이 안 좋아지자 컨설팅사업부는 경영에 큰 짐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말 법인 대표가 당시 회계감사부서를 책임지고 있던 내게 이 사업부가 정상화될 때까지 책임 경영을 제안했다.
컨설팅에 대한 무지에다 시장 수요나 장래 전망에 대해 아는 바도 없어 불안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법인 내의 주력 사업인 회계감사사업부의 이해와 영업의 협조 등 많은 지원이 필요하나 당시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법인 대표는 간곡히 부탁하며 일정 기간 후에 회계감사사업부의 복귀를 약속했고 딜로이트 본사에서 파견나와 있던 파트너도 본사의 지원 약속을 해왔다. 결국 사흘 동안 고민한 끝에 사업을 맡기로 했다.
그러나 컨설팅사업을 시작한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우려했던 불안 요소가 다가와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을 했는지 깨닫게 됐다. 작은 시장 규모, 회계법인 내 타부서의 비협조, 직원의 낮은 수준, 컨설팅 방법론과 솔루션의 부재,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 및 잦은 요구사항 변경으로 프로젝트 수주도 어렵거니와 계약기간 내 완수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IT컨설팅 서비스 업무는 대부분 고객사에서 의뢰한 소위 MIS를 개발·구축하는 것으로 업무를 분석·설계한 후 프로그래밍해 정보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업무 혁신 개념도 없었고 방법론이나 솔루션 지원 없이 개발 툴을 사용하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국내 초기 IT컨설팅 서비스의 개척자로서 공히 어려운 환경 하에서 컨설팅의 기틀을 쌓는 기간이었던 셈이다.
하루하루 힘든 상황이 되자 딜로이트 본사에 약속한 지원을 요청했다. 1990년에 본사가 30만달러를 투자, 딜로이트컨설팅이 설립돼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됐다. 딜로이트로부터 ‘4 프런트’ 정보시스템 구축 방법론을 도입, 전 직원이 교육을 이수하고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했다. 이때 개발방법론 뿐만 아니라 ISP·BRP 개념이 도입됐다.
khchang@frontiers.co.kr
사진=박지호기자@전자신문, jihopress@
장기호 사장 이력
최종 학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1966년 입학, 1974년 졸업)
주요 경력
1974∼1976 한국외환은행
1976∼1988 안건회계법인(글로벌 빅5 회계법인 딜로이트투쉬의 멤버펌) 근무
1983∼1985 (안건에 재직 중이면서)미국 뉴욕 소재 딜로이트투쉬 뉴욕 사무실 근무
1986∼1988 안건회계법인 시니어 파트너
1989∼1996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대표이사
1997∼2000 언스트영컨설팅코리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