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디스플레이 강국](2부)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③상생협력

지난 5월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출범식에서 디스플레이 업계 대표들과 김영주 산자부 장관이 손을 맞잡고 상생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 5월 디스플레이산업협회 출범식에서 디스플레이 업계 대표들과 김영주 산자부 장관이 손을 맞잡고 상생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국내 장비·재료·부품 수직계열화 현황

 최근 2∼3년간 디스플레이업계의 최대 화두는 ‘상생’이었다. 일본의 부활, 대만·중국의 맹추격 속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 디스플레이업계가 찾은 해법이 ‘상생’이라는 한 단어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초기의 ‘상생’은 세계 최강인 패널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중소 협력사를 육성하자는 ‘대-중소기업’ 상생에 주로 맞춰졌다. 한국도 일본처럼 세계적인 장비·재료업체가 탄생해야 ‘반쪽 강국’의 멍에를 떨쳐낼 수 있고 튼실한 협력사가 있어야 패널 대기업의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한 상생은 ‘대-중소기업’보다 ‘대-대기업’이 손을 잡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삼성-LG로 양분된 구조에서는 ‘대-중소기업’의 협력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올해 숱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디스플레이협회도 이 같은 한계를 절감한 결과였다.

 ‘상생협력’은 협회 출범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무한 경쟁의식으로 대치하던 삼성과 LG가 ‘윈윈게임’을 위해 머리를 맞대면서 ‘대-대 상생협력’의 물꼬가 드디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아예 상생협력 협의체인 ‘상생협력위원회’까지 결성 △패널교차 구매 △수직계열화 타파 △표준화 △공동R&D 등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돼온 상생 모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달 처음 개최된 상생협력위원회에서는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LPL)가 장비·재료·부품의 교차구매를 전격 합의했다. 또 패널교차 구매에도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수요처인 세트업체 또는 관련 사업부와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비·소재 교차 구매는 그동안 삼성이나 LG 한쪽에만 제품을 납품하면서 매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온 협력사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패널교차 구매 역시 삼성과 LG가 서로 상대 패널을 구매하지 않으면서 경쟁자인 대만 패널업체만 살찌운 아이러니를 깰 것으로 전문가는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합의는 최근 실천으로 옮겨져 더욱 고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LPL 협력사인 디엠에스 세정장비를 전격 구매했고 LPL도 8세대 라인에 삼성전자 협력사 장비를 일부 도입하기로 하고 장비 구매협상에 돌입했다. 또 LPL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총괄에 패널을 구매해줄 것을 정식 제안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이 같은 시도가 하나 둘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 대세로 굳으면 한국 디스플레이업계의 새로운 성장엔진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협력보다 견제에 익숙한 국내 디기업을 못 미더워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장비·소재 협력사 가운데는 교차구매에 나섰다가 기존 고객사 눈 밖에 날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업체도 태반이다. 중소 장비업체 사장은 이 때문에 “장비 교차 구매가 활성화되려면 상대 진영의 장비를 구매하는 것보다 자신의 협력사가 자유롭게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판매제한 조치 등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패널교차 구매 또한 패널업체가 아무리 합의해도 정작 패널을 구매할 세트업체나 사업부가 빗장을 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지적이다.

 상생협력이 교차 구매에 머물지 않고 표준화·공동R&D·공동 특허대응 등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 최고 기술을 선점하고 이를 표준화해 다른 국가의 후발업체가 한국을 계속 쫓아오는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한 ‘윈윈 전략’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합세해 차세대 LCD 개발을 위한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컨소시엄인 ‘퓨처비전’을 지난 2004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생협력 움직임이 자칫 국수주의로 오인될 수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최강의 패널업체가 공동보조를 맞추면서 공정거래 위반과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국제 무대에서 국내 업체가 고립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생협력 모델이 철저하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한편 향후 성과를 세계 디스플레이업계와 공유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동원 디스플레이협회 부회장은 “상생협력은 국내 중소 장비 및 재료업체가 세계 최강의 패널업체와 거래하면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한 걸림돌을 제거하는 한편 국내 패널 대기업도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간과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해법”이라며 “하지만 삼성·LG가 글로벌 기업인만큼 자칫 담합의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철저하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상생협력 사례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미 2000년 초반부터 상생협력 프로그램이 속속 시행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샤프·히타치·엡슨 등 2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정부까지 가세한 차세대 LCD 공동 R&D 조직인 ‘퓨처비전’을 출범시켰다. ‘퓨처비전’은 일본 디스플레이업계가 수평적인 기술 제휴를 활성화해 최첨단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삼성전자와 S―LCD를 설립한 소니를 이 프로젝트에서 제외하면서 철저한 자국 중심의 상생협력을 표방했다.

 PDP업체인 마쓰시타·히타치·도시바 등은 LCD산업 연대를 위해 지난해 3사가 합작한 ‘IPS알파’라는 LCD업체를 설립해 LCD패널을 공유하고 있다. 또 마쓰시타 후지쯔·히타치 등은 PDP 특허 풀을 관리하는 별도법인인 HPPL을 만들어 한국 PDP업체를 상대로 무차별 특허소송을 펼치기도 했다.

 대만 LCD업체는 자국 업체끼리 패널교차 구매를 일반화한 상태다. AU옵트로닉스·치메이옵트로닉스 등은 계열 PC업체나 모니터업체의 패널이 부족하면 경쟁사의 패널을 자유자재로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스타·CPT 등 중·하위권 패널업체가 대만 내 경쟁업체의 모자라는 패널을 아웃소싱해 공급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LCD 수직계열화 현황

 국내 디스플레이업계의 상생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수직계열화 관행이다.

 주로 패널업체를 중심으로 중소 장비·소재업체가 하나의 선단처럼 형성된 수직계열화는 산업 초창기 경영전략 공유를 통해 신속한 기술 개발과 시장 대응에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기술 개발역량 분산을 초래하는가 하면 장비·소재업체의 수요처 축소를 불러오며 경쟁력 저하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장비는 전공정·모듈공정·검사공정에 이르기까지 전공정에서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로 양분돼 있으며 유리기판·편광판·구동칩·백라이트유닛 등 핵심 소재와 부품도 수직계열화의 장벽에 갇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는 수직계열화 타파는 당장 중소 협력사가 매출 확대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패널업체도 구매채널 다변화로 구매단가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