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사이 기업 임원들 사이에 필독 도서가 된 만화책이 있다. 바로 ‘신의 물방울’. 신드롬을 낳을 정도였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와인의 중요성이 커지며 심지어 몇몇 임원은 와인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와인의 어려운 이름이나 품종, 빈티지, 라벨 읽는 법을 모른다고 난감해하지 말자. 와인은 그저 좋은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돕는 분위기 메이커일 뿐이다. 세상에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은 없다. 그저 개인마다 좋아하는 맛과 향이 다르고 수천 가지 와인을 모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잔의 와인’을 통해 IT업계 사람들의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갖가지 향에 취해보자.
“훌륭한 와인이 생산되는 관건은 토양과 기후 그리고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열정 이 세 가지 조건의 조화예요. 와인처럼 훌륭한 기업에는 인재와 기업문화, 구성원의 열정 삼박자가 갖춰져야 하죠.”
유원식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사장(50)은 직원들에게 와인과 기업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15년 전부터 와인을 친구 삼았다는 유 사장은 원하는 와인을 직접 수입해 마실 정도로 푹 빠졌다. 그는 와인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을 반짝거리며 쉴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주위에서 핀잔을 듣는다.
“훌륭한 와인은 척박한 땅에서 힘들게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듭니다. 일조량이 많아야 당도가 높은 포도가 생산되는 기후상 영향도 많이 받지요.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는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의 노력과 열정도 와인의 큰 비중을 차지해요.”
유 사장은 이를 기업에 그대로 적용했다. “토양은 기업 내 인재와 같고 기후는 신뢰와 존경, 배려, 팀워크의 기업 문화로 비유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구성원의 열정이 훌륭한 기업을 만들죠.”
지금은 와인 얘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지만 예전에는 그도 문외한이었다. 80년대 와인 테이스팅 디너에 초대받았는데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다는 유 사장. 그는 와인은 접대 문화를 바꾸는 좋은 술이라고 강조했다.
“와인은 잔을 돌리지 않고 한번에 마시지도 않아요. 원하는 만큼만 따라 마실 수 있고 우리나라의 술 문화와 전혀 다릅니다.”
유 사장은 와인과 함께한 영업 자리는 나중에는 상대방의 부인까지 동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 고객을 감동시킨다고 귀띔했다. 그는 와인 덕분에 가족애도 더 돈독해졌다. 부인이 태어난 해의 와인은 너무 비싸 수집하지 못하지만 1988년생인 아들과 1999년생인 딸을 위해 해당 연도 와인을 수집 중이다. 중요한 날의 의미를 더욱 새기기 위해서란다.
탄닉하고 진한 와인을 좋아하는 유 사장은 프랑스 생테 밀리옹 지역의 ‘샤토 트로트 비에이유(Ch. Trotte Vieille)’를 추천했다. 포도를 직접 수확해 조그만 배럴에서 숙성시키는 이 와인은 필터링을 거치지 않아 맛이 매우 진하다.
“와인에는 법칙이 없어요. 매번 다른 와인을 마시며 새로운 경험을 해보세요. 재미있는 반려자가 될 거예요.” 유 사장은 와인잔을 기울이며 진한 향기에 미소를 머금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유원식 사장의 추천와인>
와인: 샤토 트로트 비에이유(Ch.Trotte Vieille)
빈티지: 2004년
생산국 및 지역: 프랑스, 보르도 생테 밀리옹(Bordeaux-Saint-Emilion Satellites)
종류: 레드(Red)
포도품종: 멜롯(Merlot) 55%, 카버넷프랑(Cabernet Franc)35%, 카버넷쇼비뇽(Cabernet Sauvignon) 10%