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신년특집]신시장 제대로 보기 열풍

 ‘날이면 날마다 높아지는 스카이 라인과 확 뚫린 도로, 밀려드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해외 명품 브랜드들로 넘쳐나는 거리들….’

 신시장(Emerging Market)의 대표 주자인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의 모습이다. 물론 뒷면에는 아직도 낙후된 재래의 모습이 남아 있지만 정부 주도형 개발 정책이 본궤도에 올라 이제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가를 위협하는 강한 힘을 갖게 됐다.

 인도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경제 4국)의 대표 국가 중 하나지만 그 양상이 좀 다르다. 복잡한 인종과 종교, 오랜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철저히 개인화돼 있다. 재정이 고갈된 정부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할 여력이 없어 국민은 여전히 낙후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델리·첸나이·벵갈루루·뭄바이 등 신산업도시를 중심으로 외국기업들과 IT 전문인력들이 몰려 들면서 전 세계의 소프트웨어 공장이 됐다. 11억 인도 인구가 세계 경제의 핵으로 떠오른 것도 이 IT분야의 성장세에 힘입었다.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제2의 중국과 인도를 꿈꾸는 신흥 국가들이다. 과연 이들이 브릭스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신시장 ‘거품’ 경계령=최근 대기업 사이에서 신시장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졌다. 높은 성장세를 겨냥해 너도나도 글로벌화, 현지화를 기치로 걸고 신시장 진출에 나섰지만 제대로 뿌리도 내리기 전에 실패를 맛보고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성장세를 앞지르는 물가상승세, 열악한 사회간접자본, 외국 투자자들을 악용하는 비즈니스 관행 등에 몸소 뼈저린 실패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 정확한 시장 자료도 없고, 심지어 인구 통계도 믿기 어려워 현지화 전략을 짜기도 난망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지만 신시장은 법 체계가 정비가 안된 경우가 많아 외국 기업이 곤욕을 치르는 사례가 많다.

 무엇보다도 경계령의 배경에는 ‘실익이 없다’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중국발 인플레이션과 인도의 취약한 인프라가 대표적 사례다. 실제 성장에 따른 열매를 외국 기업들이 가져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신덕수 KOTRA 뉴델리 무역관 부장은 “신시장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품귀 현상과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신흥국가의 투자 대비 효용이 극히 떨어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지 전략 수정 움직임=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는 최근 신시장을 재평가하자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빠른 일부 기업은 벌써 변화된 전략을 적용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 신흥시장을 생산거점과 수요거점, 미래전략거점 등으로 나눠 현지 사업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생산성이 본궤도에 오른 중국에 해외생산기지 본부로 삼고 생산비중을 늘리는 한편, 물류 인프라가 취약한 인도는 수요거점으로 삼아 유통망 체계 재정비에 집중하돼, 앞으로 수요 성장세에 대비해 남부 첸나이에 제2 가전공장을 지었다.

 LG전자는 중국과 인도에서 프리미엄 전략으로 선회했다. 신흥 국가의 중산층이 급성장하면서 고가·첨단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신시장이라고 저가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양문형냉장고·드럼세탁기·뷰티폰 같은 고급 수요가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문범 LG전자 인도법인장은 “인도에는 고가 제품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이 4000만명이 넘는다”면서 “투자의 효용성을 높이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힘을 보강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코벌라이제이션’이 필요하다=한국식 현지 경영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반 소비재 산업이 아닌 IT·전자업종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테스트마켓으로 자리잡을 만큼 앞선 기술력과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자제품군은 디자인 혁신이나 웰빙 기능을 접목해 고급화할 수 있고 IT 부문은 와이브로나 DMB 등 신규 아이템을 중심으로 컨설팅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 이혁 수출지원팀장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전수하고, 현지인들이나 바이어들을 단순히 물건을 사가는 고객이 아니라 시장을 함께 개척하는 파트너로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