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노먼 에이브럼슨 하와이대 석좌교수- 안문석 고려대 교수

본지는 2008년 새해를 맞아 두 석학을 초청, 한국 IT산업의 현재와 미래 및 글로벌 IT산업의 미래 전망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 12월 8일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 콘퍼런스룸에서 이뤄졌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이제 현실이다.

 인터넷과 방송·통신이 결합된 새로운 미디어, 새로운 서비스는 우리의 삶을 이미 바꿔놓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TV를 보며 출퇴근하고 친구들과 직접 만든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간다.

 국회에선 IPTV 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 그 미래의 모습을 놓고 인터넷의 초기 기반을 닦은 미국의 석학과 첨단 IT서비스의 최전선인 한국에서 방송·통신 융합의 준비 작업을 진두지휘한 한국인 학자가 만나 대화를 나눴다.

 노먼 에이브럼슨 하와이대 석좌교수와 규제개혁위원장·전자정부특위원장·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고려대 안문석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안문석 위원장=교수님, 반갑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군요. 1970년대 초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채널 공유 방법을 연구하면서 세계 최초의 무선 데이터 통신망인 알로하넷을 구축하셨죠. 알로하넷은 후에 미국 국방성의 아르파넷과 결합해 오늘날 인터넷의 기반이 되었고요.

 ▲노먼 에이브럼슨 교수=인터넷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노력을 통해 탄생했죠. 저는 그 한 부분에 기여했을 뿐입니다.

 △안=대학과 군 연구소에서 소박하게 탄생한 인터넷은 이제 통신·방송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면서 우리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IT 산업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최근 웹2.0 추세가 IT 산업에 새 바람을 일으켰는데요, 발전을 거듭하는 인터넷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에이브럼슨=인터넷의 힘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상상력과 노력에서 나옵니다. 사용자들의 참여가 핵심이죠. 이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특히 모바일과의 결합이 기대됩니다. 통신 분야의 융합 움직임으로 모바일 인터넷 사용이 더 편리해지고 확산도 빨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신사업자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직접 만드는 ‘밑으로부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이나 언론·정부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안=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시는군요.

 ▲에이브럼슨=네. 작년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만, 특히 애플의 아이폰 출시는 향후 10년간 IT 발전 방향을 가름할 키를 잡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년 전 이맘때 출시된 아이폰은 휴대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수준을 바꾸어 놓았죠. 아이폰을 지원하는 이통망의 한계 때문에 성능에 제한이 있습니다만, 이런 문제들은 빠르게 해결될 것입니다.

 새해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지난해 1월 구글이 발표한 개방형 휴대폰 운용체계(OS) ‘안드로이드’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삼성·LG 등의 휴대폰 제조업체들과 이통사·반도체 업체 등이 참여한 ‘개방형 휴대폰 동맹(OHA)’이 될 것입니다.

 이는 아이폰과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만, 사실 둘은 차세대 휴대폰의 발전 방향이란 점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융합, PC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대폰의 등장이죠. 사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휴대폰에 자유롭게 설치해 사용하고 보다 쉽게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등 새로운 종류의 네트워크 활용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안=역시 미국에서도 융합이 IT의 최대 이슈가 되겠군요. 한국에서도 디지털 컨버전스를 통한 먹거리 창출이 내년 최고의 이슈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정보통신부를 만들어 한국을 정보통신 분야 세계 최고 국가로 만들었고 CDMA 도입을 비롯, 수많은 먹거리를 창출했습니다.

 이제 IT 중심 성장 동력이 포화 상태에 달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융합, 특히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통해 향후 10∼20년의 먹거리가 나올 것입니다. 다행히 국회방송통신특별위원회에서 IPTV 법안을 통과시켰고, 방송·통신 관련 행정을 한 부처에 모으는 새 기구 법도 논의 중이라 좋은 성과를 기대합니다.

 ▲에이브럼슨=그래야죠. 융합 움직임이 최근 몇 년 새 부쩍 속도가 빨라지긴 했습니다만, 사실 어떤 의미에서 기술의 컨버전스는 세계 최초의 데이터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인 아르파넷이 가동된 1969년 12월에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초창기 연구자는 이 융합이 본격화되길 매우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셈이죠.

 그런데 기술적 문제는 융합 움직임의 한 측면일 뿐이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융합의 기술적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됐거나 해결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과제는 융합과 관련된 법과 제도, 산업적 규제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IT 관련 규제는 최근 몇 년 간 많이 개선됐습니다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사용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20세기에 뿌리를 둔 오늘날의 IT 기반 구조를 21세기의 필요에 걸맞게 바꿔가야 합니다.

 안 교수는 방송·통신 융합 기구와 IPTV 등 융합 서비스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는 일에 매달려 왔으니 이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안=그렇습니다.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 되고 종래 구분이 뚜렷했던 방송과 통신의 구분도 사라지면서 새로운 융합 산업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까진 이 새로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수직적 정부 조직과 칸막이식 규제 정책이었고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에 국무총리자문기구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출범했죠.

 새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논의하겠지만 방송과 통신의 융합 문제만은 이미 1년 이상 논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안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심의해서 별도로 조속한 시일 안에 새 기구를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다시 1년 이상을 허송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의 1년은 산업화 시대의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에이브럼슨=미국에선 주파수 경매와 같은 시도를 통해 IT 규제 이슈에 시장 논리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달말 미국에선 아날로그 방송 중단과 함께 반납되는 700㎒ 대역 주파수에 대한 경매가 시작되는데요, 무려 250개나 되는 기업이 경매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엔 국내외 이동통신사뿐 아니라 휴대폰 제조업체나 휴대폰 기술 개발 업체도 있었습니다. 구글 같은 인터넷·소프트웨어 기업이나 에코스타 같은 위성 방송사도 있죠.

 △안=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물론 구글의 참여인 것 같습니다. 구글은 ‘혁신적 무선인터넷’을 위해 이 경매에 46억달러를 쏟아붓는다고 하죠?

 ▲에이브럼슨=네. 구글은 이 주파수의 한 블록(블록 C)은 ‘개방형 접속(open access)’을 위해 할당하도록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구글의 ‘안드로이드’ 프로젝트와 연결해 생각하면, 전혀 새로운 이동통신 사업 모델이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구글로선 무선에서도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이 가능해지면 광고 및 검색 서비스 비즈니스 역시 기존의 유선인터넷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무선인터넷까지 경계를 넓힐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700㎒ 대역 주파수 경매를 통해 새로운 이동통신 산업의 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 FCC의 주파수 정책이었죠.

 △안=교수님은 경매 도입 등으로 주파수 관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에이브럼슨=지금의 주파수 사용은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통신과 방송이 융합된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선 주파수 사용과 관리에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주파수를 경매에 붙여 그 주파수를 사회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업이나 기관이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데이터 압축 기술도 개선해야죠. 아직도 99%의 주파수가 SNA·XNS·IPX/SPX 등 이른바 ‘리거시 프로토콜’에 쓰여 채널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채널 공유 기술의 개발을 통해 채널 효율을 제고해야 합니다.

 같은 대역에서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다양한 첨단 서비스가 등장할 여지가 생깁니다.

 △안=그것이 컨버전스를 촉진해 뉴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이끌어 내는 바탕이 되겠군요. 교수님은 한국의 뉴미디어에도 관심이 많으시다면서요?

 ▲에이브럼슨=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DMB 서비스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지하철에서, 아니면 막히는 길 차 안에서 휴대 기기로 TV를 보더군요. TU미디어의 콘트롤 센터도 방문했었는데, 그 기술력과 서비스의 품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DMB에서 무엇을 주로 보는지,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있는지 알아보고 싶더군요. TU미디어 가입자도 100만명을 넘었다니 이제 어떤 서비스가 이 새 매체에 적합한지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방송 프로그램보다 사용자제작콘텐츠(UCC) 비중을 높이는 시도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궁금합니다.

 △안=DMB 서비스가 무척 인상적이셨나 봅니다. 교수님은 모바일 방송 서비스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시겠군요.

 ▲에이브럼슨=DMB가 향후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바른 방향으로 큰 걸음을 내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그렇다면 5년 혹은 10년 후 사람들의 미디어 사용 행태는 어떻게 될까요? 교수님이 상상하시는 미디어의 미래 모습을 그려 보신다면요?

 ▲에이브럼슨=오늘날 우리가 쓰는 네트워크는 국경을 넘어 어디건 파고들어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개인 투자자가 뉴욕이나 나스닥뿐 아니라 서울, 도쿄, 상하이, 뭄바이 등 어느 시장의 정보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보는 휴대 기기를 통해서도 볼 수 있고요. 물론 아직 입출력이 매우 불편하긴 합니다만…. 또 문화 간 경계도 많이 허물어졌습니다. 한 문화권의 산물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선 10개 언어로 된 정규 방송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향후 10년간 미디어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전문 기업이 아닌 일반 사용자가 만들고 네트워크에 올려 공유하는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란 점입니다. 일반인들이 전문 콘텐츠 기업을 능가하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일반 사용자의 숫자는 전문 기업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안=동감입니다. 값싼 영상 입력 장치가 보급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사라진 한 단계 더 발전된 UCC 콘텐츠가 사이버 공간의 지배적인 콘텐츠 이용 행태가 될 것입니다.

 ▲에이브럼슨=미디어의 미래에 대해선 한국에 계신 안 교수가 더 할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안=와이브로가 확산되면 인터넷의 공간적 제약이 완화되면서 전화와 방송이 하나로 융합될 것입니다. 문자와 숫자 중심의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전자정부 서비스도 멀티미디어 기반으로 확 바뀌겠죠. RFID 보급으로 입력이 자동화돼 정보화의 응용 범위는 더 넓어질 것입니다. 세계화와 함께 자동번역기가 등장해 사이버 공간의 새로운 이용자 행태를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질 것입니다. 좋은 콘텐츠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경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21세기 세계는 두뇌국가와 몸통국가로 극명하게 나뉠 것입니다. 새롭게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두뇌국가가 가져가고 몸통국가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의 적은 부가가치에 만족해야겠죠.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고통도 받게 되고요.

 한국이 두뇌국가가 되기 위해선 국민 개개인을 엮는 네트워크와 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생산적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정부 조직에도 콘텐츠 진흥을 고민하는 부서가 있어야 됩니다.

 ▲에이브럼슨=한국은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성공적으로 발전한 모범 사례입니다. CDMA 같은 모험을 통해 기술적·경제적 도약을 이뤘죠. 이제 한국은 IT 분야 추격자가 아니라 미래 발전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리더의 위치에 있습니다. 안교수가 말한 도전을 극복할 충분한 저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장시간 말씀 고맙습니다.

◆노먼 에이브럼슨 교수 프로필

 노먼 에이브럼슨 교수는 1970년 하와이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 최초의 무선 데이터 패킷망인 알로하넷을 설립한 무선 통신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UCLA와 스탠포드대학에서 물리학 석사와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68년부터 1996년까지 하와이대학 전기공학부와 정보컴퓨터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무선 및 위성 응용 분야의 다중접속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무선망을 이용해 여러 섬으로 구성된 하와이에 컴퓨터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알로하넷을 설계, 1970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알로하넷의 핵심 개념은 이더넷의 근간이 되었다. 또 알로하넷은 1972년 인터넷의 전신인 미국 국방성의 아르파넷에 연결됐다. 아르파넷에 다른 네트워크가 연결된 것은 알로하넷이 처음이었다.

 에이브럼슨 교수는 스탠퍼드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도 강의했으며 미국 정부 및 연구소의 데이터 네트워크 및 위성통신 관련 자문 활동을 했다. ITU 등 통신 관련 국제기구에서도 활동했으며 무선통신 관련 벤처기업들의 경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안문석 교수 프로필

 안문석 고려대 교수는 전자정부와 통방융합 등의 분야를 주로 연구해 온 우리나라 정보화 정책 분야 1세대 연구자다.

 1944년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전산학 석사 학위와 시스템분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81년부터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고려대학교 교무부총장을 지냈다. 교무부총장 시절에는 대학의 세계화란 기치를 내걸고 글로벌 고려대의 위상 정립에 힘썼다.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큰 틀을 구축했으며, 1999년엔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외환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2006년 7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위한 정책을 다루는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최근까지(2007년 12월 31일)까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위한 업무에 매진했다.

 한국행정학회 부회장과 한국정책학회 회장, 교육정보화추진위원회 위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정리=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