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한 해였지만 그만큼 또 의미 있는 한 해였다. 통신 산업에 늘 따라 붙던 ‘규제’가 어떤 방향으로 ‘완화’될지 그 방향이 잡혔다. 직접적인 시장 적용을 위한 세부 사안이 결정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지만 ‘로드맵’ 발표 이후 하나씩 구체화한 정책 변화는 우리 통신 업계가 과거와 다른 환경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사업자들은 한 단계 도약해 ‘위대한 산업’으로 가야 할 필요성을 올해 절실하게 깨달았다. 변신 준비도 서둘렀다. 발을 딛고 있는 구체적인 사업 영역부터 기업 전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직, 프로세스 개선까지 전면적이다. 위대한 산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각사의 전략이 본격 가동되는 셈이다.
◇새 통신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보이지 않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늘 존재하며 통신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산소(oxyzen)’와 같은 필수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유태열 KT 경영연구소장이 전망하는 2020년 통신 산업의 모습이다. 실물 경제를 압도하는 가상 경제의 심화,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와 같은 가상 현실이 보편화하고 BT·NT·ET를 넘어 ‘공간(space) IT’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물론 지금의 초고속네트워크를 넘어서 1 에서 수십 에 이르는 초광대역 기반이라는 인프라를 전제로 한다. 끊김 없는 연결과 다양한 단말을 지원하는 ‘울트라-브로드밴드 인프라 혁명’이 일어난다.
◇정책부터 시장 구조조정까지 변화는 시작됐다=IPTV 법, 결합판매 법제화, 재판매의무화, 기간통신 역무 폐지…. 내년부터 시장에 적용할 주요 통신 정책이다. 정부의 규제완화 로드맵에 맞춰 업계도 움직였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나서 통신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올랐다. KT는 KTF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이나 합병과 같은 지배구조 변화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10년간의 통신 시장 내 구조조정이 규모의 경제학을 이루기 위한 합종연횡이었다면 지금은 통신 서비스의 변화, 새로운 가치 창출과 내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다. 유무선의 경계가 무너지고 통신과 방송, 콘텐츠가 결합한 새로운 ‘u미디어’ 산업에 맞춘 사업자의 변신은 무죄다.
◇시장 창출에 힘을 모으자=정부의 규제 완화는 새 시장 창출을 위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만들기 위해서다. 기업이 규제를 이유로 새 시장 창출에 소극적이었다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할 때다. 포화한 음성통신 서비스 시장에 머물지 않고 세계가 주목하는 u미디어 시장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통신과 방송, 콘텐츠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는 ‘통신’의 개념을 바꿀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변화는 솔루션이나 콘텐츠와 같은 후방산업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과거 통신사의 직접적인 네트워크 투자가 산업을 견인했다면 u미디어 영역에서 벌어지는 기업의 투자는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남은 숙제는 각사의 역량에서 좌우된다=새 패러다임에서 생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유연한 조직만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처할 수 있다. 유무선 통신 영역을 모두 거느렸다고 해서 각 진영의 경쟁력이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특히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한편으로 기업의 보호장벽 역할을 했다면 기업은 이제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내야 한다. 내수 시장의 한계 자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시장에서 겪은 시행착오야말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데 약이 된다는 자신감으로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에게 진정 ‘위대한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인터뷰- 이인찬 SK텔레콤 정보통신연구실장
―올해 정부규제(완화) 정책 가운데 가시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인위적으로 시장구도를 조성하기 위해 펴왔던 이른바 ‘유효경쟁정책’과 ‘비대칭 규제’에서 무게 중심을 ‘시장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증진’에 두면서 규제정책이 본연의 목적으로 회귀하고자 한 것 역시 주요 성과로 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내년에는 IPTV의 법제화가 구체화되면서 초고속인터넷과 IPTV를 기본으로 하는 다양한 결합서비스 경쟁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매시장 개방 의무화, 기간통신 역무 단일화 그리고 인터넷전화의 번호이동성 등도 향후 통신시장의 경쟁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대한 산업으로 지속,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통신서비스 산업 정책의 근간은 WCDMA·DMB·와이브로 등 신규서비스 도입을 통한 통신산업의 성장과 유효경쟁이라는 적극적인 시장관리 정책이었다. 최근 음성 시장이 정체하고 DMB·와이브로 등 신규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투자가 부진하고, 인위적인 경쟁구도 유지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한계가 나타났다. 컨버전스 환경에 부합하는 시장친화적인 정책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특히 동등 경쟁 조건을 보장하는 공정경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 정부 차원의 해외진출 지원 정책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해외 통신기업과 시장 변화를 비교할 때 우리(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해외 통신기업과 비교해 우리 통신기업은 유무선 인프라나 비즈니스 개발 및 운용 측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우리 유무선 통신 인프라 수준과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사업자의 기술과 비즈니스 부문에서의 혁신 노력은 간혹 정책적, 규제적 장벽에 가로막혀 시장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우리 통신기업은 글로벌 사업 측면에서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으며 경쟁력도 다소 취약하다는 점을 극복해야 한다.
―2020년대 미래 통신 산업 속에 SK텔레콤의 위상을 예측해본다면.
▲이동통신에서 통신사업 전반으로 더 나아가 인터넷·미디어·콘텐츠 등 통신 외의 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이미 유무선 통합 관련 포털·음악·커머스·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하나로텔레콤의 인수를 기점으로 확장한 소비자 접점(POC)을 더욱 강화, 통합하면서 무선과 유선이 연동된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 축적된 글로벌 역량을 발휘하면서 더욱 효과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에 성공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 주요 사업자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SK텔레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서비스와 기술이 해외시장에서 좋은 결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뷰- 유태열 KT 경영연구소장
-올해 정부규제(완화) 정책 가운데 가시적인 성과라면.
▲‘변화의 틀’이 가시화됐다는 점이다. 규제정책 로드맵 발표 이후 규제 완화와 소비자 후생 증진이라는 큰 정책 방향이 설정됐고 주요 일정의 사전 제시로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끌어올린 점을 높이 산다. 특히 요금규제 완화, 도매규제 도입, IPTV 법제화 등에서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요금 인가제 폐지로 통신사업자의 자율적인 요금설정이 가능해져 소비자에 적합한 요금제 출시가 가능해졌다. 특히 KT·SKT의 인가규제가 폐지됨으로써 소비자에게 요금인하의 혜택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IPTV 서비스도 국내 콘텐츠 시장 활성화 및 관련 산업 발전, 사교육비 감소 등의 후방 효과가 기대된다.
-위대한 산업으로 지속,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변화의 가속화(acceleration of change)’를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이동전화 망내 할인 도입과 향후 요금 인가제의 폐지로 이동통신 시장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무선 대체 역시 가속화될 것이 우려된다. 내년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상정돼 발효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므로 시장의 경쟁활성화가 지연되는 결과가 예상되는만큼 조속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MVNO 활성화를 위해 필수요소인 주파수 재배치 정책도 마찬가지다. IPTV 관련 융합기구 출범 및 세부 시행령 등도 만들어져야 한다.
-해외 통신기업과 시장 변화를 비교할 때 우리(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우리 통신산업은 구조적 요인, 시장 요인, 정책 요인 등으로 성장 한계에 부딪쳤다. 우리 통신산업이 위대한 산업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First Mover’ 성장 전략과 ‘글로벌IT리더십’ 확보가 필요하다. ‘세계 최초의 차세대 인프라’ 구축(차세대 인터넷 혹은, 버추얼월드인프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기술개발 및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위험을 감수하고 신규 IT 인프라 및 관련 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및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2020년대 미래 통신 산업 속에 KT의 위상을 예측해본다면.
▲IT생태계의 ‘키스톤 플레이어(keystone player)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 변신을 꾀할 것이다. 키스톤 플레이어는 비즈니스 생태계 환경에서 자사가 속한 생태계의 진화방향을 리드해 나감으로써 종(species) 전체의 성장을 추구하는 핵심 종을 의미한다. KT는 네트워크 사업자 혹은 미디어 사업자지만, 앞으로는 ‘넷-미디어리(net-mediary)’ 역할을 하고, 허브 테크놀로지를 확보할 것이다. KT는 궁극적으로 ‘디지털생태계의 촉매자(catalyst)’로서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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