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신년특집]영재교육 현장을 가다

 대낮에도 등불을 밝히며 진리를 찾아다녔던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모든 국가의 기초는 그 나라 젊은이의 교육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날 각국 정부가 자국의 미래를 위해 쏟는 노력 가운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젊은 영재교육의 산실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곳도 없을 듯 싶다. 영재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받쳐줄 또다른 버팀목이 아닌가.

영재학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찾은 한국과학영재학교(교장 정천수 www.ksa.hs.kr). 때마침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아담한 캠퍼스는 조용했고 간간히 시험을 마친 학생들의 공 차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학생은 기말고사고 선생님과 직원들은 연말이기에 정리할 일이 많죠.” 안내를 맡은 고경민 학사주임의 설명이다. 현재 영재학교의 총인원이 425명이고 한 반의 학생 수는 18명, 이를 교사 2명이 각각 9명씩 전담하고 있어 “교사 1인당 책임 학생 수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재능 있는 학생들을 뽑아 이들에게 ‘자율과 책임’에 근거한 교육을 수행한다.

학생 선발은 총 3단계로 나눠 실시되는데 1단계는 서류전형으로 중학교 성적(수학과 과학)과 각종 수상실적,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등으로 1800명을 뽑는다. 이어 2단계에는 만 하루 동안 수학과 과학 2과목만의 시험을 쳐 216명을 추린다. 이때 치르는 시험은 수학능력시험이나 일반 학교 시험과는 전혀 다르다. 문제를 접하고 해결하는 과정과 창의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답이 틀리더라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마지막 3단계는 일종의 면접시험. 실험 및 체험 위주의 과학캠프를 개설한 후 공동과제를 수행하도록 해 학생의 협동심과 대인관계 등을 살펴 144명을 최종 선발한다.

입학 후 교육 시스템은 대학 학사운영 시스템과 동일하다. 신입생인 1학년 때는 교양필수에 해당하는 공통과목을 배우고 2학년부터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학점을 이수한다. 수강 학점과 동아리 활동, 공통 과제 등으로 총 170학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다. 능력이 넘친다고, 또는 개인이 원한다고 해서 1, 2학년 때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는 없다. 빨라도 최소 3학년 1학기까지는 마쳐야 졸업이 가능하다. 이는 개인의 재능 또한 사회생활을 통해 발휘되기에 배움의 과정과 인성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갈 계획이라는 김예은양(2학년)은 “생물과 수학을 좋아해 (영재학교에) 오게 됐고 졸업 후에는 의과학을 공부하며 질병치료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험 기간이라 그런지 김예은양은 예민해 보였다.

매년 이 학교 졸업생 중 가장 많은 수의 학생이 KAIST에 들어간다. 서울대와 포항공대 그리고 해외 유학 및 기타 대학이 주요 진로다. 지난해에는 144명의 졸업생 중 KAIST에 93명, 서울대 23명, 포항공대 9명, 연세대 및 기타 3명, 유학이 14명으로 진로가 결정됐다. 지난해 미국 동부 명문 대학을 지칭하는 이른바 ‘아이비리그’에도 16명이 들어갔다. KAIST에 집중된 이유를 물으니 일정 수준 이상이면 100명 이내에서 모두 받아주기로 KAIST와 협약이 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 영재학교의 교육 방식 역시 자율과 책임이다.

강의와 자습 등 수업에 학생의 선택권이 최대한 보장된다는 것이 일반학교와 차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 선택했다”는 김예은양의 말처럼 묻고 파고들며 탐구하기 좋아하는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또 다른 학생은 “컴퓨터를 너무나 좋아했는데 중학교 때와 달리 궁금한 것은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학교에 늘 계시는 선생님께 곧바로 물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교는 지난해 학내 무선 인터넷망을 구축해 교내 어디에서나 노트북PC를 들고 다니며 이용할 수 있다.

  교내 1700평 규모의 첨단 과학관은 천체 망원경을 비롯해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추고 학생들을 자율 실험실습의 세계로 인도한다. 또 오케스트라실, 명상요가실, 도예실 등을 갖춘 예지관은 공부에 지친 학생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다. 시설 외에 ‘학생멘토링제’는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도 영재학교만의 자랑이라 꼽는 특화 제도다. 학생 간에 부족한 과목을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는 오직 영재학교만이 가능한 이 제도는 미적분학, 웹프로그래밍 등 49개 과목이 개설돼 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곳에서 강제되는 것은 기숙사 입퇴실 시간이나 청결, 소음 방지 등 안락한 공동체 생활에 문제될 소지가 있는 사항뿐이다. 공동체 생활에 관한 규정은 엄격한 상점과 벌점 규정으로 학생들에게 책임을 부여한다. 안정은 정보통신과 교사는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모아놓은 곳이다 보니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과 학습 과정의 공통과제 수행 등으로 협동심과 대인관계도 잘 익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etnews.co.kr

◆한국과학영재학교 현황

1. 설립 : 1990년(부산과학고등학교로 시작)

2001년 과학영재학교 선정(과학기술부)

2. 학생 수 : 425명(남 365명, 여 60명)

3. 교직원 : 150명(교사 88명, 행정직 62명, 박사학위 소지 53.4%)

4. 시설 : 첨단과학과, 예지관, Guest House, 외국어연수센터, E.O.Z(English Only Zone)

5. 학생진로 : KAIST, 서울대, 포항공대, 해외유학(2006년 IVY리그 16명 진학)

6. 수상실적 : 제10회 한국물리올림피아드 금상, 2007 한국화학올림피아드 금상 등

7. 자매결연 : 미국 라이지움 화학기술고등학교 등 1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