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방송 관련 기관의 통합을 조속히 추진하겠다.”
대선 후보들이 통방융합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규제기관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해 내놓은 공약이다.
통신산업은 규제산업이라고도 한다. 국가의 기간산업인데다 초기만 해도 사업권을 따내거나 핵심 주파수를 할당받은 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때문이다. 철저한 국가 차원의 관리와 제재가 필요했다.
이 같은 상황은 융합시대로 접어들면서 크게 바뀌었다. 통신기술의 발전과 통신망의 설치 및 보급 확대가 급진전되면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사업자가 다수로 늘어나면서 경쟁 시장으로 변했다. 더구나 ‘융합’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모든 사업자가 융합시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사업을 이끌어온 기업이 이제는 ‘융합’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환경이 변하면서 규제해야 할 대상과 범위 등도 달라지고 있다. 규제기관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이 같은 환경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정부, 규제 완화 로드맵 마련=정보통신부가 올 초 발표한 ‘통신규제정책 로드맵’ 역시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조치다. 전기통신역무를 통합하고 인터넷전화를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의 중장기 규제 완화 계획을 마련한 것은 마땅히 환영받을 일이다. 정통부는 이를 전기통신사업법에 반영하기로 하고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정부차원에서 환경변화에 맞춰 사업법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 로드맵은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정통부와 공정위가 이 안을 두고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며 견해를 좁히고는 있으나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또 지난달 정기국회를 넘기면서 연내 국회 통과는 이미 물 건너간 상태로 보인다.
◇작은 정부=규제를 대하는 정부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어느 한쪽이 놓친 문제를 다른 쪽에서 발견해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협력보다는 부처 간의 알력다툼으로 비춰진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와 관련해서도 정통부와 공정위의 이중규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자칫 한쪽에서는 인가를 했음에도 다른 한쪽에서 반대해 무산되거나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업이 산업과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정부 내부에서의 불협화음이 갈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때문이다. 정부가 커져 조직이 늘어나면 일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정부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기업은 힘들어한다.
“정부가 산업발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은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기업의 볼멘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이 서야 소비자가 웃는다=물론 정부가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통신산업이 여전히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태생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기적절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규제와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기존 통신사업자가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것은 소비자의 권익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시장진입 장벽을 없애야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쉽고 그래야 경쟁이 활성화 된다는 논리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장 경쟁은 ‘자율’을 담보로 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로 시장에 또다른 규제를 들이미는 것은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 시장질서가 왜곡되면 또다른 문제가 불거진다. 이로 인해 기업이 어려워지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최근 들어 정부를 향한 요구가 부쩍 늘었다. 물론 정부 위치에서는 다 들어줄 수도 없고 다 들어줘서도 안될 일이다. 무엇이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쟁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혜안이 필요할 따름이다.
김순기기자@전자신문, soonkkim@
◆규제에 대한 산업계 요구
통신분야 규제에 대한 생각은 초창기부터 업체마다 달랐다. 지배적 사업자는 규제의 올가미를 걷어달라고 울어댄 반면에 후발 사업자는 좀 더 많은 규제가 있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정부가 ‘통신규제정책 로드맵’을 발표하자 사업자는 또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배적 사업자는 전반적인 규제 완화에 기뻐하면서도 새롭게 형성될 경쟁 상황에 우려감을 표했다. 후발 사업자는 ‘선규제 완화, 후보완’을 내건 정부 로드맵이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대부분 단기적인 경쟁활성화 정책보다는 사업자 간 자율 경쟁을 유도해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키겠다는 정부 정책방향이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한 지배적 통신사업자 관계자는 “과거 1위 사업자의 경영성과를 후발사업자에게 나눠주는 비대칭 규제로 애로를 겪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정부가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물론 좀 더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는 의견도 많다. 약관보다 낮은 요금으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를 약관위반 행위로 금지하지 말고 소비자 편익을 위해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최근 경쟁활성화를 통한 소비자편익 증진 등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와 반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신사업자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연구개발 출연금을 폐지해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진입장벽 완화·역무통합 등을 담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으로 통신시장은 더 이상 사업허가 자체가 영업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완전경쟁시장이 되고 있으니 지나친 재정적 부담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출연금 제도로 개선함으로써 이를 해결하자는 의견이다.
또 후발 영세 업체를 위한 정부의 지나친 망개방 요구는 대다수 통신사업자의 신규망의 투자유인을 상실하게 하므로 이 문제는 최대한 사업자 간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에서조차 사실상 논의가 중단될 정도로 인터넷 시장의 정부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발 사업자의 투자 인센티브를 보호해주는 것이 시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일으켜 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규제 완화의 부작용과 시장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여건의 조성이 전제되는 가운데 시장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추진돼야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급진적인 소매시장의 규제완화 방안은 자칫 시장의 혼란을 초래함은 물론이고 지배적사업자의 지배력 집중과 이로 인한 소비자의 편익 감소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매시장 규제를 통한 소매시장의 전반적 규제 완화는 국내 이동통신시장과 같이 도매시장 도입 초기나 소매시장의 경쟁이 비활성화된 시장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경쟁 활성화를 저해하는 역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용약관 인가의무 면제와 같은 급진적인 소매시장의 규제완화보다는 선후발사업자 간의 불공정한 경쟁여건의 개선이 우선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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