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장관급이 22개인데 비해, 미국과 일본은 14개에 불과하다.’
최근 과천 및 광화문 관가에는 이 같은 말이 떠돌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일부 후보 입에서 등장한 이 말은 과천과 광화문 주위에서 자주 떠돈다. 향후 정부 조직개편이 결코 작은 틀에서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현 18개 부처 중 5∼6개 정도는 통폐합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미 통합이 예고된 정통부와 방송위는 물론, 과기부와 교육부의 업무조정, 산자부와 중소기업청등의 통합등 차기 정부에서 많은 부처의 업무 조정이 예상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요부처의 조직개편 방향을 2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과학기술부문
이 당선자는 틈나는 대로 ‘3불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비롯한 자율이 보장되면 교육부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며, 정부규제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교육부와 과기부 중 과학교육 관련 기능을 합칠 것을 권했고, 한나라당은 교육부를 그대로 두되 공교육 강화 부문은 육성하고 다른 기능은 민간에 넘길 것을 제안했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두 안 모두 위상 축소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탐탁지 않다.
◇과기부, 하향 평준화 반대=교육부 역할 축소론이 제기되면서 과학기술부도 불안해 졌다. 제2차 과기기본계획을 확정한 지 한 달도 채 안돼 위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과기부로서는 교육부 현안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정책과 물리적 통합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스위스 IMD 기준 6위권인 과기경쟁력과 29위권인 교육경쟁력을 억지로 통합할 경우 ‘과기정책 우선 순위가 낮아져 미래 성장동력이 심각히 저하할 것’이라 우려했다. 과기부는 2001년 교육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통합한 일본 문부과학성의 사례를 들어 과학기술 부문의 위축을 걱정하고 있다.
두 부처의 이질적 행정철학도 문제다. 과기부는 이른바 산업의 R&D를 지원하고, 신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진흥행정’인 반면, 교육부는 해당 교육기관은 3불 정책처럼 ‘규제행정’이라는 점이다. 전문성을 심화시켜야 하는 과기부 입장에서 규제위주의 획일적 평준화 정책, 조직관료주의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일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평준화 정책 역시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막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부 산하에서는 KAIST나 과학영재학교 등 체계적인 영재 양성이 불가능하는 주장이다.
교육부 존폐는 이당선자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달려 있다. 교육부는 당선자의 공약이 가시화될 경우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된다며 과기부와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3불정책’이 무너지면 ‘저마다 본고사를 부활시키는 만큼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문제는 이 당선자가 능력 없는 대학의 퇴출을 강조한 만큼, 교육부문에서 시장중심의 논리를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이 당선자가 3불 정책의 폐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각 부처 중복기능을 없앤 ‘대 부처주의’를 강조하는 한, 교육부의 조직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래부 나오나=이 당선자는 과기계를 ‘미래 신성장동력’을 담보할 거점으로 보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과기계 위상은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대대적인 수정작업이 요구되는 교육정책이다. 당선자 측근들은 ‘교육부 해체 수준 개혁안’,‘내신성적 수능반영비율 대학 자율결정’ 등을 흘리고 있어 과기부 위상문제가 자주 거론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거나, 대학 자율로 확대를 하면서 남는 조직의 일부가 과기부에 편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기계와 교육계는 이 같은 변화가 이르면 2010년 경이면 대부분 완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것은 ‘미래부’ 형태다. 이는 독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초·중등교육 기능을 제외하고 연구개발기능과 대학 중심의 고급인력양성 기능을 중심으로 과기부와 교육부를 통합한 ‘연방교육연구개발부(속칭 미래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찬모 전 포스텍총장은 “교육부와 과기부 통합은 쉽지 않은 문제”라며, “인수위와 차기 정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후에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etnews.co.kr
◆산업진흥부문
그 동안 여러 부처로 나눠져 있던 산업정책 관련 조직의 개편 방안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산업 기술 관련 부처들은 통폐합이 거론되면서, 가장 이상적인 실물경제·산업분야의 조직 모델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조직의 문제점=기존 조직은 기술과 산업의 융합, 대·중소기업 경계를 초월한 ‘기업생태계’ 간 경쟁 등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부처간 중복과 갈등이 이어져 왔다. 실제로 IT분야를 놓고는 산자부와 정통부가, BT에서는 과기부·복지부·산자부가, NT분야는 산자부와 과기부가 경쟁을 벌이면서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과학기술장관회의의 140여개 안건 중 공동 안건이 54건에 달할 정도로 부처간 기능중복이 심하고, 공동 안건도 부처간 협력제고 보다는 역할과 관련한 갈등이 주를 이룬다. 부처간 따라하기로 인한 예산낭비도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재경부·과기부·산자부 등 21개 부처가 고유업무에서 파생된 1545개 중소기업 지원 시책을 운영 중이나, 중기청과 유사·중복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명목상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부처간 조정기능을 맡고 있으나, 산업정책수단이 없어 예산심의 및 정책 조정 등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산업부’(가칭) 구상=이명박당선자는 후보시절 “산자부가 대기업과 관련해서는 할 것이 없다. 중소기업 정책은 (산자부로)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바 있다. 실제로 산자부내 산업·무역 기능과 과기부의 산업기술관련 R&D 기능, 정통부의 IT산업 육성 기능, 중기청의 중소기업 지원 기능 등을 포괄하는 ‘산업부’ 신설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산업부는 정통부에서 IT산업진흥기능을 수행하는 본부를 통합하고, 과기부의 산업기술·원자력안정 정책도 흡수해 기능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부 신설과 병행해 중소기업청을 준장관급 기관인 ‘중소기업정책본부’로 격상하고 현 과기혁신본부처럼 산업부 내에서 정책 수립 및 부처협의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개편안도 거론된다.
산업기능을 한데 모으는 산업부가 신설될 경우, 기업들은 대 정부 창구가 일원화되면서 부처간 중복과 갈등에서 초래될 수 있는 시간·비용의 낭비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정부로서는 R&D·표준·디자인·상업화 등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가능해 진다. 특히 융·복합 및 신산업 출현 등 정책수요가 발생할 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성된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현재 중소기업청장은 26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국의 경우 중소기업 정책이 대기업 정책에 묻힐 우려가 있어 중소기업정책기관이 장관급 위원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청(중기청)과 특위(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묶어서 장관급으로 격상하는게 적절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자원·에너지분야는 어디로=산업부가 신설되면, 현 산자부 기능의 한 축인 자원·에너지 부문이 애매해진다. 일각에서는 자원·에너지 정책을 환경·건설교통 관련 부처로 통합하는 안을 제기하고 있다. 에너지와 환경문제가 서로 유사하다는 관점에서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자원빈국인 한국은 산업기술과 밀접한 해외자원개발·신재생에너지부문의 R&D·에너지 관련 산업기술의 수출 등을 고려할 때 산업부의 울타리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에너지와 환경은 서로 견제해야 하는 상반된 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한 부처에서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차기 정부 조직개편 논의 방향
-분류 / 산업·IT·R&D 관련 조직 / 차기정부 조직(추정안)
1. 기업규모별 산업정책 / 산업자원부(중소기업정책 포함)·중소기업청(중소기업정책 및 지원) / 산업부(가칭)로 통합 또는 산업부와 장관급으로 승격된 중소기업부
2. IT정책 / 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 / 산업부로 통합 또는 산업부와 정보미디어부(가칭·문화부 콘텐츠 정책과 통합)
3. R&D정책 /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중소기업청 등 / 산업부로 통합 또는 산업부와 미래부(가칭·과기부 R&D 기능 분리)
4. 자원·에너지 / 산업자원부 / 환경부·건설교통부 등으로 통합 또는 산자부에 존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