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 인프라 구축의 산증인.’
우리나라 민간 네트워크의 역사는 지난 87년 9월 23일 미국의 CREN으로부터 국제 컴퓨터망 가입 승인을 받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학교 전자계산소(현 중앙교육연구전산소)팀 주도로 성사된 이 승인의 중심에는 고건 컴퓨터공학부 교수(60)가 있었다.
고건 교수는 “당시 군사정권 치하에서 민간기관은 스위칭 기능까지 하는 노드는 가질 수 없도록 규정돼 있었다”며 “민간기관은 인터넷 호스트가 될 수 없어 PC통신이 불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대팀은 끈질긴 설득작업을 통해 서울대-일본대 사이 통신망을 연결해도 된다는 양해를 조건부로 받아냈다. 물론 ‘학술목적’으로 제한된 승인이었지만 이 한 걸음은 국내 민간 PC 네트워크 보급에 한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이후 서울대는 88년 3월 국내 최초로 바이트넷(Bitnet)을 개통했고 92년 5월엔 인터넷 서비스를 개시하고 이를 ‘교육망’이라 명명했다. 고 교수는 “당시 인터넷 가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서울대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말이 있었을 만큼 국내 수많은 기관에 인터넷 기술지도를 하고 망 연결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이 망은 정치적 이유로 단절됐다 이어지길 수차례. 이런 환경에서도 망가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96년 1월엔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진흥원)에 이어 하이텔·나우콤·한국통신(현 KT)·데이콤 등 기관이 속속 교육망에 연결됐다.
고 교수는 “서울대 교육망으로 인해 국내 인터넷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라며 “교육망 개통 10년 후 서울대를 위시한 국내 유수대학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인터넷을 통한 학술교류, 논문조회 등이 가능하게 되면서 연구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인터넷 인프라 조성에 물꼬를 튼 고 교수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국가 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서울대 학술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행정정보화, 학술정보화 등 국내 정보인프라를 키우는 데 헌신했다. 이 공로로 지난 2003년 대한민국 근정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한국공개소프트웨어 포럼’ 의장을 맡으면서 열악한 관련 산업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일본공개소프트웨어활성화포럼·중국공개소프트웨어활성화연맹과 공동으로 한·중·일 공개소프트웨어 공통 개발자 자격증 제도를 만들기로 하고 공개 소프트웨어 모델 커리큘럼 개발에 착수하는 등 동북아 공동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터넷 강국 코리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뒤처진 공개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워야 할 때입니다. 소프트웨어강국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황지혜기자@전자신문, gotit@
●인생모토
-‘내가 한 일은 최선을 다한 것이고 최상의 의사결정’이었다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다. 결과에 대해 너무 연연하면 오히려 근본을 그르칠 수 있다.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
-예수 그리스도.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 또 대화시 우리가 전달하려는 내용보다 우리의 대화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신 분이다.
●이공계에 하고 싶은 한마디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사회의 흐름에 민감해야 한다. 인위적·단기적 목표에 얽매이지 말고 사회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내 개척해가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마켓은 항상 중요하다.
●주요 이력
△1974년 서울공대 △1981년 미국 버지니아대 △1981년 미국 벨 연구소 연구원 △1996년 국가 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 △1997년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2000년 서울공과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 △2001년 서울대 학술정보원장 △2006년 한국공개소프트웨어활성화 포럼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