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의 표준 경쟁
김상배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정보화 시대의 표준 경쟁’은 80년대와 90년대 컴퓨터 시장을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표준 주도권 싸움을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승자인 미국이 아니라 패자인 일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못지않은 큰 시장을 가진 ‘경제 대국’이자 제조 기술력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던 ‘기술 대국’ 일본이 컴퓨터 표준 시장에서 좌절한 이유를 학문적으로 접근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인텔’ 프로세서가 상징하는 미국 주도의 ‘윈텔리즘’이 어떻게 일본 컴퓨터산업을 압도했으며 일본은 왜 별다른 대항 표준을 세울 수 없었는지를 분석하고 이론적으로 풀어냈다. 한마디로 ‘기술에 앞섰던 일본이 왜 표준에서 밀려났는가’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표준을 기술·제도·담론 세 가지로 정의하고 표준 경쟁이 단지 기업만의 싸움이 아닌 정책·문화 심지어 고용제도와 같은 노동 환경·국민성까지 결합한 총체적인 권력 싸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이 결국 시장에서 백기를 든 이유는 기술은 앞설지 모르지만 제도·담론 등 다른 표준 분야에서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 시간이 치열해질수록 IT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시장에서 최종 승자는 좋은 제품·앞선 기술 못지않게 표준 격인 ‘게임의 규칙’을 누가 쥐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학술적인 냄새가 진하게 묻어 나는 이 책은 사실 대학 학부생과 대학원생, 정책 입안자와 같은 시장과 제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층을 겨냥한 전문서다. 이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는 다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풍부한 사례와 현장 리포트 수준의 각종 데이터는 표준 경쟁 현장에서 뛰고 있는 경영자와 기업인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3만3000원.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